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오면 늘 생각하는 주제다. 왜 여자들은 ‘시댁(시집)’으로 먼저 가야 하는가? 딸만 하나 또는 둘 가진 친정 노부모는 추석 날 누가 차례를 준비할까?
물론 성리학자 주자(朱子)는 “추석과 같은 명절[俗節]은 제철 음식[節物]을 장만하여 가족끼리 서로 즐기는 것이지, 차례[祭]를 지내는 것은 올바른 예법이 아니다[非禮之正]”라고 하였다(주자 ‘答張欽夫’). 그러나 한번 굳어진 ‘차례’ 습속은 고식화되어 바뀌지 않는다. 게다가 추석 날 성묘까지 가야 한다. 친정에 노부모만 남겨놓은 딸 처지에서 명절을 시댁 위주로 지낸다고 하자. 친정 부모가 돌아가시면 차례·제사·성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녀의 결혼 용어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영어 marry, 독일어 heiraten은 신랑·신부에게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권에서는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장가(丈家)간다’,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시집[媤宅]간다’고 말한다. 이 두 단어는 단순히 ‘결혼한다’는 의미 이상의 의무와 권리를 내포한다.
‘시집간다’는 것은 신부가 신랑의 본가[시댁] 생활권에 합류하게 되고, 나중에 죽어서는 시댁 선산에 묻히는 것을 말한다. ‘장가간다’의 본래 의미는 신랑이 처가의 생활권에 편입되어 살다가 죽어서는 처가 선산에 묻히는 것을 말한다.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구정승골(정승 아홉 명이 묻힌 곳)’에 김사형과 신효창의 묘가 위아래로 자리한다. 장인과 사위 관계다. 풍수에 능했던 신효창이 장인을 위해 잡은 자리다. 전북 순창 인계면 마흘리 ‘말명당’에는 박예 부부, 박예의 딸과 사위 김극뉴, 또 그 아래는 김극뉴의 딸과 사위 정광좌의 무덤이 있다. 경기 용인시 모현동에 쌍유혈(雙乳穴·여인의 두 젖가슴과 같은 길지)에는 정몽주와 이석형 무덤이 좌우에 있다. 이석형은 정몽주의 증손녀사위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오금역 3번 출구를 나서면 오금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안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신선경과 류인호 무덤이 있다. 장인·사위 관계다.
이런 결혼 문화가 가능케 한 법률적 배경이 있었다. 조선의 ‘경국대전’은 “모든 자녀에게 재산이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함[衆子女 平分]”을 명시하였다. 그 전제 조건은 자녀가 돌아가면서 부모 제사를 모시는 윤회봉사였다. 딸이 죽으면 그 자녀, 즉 외손이 제사를 모셔야 했다. 외손봉사가 흔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유교 특히 주자의 성리학이 조선 전역에 침투한 17세기 이전에는 ‘시집을 가거나 장가를 가는’ 두 가지 결혼 양식이 자연스럽게 혼재했다. 고구려 때부터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그랬다. 17세기 이후 결혼은 시댁 위주와 남존여비 관념에 구속되었다. 잘못된 일이다. 잘못된 일은 올바름[正]으로 되돌려야[反] 한다. 이를 반정(反正)이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딸만 가진 부모는 장가를 들이면 된다. 그럼 사위가 처가 살림을 이어받고 죽어서는 처가 선산에 묻힌다. 사위가 죽으면 그 자녀, 즉 외손들이 외갓집을 이어 받든다. 만약 아들 하나, 딸 하나만 있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댁 선산으로 가야 할까, 처가 선산으로 가야 할까? 시댁 제사만 모셔야 할까, 처가 제사만 모셔야 할까?
이번 주 사임한 일본 아베 총리의 선영(제사) 관리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그는 친가[安倍家]와 외가(岸家) 묘역을 같은 공간에 나란히 두고 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딸 하나(아베의 어머니)만 두었기에 아베 총리가 친가와 외가 묘역을 모시고 있다.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된 데는 친가와 외가를 모신 음덕도 한몫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