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응답하라 2020' 같은 드라마를 제작해야 배우들이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tvNx아무튼주말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되어 가는데 드라마와 영화는 왜 모르는 척할까.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칸막이가 등장했지만 드라마 속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없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한 맘카페에 “TV 드라마에서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낯설다”는 글이 올라오자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을 보면 일상이 곧 회복될 것 같아 반가웠는데 사태가 길어지니 이젠 어색하다" "너무 비현실적이다” 같은 댓글이 붙었다.

‘아무튼, 주말’이 궁금증 해결사로 나섰다. 가설은 세 가지. ①코로나가 대본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②발음하고 연기하는 데 마스크는 장애물이다 ③일상과 다른 판타지를 줘야 한다 등이었다.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이유

물론 촬영 현장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고 있다. MBC 김대진 PD는 드라마에 마스크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 몇 가지를 꼽았다. 그는 “주 52시간제 때문에 거의 사전 제작을 하다 보니 현실을 반영하는 데 시차(時差)가 있고, ‘곧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며 “수출을 하고 넷플릭스에도 올라가는 환경에서 한국이 먼저 그렇게 제작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상황을 담아 촬영을 마쳤는데 코로나 상황이 종식된 뒤에 방영된다면 그 또한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NEW에 들어온 대본 중에 코로나 상황이 담긴 스토리는 아직 없다. 양지혜 NEW 홍보팀장은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과 다른 세계를 보여주려는 욕망이 더 크다. 드라마 사업부에서 배우들에게 마스크를 다 씌워봤는데 그림이 너무 공포스러웠다”며 “내년에 코로나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해도 올해 제작이 중단되거나 연기된 작품부터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배우가 마스크를 착용하면 기술적으로 대사 전달부터 어렵다. 지향성 마이크는 가장 큰 목소리를 픽업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말할 경우 웅웅거릴 수 있다. 또 연기에서 표정이 담당하는 지분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TV조선 정석영 PD는 “드라마에는 현실 도피적 측면이 있다. 대중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을 담아 봐야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도 작용한다”며 “결국 수익 문제”라고 했다.

뮤지컬 '캣츠' 마스크 쓴 고양이

◇"불편하지 않은 과거가 되어야"

현실 밀착형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는 현재를 반영할 수 있다고 일부 시청자는 생각한다. 실내 장면은 연기에 방해가 돼 어쩔 수 없다면 야외 장면에서 행인 등에게만 마스크를 씌우면 어떨까. 김대진 PD는 “어느 드라마에서 보조 출연자들만 그렇게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니 생각보다 기괴해서 포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대본은 대체로 몇 년간 숙성을 거친 것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감염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면 배우들에게 마스크를 씌울 수도 있지만 아직 코로나가 진행 중이고 민감한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고생한 의료진 이야기는 이 사태가 완전히 끝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시청자 모두가 ‘그땐 저랬지’ 정도로 불편함이 없을 때라야 다룰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 특공대원들을 다룬 미국 드라마 ‘스와트(SWAT)’에선 요즘 대규모 액션 장면을 보기 어렵다. 밀접 접촉이 불가피한 베드신도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가 드라마와 영화 속 풍경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캣츠’는 객석을 통과해야 하는 고양이들에게 ‘메이크업 마스크’를 씌우고 있다. 교향악 축제에서도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로 내년에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마스크를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마스크 쓰고 코로나와 싸우는 등장인물은 결국 훗날 ‘응답하라 2020 같은 드라마가 나와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