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봉이 비강을 훑고 내려가 기도 어딘가에서 바이러스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름을 잃어버린다. 대신 ‘×××번 확진자’로 불린다. 김지호(28)씨는 지난 5월 초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격리 병동에서 50일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하며 이름을 되찾았다. 코로나 항체를 획득한 셈이다. 그러나 최근 펴낸 책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더난출판)에 그는 썼다. 바이러스와의 고독한 싸움이 끝나자 세상과 싸워야 했다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격리 해제 후 출근을 준비하던 그에게 인사팀장은 말했다. “다들 코로나에 옮을까 봐 두려워하니 우선 재택근무를 3주 더 하는 게 좋겠어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호씨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크게 잃었으니 밖에서 좀 더 자유롭게 일해보라’며 조심스레 사직을 종용했다. 김지호씨는 고민 끝에 지난 9월 회사를 떠났다.
책에는 그가 양성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투병을 거쳐 복귀 후 맞닥뜨린 현실이 담겨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목격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난 2일 서울 역삼동에서 이 청년을 만났다. 작지만 옹골차 보였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차별들, 그럼에도 합리화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며 그가 지난 6개월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확진: 2020년 5월 10일
일요일 아침 8시였어요. 전화벨이 울려 받았더니 강남구 보건소였습니다. “선생님, 많이 놀라실 테지만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왔어요. 역학조사관이 곧 전화할 겁니다.” 목이 따가웠고 눈꺼풀로 열기가 느껴졌어요. 몸 어딘가가 짓눌리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두 가지였어요. ‘아, 이럴 줄 았았다’와 ‘이제 앞으로 어쩌지?’. 황금연휴 직전에 같이 밥을 먹은 친구가 사흘 전 연락해 ‘내가 만난 친구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제게도 검사를 권유했거든요. 위험 대비 차원에서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재택근무를 하던 때였어요.
직장이 어떤 곳이냐고요? 자세히 밝히긴 어렵습니다. 직원이 40여 명인 IT 서비스 업체였어요. 영업을 뛰어 저희 서비스를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저는 노력한 것은 이를 악물고 따내는 스타일이에요. 주어지는 운에 대해선 불평하지 않고요.
확진 소식을 알리자 전화가 빗발쳤어요. ‘어쩌다 걸렸어?’ ‘좀 조심하지 그랬어’ ‘확진자 번호는 나왔나요?’···. 답 없는 질문이 쏟아졌지요. 확진 사실이 공지되고 전 직원이 2주간 재택근무에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검사도 두 차례 했대요. 항변하자면 저는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며 방역 수칙을 지켰어요. 억울한 피해자예요. 그런데 회사와 지역사회에 감염병을 옮기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카프카 소설 ‘변신’ 속 주인공처럼요.
역학조사관과 통화하면서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확진자가 어디를 다녔는지 확인하고 비난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확진되면 저렇게 손가락질 받겠구나’ 생각했는데 현실로 닥친 거예요. 입원하던 날 집에서 짐을 챙겨 나올 때 누가 볼까 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뛰어가던 제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구급차는 저를 동대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데려갔어요. 락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인생 첫 CT 촬영을 했는데 의료진이 ‘기기에 절대 손을 대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어요. 음압병실로 갈 때는 방역 담당자가 내 발걸음을 따라오며 열심히 소독액을 뿌렸고요.
◇입원: 아이스팩 끼고 넷플릭스
날마다 혈압과 혈중 산소포화도, 체온을 측정했습니다. 38.5도. 간호사가 준 아이스팩을 겨드랑이에 끼우면 열이 좀 내렸어요. 근육통과 인후통도 있었지만 1에서 10까지 통증을 표시한다면 5~6 수준으로 앓았어요.
알고 보니 저한테 코로나를 전파한 친구는 ‘이태원 클럽발(發) 확산’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회사가 돌려 돌려서 그만두라는 식으로 말하길래 사표 냈다고 하더라고요. 확진자를 향한 낙인찍기와 마녀사냥이 횡행했잖아요. 사회적 생매장을 보고 겁에 질려 역학조사에서 거짓말을 한 학원 강사도 있었고요.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앞서 감염된 1만명 넘는 ‘코로나 선배들’은 저 문책과 비난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생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병상에서 사투하는 코로나 환자는 일자리와 사회적 평판에 대한 두려움과도 싸우고 있어요. 우리가 아픈 이유는 잘잘못을 따질 성질이 아닙니다. 친구가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식사 자리에 나타났고 저도 운이 나빠 망할 바이러스에 걸렸을 뿐이에요. 확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 ‘블레임 게임’이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다고 끝날까요? 또 다른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되풀이될 겁니다.
50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한자리에 있기는 평생 처음이었어요. 눈 뜨면 밥 먹고 넷플릭스 몰아 보다 밥 먹고 친구들에게 전화로 징징거리다 밥 먹고 잠 자고···.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배구공), ‘올드보이’의 군만두를 생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세면대에서 머리 감는 일이나 웅웅거리는 음압기 소음에도 익숙해졌지요. 우울하기만 하진 않았어요. 지루한 격리 생활을 넷플릭스가 위로해줬습니다. 입원 중 블로그에 투병기를 올렸고 댓글을 읽으며 울고 웃었어요. 나를 돌아볼 기회도 됐고요.
격리병동은 철저한 ‘1인 사회’예요. 앞방, 옆방에 누가 있는지 몰라요.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매운 떡볶이였어요. 가족이 그 소울 푸드를 넣어주곤 병실 창밖에서 손을 흔들었지요.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어요. 6월 29일. 퇴원(격리 해제)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병원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고 사회 복귀 첫 끼로 삼겹살을 먹었는데 그게 뭐라고 참 행복했습니다. 또 다른 싸움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퇴원: 더 괴로운 싸움
인사팀장에게 전화했더니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마땅한 정부 지침도 없으니 재택근무를 3주 더 하라”는 겁니다. 누가 두려워하는지 제가 물었어요. 회사 내 임산부들과 아이가 있는 분들이 대표적이래요. 심지어 제가 복귀하면 휴가를 가겠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또 몇 년간 함께 운동한 퍼스널 트레이너조차 “확진자의 운동 가능 여부는 경영진과 상의하고 연락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스마트폰을 던져버렸어요.
그때 기분이요? ‘세상이 왜 이렇게 불합리한가’였어요. 백신도 치료제도 없으니 막연한 공포기 있다는 건 저도 이해해요. 자식 걱정하는 부모 마음도 알아요. 하지만 확진자도 대부분 아무 죄 없는 피해자잖아요. 인간은 모순적이라 자기 일이 아닌 한 그 무게와 고통을 가늠하지 못해요. 두렵다는 이유로 그 두려움을 정당화하고 불안을 떠넘기는 태도를 많이 봤어요. 코로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고가 아녜요. 인류의 인격에 보내는 경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라고 붙였어요. 누구나 아차 하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영어로 하면 ‘I accidentally got COVID’, 우연히 일어난 사고(事故)예요.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병상에서 겪은 일과 그 경험이 가져다 준 생각을 써내려가다 보니 이전의 저와는 사뭇 달라진 느낌을 받았어요. 인생의 방향도 정해졌고요. 제가 다른 사람 챙기는 걸 좋아해요. 이번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면서 ‘저 사람이 없으면 나도 없구나’라는 연대감이 제 삶 전반에 깔려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읽는다면 공감하며 두려움을 떨쳐내길 바라며 글을 썼어요.
후유증이요? 나이나 면역력, 기저 질환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전혀 없어요. 몸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왔어요. 마음엔 후유증이 남았지요. 제가 마주한 현실은 잔혹했습니다. 퇴사 서류를 쓰러 간 회사 앞에서 동료들이 담배를 피우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다들 마스크를 썼어요. 보이지 않는 칼로 찌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당 해고 아니냐고요? 문제 삼을 수도 있겠지요. 회사와 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선에서 이렇게 책과 인터뷰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어요.
코로나 항체가 있지만 일부 재감염 사례도 있으니 열심히 방역 수칙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바이러스보다 사람들이 더 무서웠어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만난다면 말할 겁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어도 돌봐줄 수 있는 환경, 완치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또 복귀했을 때 사람들이 적어도 나를 밀쳐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완벽한 방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