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이 진짜 명품 더스트 백처럼 생겼어. 마크도 프라다 비슷하게 생겼네.”
국내 한 먹방 유튜버가 치킨 브랜드 푸라닭을 받고 보인 첫 반응이다. 2014년 문을 연 푸라닭은 지난 4월 500호점을 돌파한 브랜드. 푸라닭을 먹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유튜버와 같은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푸라닭’이라는 발음이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 프라다(PRADA)와 유사한 데다, 푸라닭의 초기 로고 역시 프라다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는 최근까지 다이아몬드 형태의 오각 테두리 안에 금색으로 ‘PURADAK CHICKEN’이라고 적힌 로고를 썼다. 프라다 로고도 역삼각형 테두리 안에 금색으로 ‘PRADA MILANO’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푸라닭 치킨, 맛있긴 한데 법적으로는 괜찮은 걸까?
◇푸라닭은 되고, 루이비통닭은 안 되나
푸라닭은 몇 년 전 있었던 ‘루이비통닭(LOUIS VUITON DAK)’의 법정 다툼을 떠오르게 한다. 루이비통닭은 2015년 경기도 양평에 문을 연 치킨집.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을 떠올리게 하는 상호에, 치킨 포장지 역시 루이비통 고유의 ‘LV모노그램(LV 관련 글자 모양으로 도안한 것)’과 흡사했다. 루이비통 브랜드를 소유한 프랑스 LVMH그룹은 이를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영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루이비통 닭은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간판, 광고, 포장지 등에 해당 로고를 쓰면 안 되고, 이를 위반할 때는 루이비통 측에 하루 50만원씩을 지급해야 한다”고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양측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통닭집 주인이 이번엔 이름을 ‘차루이비 통닭(chaLOUISVUI TONDAK)’으로 바꿨다. 영문 철자 띄어쓰기를 바꾸고 앞에 알파벳 세 글자를 붙인 것. 루이비통은 “김씨가 법원의 결정을 교묘하게 위반했으므로 위반에 따른 간접강제금 145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닭집 주인은 “법원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 이름은 아니지 않으냐”며 맞섰으나, 재판부는 LVMH의 손을 들어줬다. “띄어쓰기를 달리해 가게 이름을 바꿨다고는 하지만, 결국 ‘루이비통닭’으로 읽히는 것은 똑같다”며 “해당 명칭을 쓰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법원은 루이비통닭이 LVMH에 14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푸라닭 측은 루이비통닭과 푸라닭은 다르다는 입장이다. 푸라닭 관계자는 “푸라닭은 스페인어로 ‘순수함’을 뜻하는 ‘PURA’와 닭을 뜻하는 ‘DAK’의 합성어로 ‘치킨도 요리다’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순수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브랜드를 표현한 것”이라며 “로고 역시 ‘순수함’의 결정체이며, 견고함과 투명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푸라닭은 프라다와 판매 상품이나 서비스 업종이 달라 혼동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며 "이 때문에 프라다의 식별력이나 명성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푸라닭 측은 사업 초기인 2015년 8월과 올해 초 프라다로부터 서면으로 이의 제기를 받았으며, 이런 취지의 답변을 프라다에 보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푸라닭의 프라다 상표권 침해 성립 가능성은 작지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유성원 변리사는 “원칙적으로 국내 상표권의 효력은 같거나 유사한 상품 영역에서 그러한 상표를 사용했을 경우에만 미친다"며 "외식업 분야인 푸라닭의 명품 프라다 상표권에 대한 침해가 성립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유 변리사는 "이 경우 상표권만으로는 저명한 상표에 대한 보호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경쟁방지법을 함께 따져보게 돼 있다”며 "푸라닭은 저명 상표를 희석화했다는 측면에서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식재산권 전문 법무법인 다래 이지은 변호사 역시 “루이비통닭 사례에서 보듯 법원은 부정경쟁행위가 반드시 동종·유사 관계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서비스업에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푸라닭의 행위도 루이비통닭과 유사하게 프라다라는 저명 브랜드에 편승하고 그 명성을 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경쟁행위가 문제 될 수 있다”고 했다.
프라다 측에도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체 제작’이라는 이름의 카피
“월요일에 오픈하는 ○○가방 오리지널 착용 컷이에요. 이탈리아 소가죽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정말 섬세하게 잘 만들었고, 소장 가치 확실해요.”
지난 9월 중순, 인스타그램 팔로어(구독자)가 10만명이 넘는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 판매자는 자신이 직접 매장에서 산 100여만원 상당의 가방과 유사하게 자체 제작한 것이라고 떳떳하게(?) 밝혔다. ‘자체 제작’한 이 가방의 판매 가격은 10만원대 중반. 실제 오리지널 제품 판매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다. 가방은 완판됐다. 이 판매자는 이런 방식으로 ‘○○니트’ ‘○○바지' 등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자체 제작해 판매했다.
패션업계는 부정경쟁행위로 골머리를 앓는 전형적인 업종이다. 과거 음지에서 이른바 ‘짝퉁’을 판매했던 것과 달리, 최근 온라인 유명 쇼핑몰은 ‘자체 제작’이란 이름으로 짝퉁 꼬리표를 뗀다. 명품 브랜드나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아주 교묘하게 살짝만 바꾼 뒤, 이를 ‘자체 제작’이라며 내놓는 것. 짝퉁 제품이 누구나 쉽게 알아보는 로고나 디자인 등을 주로 베꼈다면, ‘자체 제작’ 제품은 오히려 로고가 없고 한눈에 특정 브랜드 제품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상품이 많다. 당연히 단속도 더 어렵다.
일부 소비자들은 자신이 카피 제품을 산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A 온라인 쇼핑몰에서 코트를 구매했다는 이모(31)씨는 “브랜드 로고가 분명하게 새겨진 가방 등과 달리, 의류 제품은 명품 브랜드라 하더라도 일반 소비자가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며 “'자체 제작'이라고 해서 정말 자체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유명 명품 브랜드의 코트를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이 사실을 유명 쇼핑몰의 카피 제품을 폭로하는 SNS 고발 계정을 통해 뒤늦게 알았다. 이 계정들은 명품 브랜드의 본사에 해당 쇼핑몰들을 개별적으로 신고하는 등 자체적으로 카피 정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카피임이 밝혀진다면, 명백한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 이지은 변호사는 “이 경우 다른 사람의 지식재산권(디자인)을 시장에서 혼동·오인하게 만들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한 혐의에 해당한다”며 “부정경쟁행위방지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 7월 대법원은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와 이른바 ‘눈알 가방’으로 알려진 국내 가방 브랜드 플레이노모어 간 법적 공방에서 에르메스 쪽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에르메스와 한국법인 에르메스코리아가 플레이노모어 대표 등을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플레이노모의 ‘샤이걸(눈알 가방)'은 에르메스 대표 핸드백인 버킨백, 켈리백 등과 유사한 형태에 눈알 모양 장식을 부착한 가방이다. 버킨백·켈리백이 3000만~1억원을 호가하는 반면, 눈알 가방은 10만~30만원대다. 재판부는 “플레이노모어 측이 에르메스 측과 동일한 종류의 상품을 국내에서 계속 생산·판매하게 되면 에르메스 제품에 대한 일부 수요를 대체하거나 제품의 희소성 및 가치 저하로 잠재적 수요자들이 에르메스 제품에 대한 구매를 포기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장인 간호섭 홍익대 교수는 “결국 모티브나 카피의 차이는 얼마나 유사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작곡에서도 후크송이 유행이라고 해서 그런 풍의 노래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노래 자체가 같지는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블랙이 유행이고 트위드란 소재가 유행이라면 얼마든지 이를 쓸 수는 있지만, 이를 그대로 베꼈다면 카피가 되는 거죠.”
만약 소비자가 ‘자체 제작’ 등의 이름으로 카피인 줄 모르고 산 경우 환급 등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을까. 이 변호사는 “제작자가 ‘자체 제작’이란 문구로 의도적으로 카피 제품임을 속였다면 이를 안 시점부터 30일 이내에 청약 철회를 요구해 환불받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