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한 트위터 이용자가 찍어 올린 마차 사진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 말 한 마리가 성인 10여 명을 태운 수레를 끌고 있었다. ‘말이 다 죽어간다’는 설명과 함께 올라온 이 사진은 트위터에서만 1만2000회 이상 리트윗(재게시)됐다.
이 마차는 경남 합천군 영상테마파크에서 실제 운영하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합천군이 마차 운행을 멈추도록 집단 항의하자”며 합천군 담당 부서 전화번호를 공유했고, 한 동물 단체는 군에 “꽃마차 운행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대체 사진 속 마차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동물 학대 아니지만, 운영 중단할 것"
합천군 관계자는 “이 글이 올라온 후 ‘마차 운영을 중단하라’는 민원이 100건 이상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그 마차는 전기 모터로 구동하고 말은 기수 역할만 하는 ‘전기 마차’”라면서 “면적이 7만4629㎡(약 2만2600평)에 달하는 영상테마파크 내부는 차가 다닐 수 없어 노약자 관광을 돕고자 도입한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도 철저히 했다”고 했다.
동물 보호 단체 주장은 다르다. 합천군 측에 마차 운행 중단을 요구한 동물권 단체 ‘하이(HAI)’ 조영수 공동 대표는 “전기 힘으로 운행하는 마차라 해도 말은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쉴 새 없이 걸어야 한다”면서 “청각에 민감한 말이 시끄러운 관광지 소음을 듣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 전기 마차를 8년간 운영한 마부 김용수(55)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김씨는 “당장 다음 주부터 마차를 대체할 전기 버스 시범 운행에 들어간다. 마차 운영은 올해 안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그간 말 네 마리를 키우면서 평일은 한 마리, 주말은 두 마리씩 번갈아 출근시켰다. 한 번에 왕복 1.5km 코스를 20여 분 운행하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관광객이 없어 평일은 아예 운행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동안 말을 굶기거나 학대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동물 학대’라는 민원이 들어와 작년에는 말을 떼고 스쿠터로 직접 마차를 끌었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마차라면서 왜 말이 없냐’는 항의가 들어오더군요. 다시 말 운행을 재개했더니 또 ‘동물 학대 하지 말라’고 하고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한테 미안하지만, 이제 스트레스는 그만 받고 싶습니다.”
◇합법인데··· 학대 논란 시달리는 마차
한국 사회에서 ‘마차 동물 학대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7년부터 서울 청계천 부근에서 민간 사업자가 운행하던 관광용 마차는 동물 학대 논란 끝에 2012년 사라졌고, 2015년 경주에선 꽃마차 마부가 실제로 동물을 학대하는 장면이 포착돼 마부들이 형사 입건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마차의 도로 통행은 합법이다. 도로교통법은 마차를 우마(牛馬)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어, 고속도로를 제외한 모든 도로에서 통행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 보호 단체가 마차 운행을 ‘동물 학대 행위’라 주장하는 등 곳곳에서 마찰이 생기자 상당수 지자체는 마차 운행을 중단하거나 금지했다.
2012년 서울시는 ‘도로 혼잡과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면서 청계천 일대에 마차 운행 제한 조치를 내렸다. 앞서 동물사랑실천협회 등이 마부 앞에서 마차 운행 중단 시위를 벌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 단체의 비판을 의식한 조치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2012년까지 말 열 마리로 관광 마차를 운행했던 마부 민국현(70)씨는 “마차를 운영하며 동물을 학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갑작스레 마차 운행이 금지되면서 말을 지역 농가에 모두 팔았는데, 대부분 얼마 안 가 죽어버렸다”면서 “마부의 생계 대책이나 말의 활용 방안도 정하지 않은 채 마차 운행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말을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라고 말했다. 반면 하이 조영수 대표는 “마부가 의도적 학대를 하지 않았더라도 도심지에서 마차를 끄는 말은 그것만으로 고통에 시달린다. 차량 매연을 마셔 호흡기 질환에 걸리고,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발굽에 질병이 생긴다”면서 “도로에서 마차 운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마차 말이 학대를 받고 있는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제주도의 한 말 전문 수의사는 “모든 말이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고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마차에 자주 쓰이는 제주마는 태생부터 돌산에서 자란 품종”이라고 했다. 이 수의사는 “소음에 대한 민감도도 개체별로 다른 만큼, 승마용으로 훈련받은 말은 마차로 써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반면 다른 말 전문 수의사는 “바퀴 달린 300~400kg 마차를 끄는 일 자체가 말에게 큰 무리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부 영세 자영업자가 관절 다친 퇴역 경주마를 저렴하게 구해와 마차에 쓰거나, 영업 시간 중 식사를 제때 제공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동물 학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마사회 보건총괄담당 김진갑(수의사) 부장은 “말은 2000여 년 전부터 운송 수단으로 활용되며 인간과 유대를 쌓아온 동물이다. 마차 산업 전체를 금지하기보다는 마차에 쓰이는 말이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해외서도 “관광 명물” vs “동물 학대” 논란
한국에서 말이 끄는 마차를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꽃마차를 운행하는 관광지는 전국에 41곳이다. 렛츠런파크 서울(과천 경마공원)은 2014년 공원 내 꽃마차 운행을 멈췄고, 경남 창원 ‘진해 군항제’도 2016년에 마차 운행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마사회가 마차 사업자에게 경량 마차 구매비 등을 지급하는 ‘마차 보급 사업’도 동물 단체 등의 항의를 받아들여 도입 2년 만인 2018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지금은 일부 해수욕장 등 지역 관광지에서만 마차를 만날 수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이 개선되면서 마차 산업 수요가 자연히 준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오락 용도로 말을 이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반대 목소리도 있다. 노철 대한말산업진흥협회 회장은 “그런 논리라면 말 식용, 경마, 체험용 승마 등 말을 이용하는 모든 산업을 중단해야 한다. 활용처가 사라지면 관리비가 많이 드는 말은 결국 도축될 것”이라면서 “동물 복지 선진국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도 마차를 허용하고 있다. 말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산업용으로 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상당수 해외 관광 도시에서는 여전히 마차 운행을 허용하는 대신, 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파리나 런던은 차가 없는 도로에서 제한적으로 관광 마차 운행을 허가 중이다. 빌 더블라지오 미국 뉴욕 시장은 2014년 센트럴파크의 관광 명물인 마차 운행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시민 64%가 반대해 마차 금지 법안은 무산됐다. 대신 뉴욕 시의회는 기온이 화씨 90도(섭씨 32.2도) 이상이거나 습도가 높은 날은 마차를 운행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작년에 통과시켰다. 뉴욕시는 이 밖에도 마차의 하루 운행 시간을 9시간으로 제한하고, 말에게 매년 5주 이상 휴가를 보장하게 하고 있다.
마차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곳도 있다. 미국 시카고주는 내년 1월 1일부터 마차 운영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솔트레이크 시티나 캐나다 몬트리올 등 일부 도시도 이미 마차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마사회가 ‘마차 운행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마부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1회 최장 40분 운행 후 말에게 10분 이상 휴식을 주고, 혹서기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마차 운행을 중단하는 등 말 보호 방안이 담겼다. 한편 지난 20대 국회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로에서 마차 운행 시 일정 기준 이상 소음을 유발하거나 빛을 반사하는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개정안에 마차 이용 금지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