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주부 이세영(33)씨 집 싱크대에는 플라스틱 통에 든 세제 대신 비누가 있다. 일명 ‘설거지 비누’다. 이씨는 설거지할 때 이 비누를 수세미에 칠하고서 그릇을 씻는다. 이씨는 “바다거북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사진을 보고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조금이라도 플라스틱을 줄일 방법을 찾다가 설거지 비누를 쓰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설거지 비누는 화학 성분이 들어 있지 않아서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도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비누가 돌아왔다. 그간 비누는 하얗고 몽글몽글한 거품을 내는 클렌징폼에 밀리고, 단출한 포장으로 외면받았다. 최근 비누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다시 사랑받는다. 사용처도 더 넓어졌다. 세안 비누는 물론 보디 워시, 샴푸, 린스, 주방 세제용 비누까지 나온다.

‘설거지 비누’를 이용해 그릇을 닦는 모습. /동구밭

비누를 돌아오게 한 일등 공신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 0)’ 열풍이다. 비닐과 플라스틱 등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자는 것. 그간 대부분의 욕실 용품이나 펌핑형 액체 세제 용기는 플라스틱이었다.

이에 반해 비누는 불필요한 포장을 최소화한다. 과거에는 비닐로 포장한 비누가 많았다면, 최근 비누는 이마저도 없앴다. 종이로만 포장하거나, 대용량으로 출시한다. 대용량일수록 포장재를 줄일 수 있다.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비누 샴푸(샴푸 바)를 만든 ‘동구밭’ 박상재 이사는 “최근 한국의 비누 열풍은 플라스틱 안 쓰기 운동에 더해 화학 성분에 민감한 세대가 반응해서 생긴 결과”라며 “전년 대비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동구밭은 설거지 비누, 과일·야채 세정 비누, 샴푸 바, 린스 바 등 비누 14종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고체 비누들은 과거 1세대 비누보다 각각의 목적에 맞게 성분 등이 업그레이드된 경우가 많다. 린스 비누는 머릿결을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첨가되고, 설거지 비누는 기름때를 제거하는 데 유효한 성분이 들어있다. 또 대부분 화학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액체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넣는 화학 성분조차 아예 빼버리자’는 생각에서 시작된 제품이 많기 때문. 고체를 액체로 바꾸려면, 대개 인공 경화제나 계면 활성제 같은 화학 성분을 사용한다.

물론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등에서는 세척제나 샴푸처럼 물에 씻어내는 제품은 계면 활성제로 인한 인체 위해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평가원 실험 결과 합성 계면 활성제의 피부 흡수율은 1.2~2.4%로 낮게 나타났고, 물에도 잘 녹아 체내 축적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그러나 젖병 등을 사용하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중에는 여전히 이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박 이사는 “잔존 세제에 대해 걱정이 많은 아이 엄마들이 주로 많이 산다”면서도 “의외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남성 구매자도 꽤 된다”고 했다.

구매자 중에는 비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액체로 돌아서는 사람도 있다. 최근 샴푸 바를 한 달간 사용했다는 박모(36)씨는 “탈모 등에 도움을 받으려고 천연 성분으로 된 비누 샴푸를 구매했는데, 금방 부서지고 보관도 어려워 다시 액체 샴푸로 바꿨다”고 했다. 그간 비누의 흠이라 여겨온 쉽게 무르고 부서지는 점, 보관의 어려움은 여전히 단점으로 지적된다. 거품이 잘 나지 않아 추가로 거품망을 구매하거나 비누 보관용 거치대를 구매할 경우, 다시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된다는 아이러니도 생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지저분한 손으로 비누를 만졌다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세균을 옮기는 건 아닐까.

1980년대 미국에서도 액체 비누와 고체 비누를 두고 양쪽 업계에서 논쟁이 붙었다. 과학자들이 이를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대장균 같은 병원균을 비누에 주입한 다음 참가자 16명에게 이 비누로 손을 씻게 했다. 그러나 누구의 손에서도 유의미한 수치의 박테리아는 발견되지 않았다. 비누는 염기성인데, 염기는 단백질을 녹인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은 주로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 묻은 고체 비누라도 거품을 내 30초 이상 꼼꼼하게 씻으면 바이러스가 녹아서 사라진다.

미국 의학 박사 리처드 클라스코는 이 연구 결과를 뉴욕타임스에 소개하며 “고체 비누 역시 감염 예방 효과가 충분하다”며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손을 씻지 않는 게 더 큰 실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