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25·자영업)씨는 지난 14일 홍대의 한 타투숍에서 손목에 레터링(글자) 문신을 새겼다. 팔뚝, 목, 쇄골, 발목에 이어 다섯 번째다. 그에게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게 불법인 걸 알고 있냐”고 묻자 “합법적으로 하려면 한국에선 문신 시술을 못 받는다. 나뿐만 아니라 문신을 받은 친구들은 이게 합법인지 불법인지 신경 안 쓴다. 어차피 불법으로 걸려도 받은 사람은 처벌 규정 없으니 안심하란 얘길 문신사한테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씨에게 문신을 시술한 타투이스트 고모(33)씨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예약을 미뤄야 할 정도로 손님이 그의 가게를 많이 찾았다. 그는 이씨의 쇄골에 새겨진 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범죄의 결과물로 보이세요? 이건 저와 손님이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시술 과정에서 위생 지침도 잘 지켜서 부작용도 하나 없었어요. 이게 의료 행위면 의사보고 이걸 해보라고 하세요.”
문신이 1조원대의 범죄 시장이 돼 버렸다. 한국타투협회에 따르면 문신 시장 규모는 1조2000억원(반영구 화장 1조원, 영구 문신 2000억원). 현행법상 문신은 공중보건을 위해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만 시술할 수 있다. 문제는 문신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문신은 더 이상 조직폭력배의 상징이 아니라 패션이나 액세서리처럼 취급되고 반영구 문신인 눈썹, 아이라인 시술이 화장의 대안이 됐다. 지난 2018년 11월 식약처가 개최한 ‘문신용 염료 안전관리 방안 포럼’에서 문신용 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영구 문신(눈썹·입술) 이용자는 1000만명, 타투(영구 문신) 이용자는 300만명에 달한다. 더스탠다드는 반영구 문신 시술자는 30만명, 타투 시술자는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시술받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술자도 늘어나 그만큼 범법자도 늘어난 셈이다. 문신은 ‘대중화된 불법행위’가 돼 버렸다.
문신, 대중화된 불법행위
1992년 대법원은 “문신은 의료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판례를 근거로 법원은 그동안 비의료인의 문신을 불법으로 봤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령을 재정했다. 지난 6월에도 창원지법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타투이스트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비의료인인 타투이스트의 타투 시술을 ‘무면허 의료 행위’로 보고 “국민의 건강에 위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큰 범죄”라고 판시했다.
2002년부터 문신사가 된 이은경 한국타투협회 부회장은 20년 가까이 문신을 하면서 전과자가 됐다. 2005년 첫 신고를 당했을 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를 신고한 것은 근처에 있는 다른 가게였다. 2010년 두 번째 신고 때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그리고 벌금 200만원을 냈다. 그를 신고한 것은 ‘가짜’ 손님이었다. 그 손님은 문신 시술이 끝나고 계산할 때가 되자 700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신고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이 부회장은 화가 나서 “신고를 할 테면 해라. 너한테 돈을 주느니 그 돈을 나라에 내겠다”고 해서 신고를 당했다. 그는 “경력이 오래된 타투이스트 중에 경찰서 한두번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신사는 사업자 등록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 건물에서 가게를 열기도 하고 오피스텔이나 자택에서도 시술을 한다. 신고를 당했거나 신고가 들어올까봐 불안해서 한군데서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1년 단위로 옮기는 사람도 있다. 대놓고 광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문신을 하려는 사람은 지인의 소개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문신사를 찾아간다.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단속을 하지 않지만 경쟁 관계의 문신사나 불만을 가진 고객의 신고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을 악용해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고객도 있다. 신고가 들어가면 가게를 폐업하고 경찰서랑 법원을 오가야 하는 데다가 6개월 정도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돈을 줘버린다.
반영구 화장 문신은 영구 문신보다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불법 시술인 줄 모르고 시술받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5년 전부터 눈썹 문신, 아이라이너 문신을 받은 강해정(44)씨는 “내가 아는 여자 두 명 중 한 명은 눈썹 문신 시술을 하지만 이게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파마를 하거나 손톱 관리를 받는 것처럼 미용 차원에서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한 문신사는 “나한테 타투 시술을 하러 온 경찰도 있고, 눈썹 문신을 받은 국회의원들도 있다. 문신을 불법이라고 하는 건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일부 문신사는 신고를 피하기 위해 병원에 고용된 상태로 시술을 하기도 한다. 한 문신사는 “불법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반영구 문신 작업을 내가 다 하고 의사는 와서 5~10초 정도 시술 시늉만 낸다. 그래도 수익은 5대5로 나눈다. 우리는 불법이기 때문에 어디 가나 약자 신세다”라고 했다. 병원에 고용된 상태로 일하는 게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장에 따르면 병원에서 문신사와 의사가 함께 작업을 해도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의협 “문신은 엄연히 의료 행위”
문신이 범죄자의 표상이었던 시절에는 문신사도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문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아서 공감대를 얻을 수 없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문신을 대중에게 드러내면서 인식도 바뀐 데다가 눈썹, 아이라인처럼 미용 문신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문신사가 늘어나면서 한국타투협회, 한국문신사중앙회, 타투유니언 같이 문신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도 생겼다. 문신사들은 1988년 이후 시술을 직업으로 택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법률로 정하지 않고 있어 기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고유한 의미의 문신 시술 행위는 피시술자의 생명, 신체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며 이를 다섯 차례 기각, 각하했다. 지난해에 낸 여섯 번째 헌법소원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지난 7월 대한문신사중앙회가 일곱 번째 헌법소원을 냈다. 문신사중앙회의 법률대리인인 손익곤 변호사는 “지금 당장 바뀌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회 분위기나 인식이 변하면 달라질 수 있다. 간통죄도 몇차례의 헌법소원 끝에 폐지된 것이다”라고 했다.
송강섭 한국타투협회 회장은 “만약 위생과 보건이 걱정이 된다면 오히려 지금 상태가 더 위험하다. 문신은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않아서 실태도 파악할 수 없고 아무런 감독이나 관리를 받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세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임보란 회장도 “문신 교육에는 도제식, 학원, 독학이 혼재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자격 있는 사람이 적정한 환경과 시스템을 갖추고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했다.
문신 합법화를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측은 의료계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국내에선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명, 건강, 조직에 변화나 변형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의료 행위로 보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문신은 엄연히 의료 행위에 속한다. 국민의 위생과 건강이 달린 문제인데 문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인식이 바뀌었다는 게 비의료인의 문신을 합법화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고 했다.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차라리 비의료인의 문신이 합법화됐으면 좋겠다는 동료 의사도 있다. 문신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지우러 오는 사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신을 지우는 덴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까지 들고, 수억 원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신한 것을 후회하고 지우러 오는 사람을 봐왔기 때문에 더더욱 법제화를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정부가 문신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신사라는 존재 자체가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2015년 ‘신직업 추진 현황 및 육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신직종에 문신사(타투이스트)를 포함했다. 지난해 10월엔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2020년부터 반영구 화장은 미용업소에서도 가능케 한다고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2020년 말까지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측은 “법 개정이나 제정은 국회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연구 용역을 마무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문신사 단체, 미용업계, 의협 등과 협의를 할 것이다. 올해 말까지 이뤄질 것인지 확실친 않다”라고 했다. 18, 19, 20대 국회에서 문신사 시술 행위 합법화 골자로 ‘문신사법’이 발의가 됐지만 법제화되지 못했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문신을 받는 소비자다. 반영구 아이라이너 시술을 했다가 염증이 생겨 고생한 장혜령(65)씨는 “어느 가게가 안전하고 검증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불법인 줄 몰랐던 내 잘못도 있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애당초 허가증이나 위생증을 내가 확인할 수 없지 않았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