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엄출판사 2층에서 만난 이슬아 작가. 헤엄출판사는 이 작가의 일터이자 그가 부모님,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병풍은 그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것이며, 아래에 놓인 책들은 헤엄출판사에서 나온 파본들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2014년 봄 대학생 이슬아는 서울 영등포와 목동 일대 아파트에 전단 300장을 붙였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적은 전단이었다.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주는 손바닥 문학상 가작 수상, 잡지사 인턴 기자 3년 경력을 내세웠다. 대학 논술 합격이나 신춘문예 당선 등을 돕는다고 말하는 대신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도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썼다. 전단 300장을 뿌린 결과 연락해 온 사람은 단 1명.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등을 쓴 이슬아(28) 작가가 스물두 살 때부터 최근까지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만난 ‘어린 스승들’에 관한 책 ‘부지런한 사랑’(문학동네)을 냈다. 그는 카페 아르바이트와 누드모델 말고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싶어 자신을 교사로 임명했다. 쉽사리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내는 건 ‘일간 이슬아’에서 그가 선보인 방식이기도 하다.

원고 청탁을 받지 못하던 그는 SNS로 구독자를 직접 모집했다. 한 달에 1만원을 받고 주 중에 매일 상대의 이메일로 글을 보냈다. 당시 그는 직접 만든 포스터에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고 적었다. 이 작가는 “구독자 수는 비밀”이라면서도 “처음엔 50명만 모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년 만에 학자금 대출(2500만원)을 다 갚을 정도로 많은 구독자가 모였다”고 했다. 그는 이 글들을 모아 2018년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펴냈다. 자신이 직접 차린 ‘헤엄출판사’에서다. 그해 전국 독립책방은 이 책을 ‘올해의 책’ 1위로 선정했다.

지난 4일 이 작가의 집이자 직장인 경기도 파주 헤엄출판사에서 그를 만났다. 헤엄은 수영 강사이자 산업 잠수사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어릴 적 수영과 잠수를 배운 경험을 기억하며 이 대표가 지은 이름이다.

이슬아 작가가 '일간 이슬아' 홍보 당시 직접 만든 포스터. 월 1만원을 내면 주중에 매일 글 한 편씩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다. /이슬아 제공

◇기복 없이 국수 내는 국숫집 사장

–‘일간 이슬아’보다 글쓰기 선생님이 먼저였네요.

“저는 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운이 좋으면 중년 직전이 됐을 때 가능할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스리잡을 한 거에요. 글쓰기 교사도 하고, 누드모델 일도 오래하고요. (이 작가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서 돈이 없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시간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간 대비 고수익이 가능한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썼다.) 그렇게 해서 돈 벌고 남은 시간에 창작한 거죠. 동시에 문학계나 출판계에 있는 사람 만나면 제 소개를 빠뜨리지 않았어요. ‘저 이슬아고 이런 글 쓰고, 주로 쓰는 주제는 이건데 갑자기 지면 펑크 나면 불러주세요.’”

–왜 그렇게 글이 쓰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 책을 즐겁게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닮고 싶은 작가들이 생기잖아요. 나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딘 글방(청소년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대표 교사 김현아씨가 운영하는 글방)’에 간 게 결정적인데요. 열여덟 살에 그곳에 가서 매주 글을 썼는데, 일 년에 두 번 정도 칭찬을 들었거든요. 그 가끔 듣는 칭찬이 아주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장르에서는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칭찬받고 싶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취업 생각은 안 했나요?

“제가 자격증이 딱 하나 있는데, 라틴 댄스 자격증이에요(웃음). 그것마저도 지금은 어떻게 추는지 잊어버렸어요. 자격증이나 스펙이 좋은 친구들도 취업이 안 되는 걸 보고, 일찍 마음을 접었어요. 여럿이 일해서 효율이 좋은 일이 있지만, 저는 혼자 일했을 때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창작이고 글쓰기였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부모님은 학교도 가고 싶지 않다면 안 가도 된다고 하신 분들이에요. 제가 의지가 있다면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배울 수 있고, 여행을 해도 좋다고요. 취업도 마찬가지였어요. 부모님께서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다양하게 하셨어요. 생계를 꾸리느라 항상 바쁘셨지만, 정서적으로는 엄청나게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셨죠.”

–창작에서는 재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흔히들 많이 합니다. 전업 작가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어느 원고지에서는 빛이 나요. 저는 이를 ‘재능의 광채’라고 표현하는데, 그 순간은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비교돼요. 그러나 재능은 있어도 안 쓰면 결국 녹슬어요. 반대로 별다른 재능이 없는 애가 얼마나 무섭게 달라지는지도 많이 봤어요. 물론 재능 있는 사람이 반복할 때가 무서워지는데(웃음), 저는 100점짜리 글 쓰는 사람도 부럽지만 80점을 꾸준히 쓰는 사람도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기복 없이 항상 똑같은 국수를 내는, 사람 엄청 많은 국숫집 사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대단한 재능이 있었으면 더 탁월한 세계를 꿈꿨겠지만, 저는 그것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독립출판계의 총아인 이슬아 작가가 대형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책을 냈다는 것에 서운하다는 팬들도 있습니다(웃음).

“정말요? 헤엄 출판사의 출간 작업은 거의 혼자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요. 집필한 사람이 편집도 할 경우 자기 글을 자기가 잘 못 고치거든요. 이 책은 처음부터 문학동네랑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흠 없이 만들고 싶었고, 아이들의 글이 있기 때문에 든든한 지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슬아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 이 작가는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해져 주로 서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다음 주에도 쓰고픈 마음을 가르친다

–책을 보면 아이들 글이 참 좋아요. 글 잘 쓰는 법은 어떻게 가르치나요?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어요.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건 계속 쓰고 싶게 마음을 뜨겁게 달궈 놓는 것이에요. 다음 주에도 쓸 수 있게 하는 마음.”

–혹자는 지금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과거 작가들과 조금 다르다고도 합니다. 선배 세대와 지금 세대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르고 어떤 점이 같다고 생각하나요.

“‘일간 이슬아’에 대해 한 지인이 ‘옛날에는 작가가 설명할 수 없는 영감의 샘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고, 피할 수 없는 소명 때문에 작가가 됐는데 이 시대 이슬아는 자장면을 배달하듯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같은 세대 내에서도 차이가 클 것 같지만, 저의 경우 작가 옆에 있는 숭고한 아우라를 걷어 낸 게 달랐던 것 같아요. 작가가 전면에 나서서 글의 값어치를 싸게 매기고(‘일간 이슬아’에서 이 작가는 글 한 편이 500원임을 내세웠다), 이를 넷플릭스 구독료나 어묵 값과 비교하잖아요. 일간 이슬아를 하며 직거래하는 농부를 제일 많이 생각했어요. 글 농사 지어서 직접 주소 받아 적고 발송하는 거죠. 소탈하게 거래해도 당연히 어떤 아름다움과 탁월한 성취를 추구하는 건 같아요.”

–작가 이슬아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요?

“예술이기도 하고 노동이기도 한 작업. 글쓰기가 지금까지 숭고하고 우아한 예술의 영역으로만 얘기될 때 원고료 얘기는 하기 어려워요. 프리랜서 데뷔하고 이상했던 게 원고료 얘기가 흐지부지되는 거예요. 프리랜서 3~4년 차 때부터는 원고 부탁하는 상대에게 돈을 먼저 명시해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저는 작가인 동시에 연재 노동자고 연재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시간⋅몸⋅마음 들여서 하는 노동이니까 보수 꼭 알려주세요’라고요.”

–상대방 반응은요?

“젊은 애가 너무 따박따박 얘기하니까, 돈 좋아한다고 소문난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속물적인 포즈를 많이 취하니까, ‘일간 이슬아’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지금도 초등학교 2~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헤엄글방을 운영하며, 대안학교에 글쓰기 출강을 나간다. 수강료는 처음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와 비슷하다.

–이제 글쓰기 교사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리를 잡지 않았나요?

“돈이 아쉬워서 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과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보내는데 이 시기 동안 한 아이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지켜보는 게 기뻐요. 초등학생 수업은 한 문장을 두고 다른 버전을 7개 만들어요. 그중 자기 맘에 드는 문장을 고르게 하는데, 여기서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글투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걸 가르칠 때 재미있어요. 이를 가르치려면 제가 쓰는 어휘가 풍부해야 하고, 좋은 기사·책 계속 읽어나가야 하니 저도 성장하고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성실했고 꾸준히 성장한 작가요. 꾸준히 하는데, 갈수록 좋다. 그게 진짜 어렵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