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의 한 장면. 풍수사보다 도굴꾼이 풍수에 더 능하다. /CJ ENM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도굴’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첫 부분에 풍수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도굴범 상길(송영창)의 강요로 어린 강동구(이제훈)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 백자를 꺼내준다. 그러나 상길은 동구를 땅속에 묻어 버린다. 실제 도굴꾼들이 썼던 방법이다. 뒷동산에 놀러 간 아이가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사라진 경우는 대부분 도굴꾼(호리꾼)의 덫에 걸린 것이다.

풍수사와 도굴꾼 가운데 누가 더 풍수에 능할까? 도굴꾼이다. 풍수 이론 일부는 도굴꾼들에 의해 추가되었다. 풍수사들은 심룡점혈(尋龍點穴·지맥을 찾아서 기가 모인 혈처를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도굴꾼은 풍수사들의 심룡점혈을 역추적하여 묵묘(오래된 묘)를 찾았다. 필자 같은 일천한 풍수학인도 세월에 씻겨 봉분조차 없어졌지만 위치만 가지고도 묵묘 유무를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풍수사와 도굴꾼 가운데 누가 더 부자일까? 도굴꾼이다. 중국에서 “부자가 되려거든 도굴을 하라!”는 말이 생겨났다. 흉년이 들어도 인근에 고분이 있는 마을 사람은 굶어 죽지 않았다. 온 동네 사람이 하나로 뭉쳐 도굴을 하면 살아남는다. “나라를 세우려거든 도굴을 하라!”는 말도 있다. ‘삼국지’ 주인공 조조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도굴로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는 ‘발구중랑장(发丘中郎将)’이란 전담을 두어 공공연하게 도굴을 하였다.

중국에서 도굴에 사용되는 기구들. /바이두 캡처

도굴 역사는 우리보다 중국이 더 길고 규모도 크다. 도굴은 관도(官盜·도굴 전문 군대)와 민도(民盜)로 구분된다. 조조·동탁·황소·당나라 황릉을 도굴한 온도, 서태후 무덤을 도굴한 손전영 등이 대표적 관도이다. 일제강점기 때 도굴이 ‘발굴’이란 이름으로 성행하여 숱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도 일종의 관도이다. 민도란 개인이 도굴하는 것으로 규모나 방법은 관도보다 작았지만, 대대로 도굴로 흥하는 ‘도굴 명문가’들이 생겨났다. 이 명문가들은 도굴품들의 유통과 판매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서 깊은 골동품상으로 변신하거나 겸업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도굴 방지책(쇠뇌·철벽·물 채우기·수은 주입)이 사용되었지만 도굴꾼을 이기지 못하였다. 또 도굴 방지를 위해 ‘거짓 무덤[疑塚]’을 수없이 만들었지만 도굴꾼을 속이지는 못했다. 아무리 많은 의총을 만들어도 풍수상 길지에는 진짜 무덤을 쓰기 때문이다. 도굴꾼들은 길지가 어디인 줄 알았다.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영화 '도굴'의 한 장면. /CJ ENM

도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였다. 도굴 명문가의 숙달된 경험과 도굴용 연장이다. 중국의 고도 낙양이 자랑하는 3가지 보물[洛陽三寶]이 있다. 용문석굴·백마사·낙양산(洛阳鏟)이다. 낙양산은 도굴용 삽을 말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풍수지리에 정통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를 사자성어 “望·臭·問·切”로 압축 표현한다. ‘望(망)’이란 풍수술에 따라 조성된 무덤의 위치·좌향·관의 위치 등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臭(취)’란 코(냄새)를 통해 묘의 깊이·연대·부장품까지 알아내는 것을 이른다. 영화 ‘도굴’에서 천재 도굴꾼 강동구의 재능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문(問)’은 풍수사로 분장한 도굴꾼이 촌로들에게 전설이나 정보 등을 물어 도굴 대상지를 찾는 것을 말한다. ‘절(切)’은 맥을 잡는 것[把脉]이다. 도굴할 무덤이 확정되면, 어느 방위에서 어떻게 최단 거리로 광중에 진입할 것인가를 지세·지맥을 참고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풍수술을 응용한 도굴 방법을 네 글자로 압축·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굴에 관한 학문적 논문이나 연구가 많지 않다.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도굴학’은 고고학과 동전의 양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