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첫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 검정 트레이닝복을 입은 20대 남성 두 명이 들어섰다. “게임방 있느냐”는 말에 직원이 “전 객실이 모두 대실 중이다”라고 답하자, 이들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모텔에는 ‘커플 게임방‘이 있다. 방 안에는 컴퓨터 두 대와 32인치 모니터, 게이밍 전용 키보드·마우스, 헤드셋까지 있어 PC방을 방불케 한다. 모텔은 이 방을 ‘배그(‘배틀그라운드‘ 게임의 약어)방‘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으로 PC방이 문을 닫자 모텔을 찾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외부인과 접촉이 적은 모텔은 PC방과 달리 영업 제한 대상이 아닌 데다가, PC방급 게임 시설을 갖춘 모텔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운영하는 커플 게임방. 최신식 PC와 모니터, 게이밍 장비까지 갖춰 PC방을 방불케 한다. /유종헌 기자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운영하는 커플 게임방. 최신식 PC와 모니터, 게이밍 장비까지 갖춰 PC방을 방불케 한다. /유종헌 기자

지난 주말 남자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 모텔을 찾은 이수연(가명·24)씨는 “신촌과 강남 일대 ‘게임 모텔‘은 대실과 숙박 모두 만실이라 할 수 없이 PC 사양이 떨어지는 집 근처 모텔을 찾았다”고 했다. ‘배그’를 위해 친구와 함께 신촌 모텔에 다녀왔다는 박모(26)씨는 “대실 이벤트를 하는 곳은 두 명이 3만원만 내고 8시간 동안 맘껏 게임을 즐길 수 있다”면서 “음식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고, 흡연도 자유로워 앞으로도 모텔을 종종 이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PC방 영업 중단으로 갈 곳을 잃은 게이머들 덕분에 모텔 업계는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숙박 중개 플랫폼 여기어때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부터 31일까지 숙박 앱에서 ‘PC’를 검색한 횟수는 전월 동기 대비 33배 늘었다. ‘컴퓨터’도 9배, ‘게임’은 11배 증가했다. 현재 여기어때에 등록된 모텔 중 20% 안팎인 1800여 곳이 게임 전용 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모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오픈 채팅방도 등장했다. 40여 명이 들어 있는 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영등포 A모텔에는 PC가 다섯 대 있는 방이 있다” “신촌 B모텔은 초고사양 PC가 있다”는 얘기가 쏟아졌다. 일부는 모텔비를 나눠 낼 사람을 찾는 ‘번개‘도 열고 있다. PC방 점주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이러다 영업 제한이 풀려도 모텔에 손님을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글이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