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유튜버 ‘정배우’는 한 남성의 나체 사진을 공개했고 “유튜브 예능 ‘가짜 사나이’에 교관으로 나온 로건이 과거 몸캠 피싱(온라인 채팅에서 탈의와 성적 행위를 유도해 사진을 찍은 뒤 협박을 하는 범죄)을 당해 촬영한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전 영상에서 로건과 다른 교관이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 증거 중 하나로 이 사진을 제시했다. 유튜버 ‘연예부장 김용호’도 여러 영상에 걸쳐 ‘가짜 사나이’에 교관으로 출연해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얻은 이근 전 대위의 성범죄 전과를 공개했고, 이 전 대위 때문에 한 여성이 스카이다이빙 도중 사망했다는 주장을 했다. 유튜버 김용호와 정배우의 폭로전이 논란이 되자, 누적 조회 수 1억을 앞두고 ‘가짜 사나이’ 1, 2기의 영상은 유튜브의 ‘피지컬 갤러리’ 채널에서 아예 사라졌다. 피지컬 갤러리의 운영자인 유튜버 ‘김계란’은 “훈련생과 교관진, 나아가 가족까지 극심한 악플에 시달리고,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사람들의 가십거리와 사회적 이슈로 소비돼 가고 있어 그 책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얻은 이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이들을 쓰러뜨리는 바람은 자신들을 밀어준 소셜미디어에서 불어오고 있다. 유명 유튜버는 고발·저격 유튜브에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 소비자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공격하는 쪽에선 소비자와 시청자의 권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당하는 쪽에선 사생활 침해와 마녀사냥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무분별한 인플루언서, 유튜버에 제동
“보세든 명품이든 가리지 않고 예쁘면 다 좋아하는데 항상 풀착장은 샤넬이네용? 본인이 카피하고 파는 옷이 예쁘지 않고 창피해서 못 입어요, 혹시?”
한 인스타그램 계정의 게시글에 인플루언서이자 쇼핑몰 대표 A가 샤넬 옷을 입고 있는 사진 여러 장이 올라왔다. 사진 아래에 A 대표가 명품을 표절한 옷을 팔면서 정작 본인은 명품을 입고 있는 상황을 조롱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계정에는 ‘A씨가 화류계에 몸담았다’고 하는 게시물도 있고, ‘실제로 A가 먹지 않는 식품을 먹는 척하며 팔았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이렇게 인플루언서를 비방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만들어진 계정은 ‘까판’ 혹은 ‘까계정’으로 불리고 있다. 누군가를 욕하고 깎아내릴 때 쓰는 단어 ‘까다’에서 비롯됐다.
까판의 시작은 강남 화류계 종사자와 인플루언서에 대한 제보를 받아 만든 계정 ‘강남패치’와 임블리 호박즙 사태 때 생긴 임블리 소비자 계정(이하 ‘임블리 쏘리’)에서 시작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강남패치’ 운영자는 2016년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다. ‘임블리 쏘리’는 인플루언서 ‘임블리’가 자신의 쇼핑몰에서 판매한 호박즙에서 곰팡이가 나왔다는 제보를 받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자 자신이 임블리 쇼핑몰의 VVIP 고객이라고 밝힌 한 소비자가 만들었다. 임블리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이 계정에 제보를 하면서 현재 5만9000명의 팔로어를 가지게 됐다. 이 계정이 생기고 쇼핑몰 매출이 떨어지자 임블리는 소비자에 대한 사과를 했다. 당시 까판은 인플루언서의 무분별한 판매 행각으로부터 소비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유튜브의 일부 고발 채널도 시작은 억울한 사람들의 울분을 풀어주고, 유명 유튜버들이 시청자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을 막기 위해서였다. 공중파 방송에까지 나와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자동차 그림을 홍보했던 유명 자동차 유튜버 ‘카걸’이 사기에 가까운 행각을 벌였다는 것도 ‘구제역’이란 고발 유튜버가 밝혀낸 것이다. 구제역은 “내가 중고나라에서 사기 당한 뒤 사기꾼을 잡는 과정을 유튜브에 올렸더니 고발이나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접 취재를 하면서 법조인에게 자문을 하거나 판결이 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지금까지 허위 사실 유포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카걸’의 거짓말을 밝히기 위해 페라리 본사에 메일을 보내며 취재를 했다.
가족사진 올리고 시아버지 신원까지 밝혀
문제는 인스타그램 까판과 고발 유튜브가 무분별한 제보로 허위 사실을 알리거나 집요한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까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플루언서 B씨의 경우엔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이름만 검색해도 10개 넘는 까판을 찾아볼 수 있다. 까판에 학창 시절 사진은 물론이고 남자 친구나 친구 사진이 올라왔고, B씨가 ‘나이 많은 스폰서 덕분에 고급 주거지에 살고 있다’는 내용의 게시물도 있다. 그는 예전 집주소가 까판에 공개돼서 이사도 갔다. B씨는 “강남패치에 언급된 인플루언서와 친하다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며 “처음에는 내가 원산지를 속여서 물건을 팔았다고 집요하게 공격하더니 나중에는 인신공격이 너무 심해져서 SNS를 통해 하던 사업은 접었다”고 했다.
“제가 예전에 술집에서 일했다는 얘기부터 학력을 위조했다는 얘기까지, 온갖 헛소문을 다 퍼뜨려요. 제 지인은 물론이고 제가 간 식당, 병원까지 다 공격 대상이 돼요. 제 편을 들어준 친구는 친구의 어머니 신상까지 공개됐어요. 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사업이 망했다는 소문을 내서 직원과 거래처를 불안하게 만들고요. 일진이 왕따를 괴롭히는 방식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의류를 주로 판매한 인플루언서 C씨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신상까지 다 공개됐다.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한 그는 최근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 한 인플루언서의 고소 대리를 맡은 윤장석 변호사는 “의뢰인이 백화점에 가면 그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까판에 올린다. 아이 사진을 올려놓고 조롱하기도 한다. SNS에서 물건을 팔던 사업을 당연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의뢰인이 SNS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마 계속할 것이다”라고 했다.
B씨를 비방하는 까판을 만든 인스타그램 사용자와 쪽지로 대화를 나눴다. 20~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그는 한때 B씨의 옷과 신발을 꽤 구매했지만 B씨의 안티 계정을 보고 그의 거짓말을 자료로 기록하기 위해서 자신도 안티 계정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B가 학력이나 명품 카피, 연예인 협찬에 대해 거짓말을 해왔다”며 “이 사람의 과거 거짓말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거짓말을 보고 시작했다. 한 명이라도 올바른 소비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인플루언서 여러 명을 저격하는 까판을 만든 또 다른 인스타그램 사용자에게 “제품과 상관없는 사생활이나 과거를 비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이미지와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사람이다. 이들이 더러운 과거나 실체를 숨기고 물건을 판다면 그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사랑받고 돈도 많이 버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까판에 종종 등장하는 인플루언서 D씨는 “까판에는 연예인이나 대기업 오너, 아니면 정치인과 같은 공인은 없다. 일반인과 유명인의 경계에 있는 인플루언서에겐 소속사도 법무팀도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만한 공격 대상이다. 자기와 비슷한 줄 알아서 호감을 느낀 일반인이 명품을 수천만원씩 사고,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코 묻은 돈으로 잘 먹고 잘 산다’는 식의 비난이 많다”고 했다.
SNS에서의 주도권 경쟁으로 번져
까판의 운영자는 좌표를 찍고 공격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인플루언서의 제품이 입점된 백화점이나 남편의 직장에 항의 전화를 걸라는 식이다. 윤 변호사는 “어떤 까판은 한때 팔로어가 5만명이었다. 그중 10분의 1만 동원을 한다고 해도 5000명이 공격을 하는 것이다. 까판은 이런 식으로 온라인에서의 권력을 즐긴다”고 했다. 단순히 잘나가는 일반인에 대한 시기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걸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D씨는 “까판에 제보를 하거나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팔로어들이 칭찬을 하면서 추켜세운다. 여기서 오는 영웅 심리와 함께 인플루언서를 자신들의 손으로 움직이고,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임블리 쏘리’가 팔로어 6만명을 거느린 유명 까판이 되자, ‘임블리 쏘리’의 까판이 생겨난 게 이를 방증한다. 까판의 까판까지 생겨난 셈이다.
이근 전 대위는 자신을 비방한 유튜버 김용호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정배우는 몸캠 피싱 2차 가해와 사생활 침해로 여론이 나빠지자 사과 방송을 올렸다. 반면 얼굴이나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선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가 없다. B씨는 경찰에도 고소를 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인스타그램의 공조를 얻으려고 했지만 미국에 본사를 둔 인스타그램은 까판의 운영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윤 변호사는 “인스타그램에 신고하면 까판의 계정 활동을 정지시키지만, 어차피 까판은 또 다른 계정을 만들어서 활동한다. 익명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에선 협조를 거의 하지 않아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로 고소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의 까판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되자, B씨는 일단 자신의 블로그에 악성 댓글을 남긴 사람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악플러는 중학생부터 20대 대학원생, 40대 주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이들은 반성문에 ‘우울증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거나 ‘직업이 없어서 벌금을 못 내니 한 달에 5만원씩 갚겠다’고 써냈다. “까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악플러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를 사기꾼이나 술집 여자라고 욕을 한 사람들이 차라리 저보다 돈도 많고 고상했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까요. 제가 이런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했다니, 정말 허무해요.”
☞까판(까계정)이란
SNS 상거래에 취약한 소비자들이 경험담을 공유하고 제보를 하며 판매자를 압박하는 SNS 계정. SNS에서 유명한 사람(인플루언서)을 골라 집중 공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