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가명·32)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일주일 중 사나흘은 저녁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번에 시켜먹은 건 찜닭. 지난여름 배달 플랫폼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주문했다. 예상 시간보다 20분이 늦게 배달된 찜닭의 당면은 불어서 떡져있었고, 음식의 간은 짰다. 김씨는 배달 플랫폼의 리뷰난에 이런 내용과 함께 별점 1점을 매겼다. 3일 뒤, 찜닭집의 사장이 그의 집 앞에 찾아왔다. “아직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리뷰가 별로 없는데, 1점짜리 리뷰 하나라도 있으면 평점에 큰 영향이 간다. 이번 한 번만 리뷰를 삭제해 주면 다음에 맛있는 찜닭을 보내드리겠다”는 사장의 말에 김씨는 리뷰를 삭제했다. 김씨는 “내가 쓴 리뷰에 그렇게 신경을 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우리 집 주소를 알고 있다는 게 찜찜했다”라고 했다.
리뷰 한 줄 중천금. 코로나 사태 이후 배달 플랫폼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리뷰 한 줄이 천금이 됐다. 배달 플랫폼이 처음 등장한 2010년부터 리뷰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질과 양 모두 차원이 다른 ‘배달 맛집 리뷰 2.0′ 시대다. 신뢰도가 낮았던 초창기와 달리, 식당마다 적게는 100건, 많게는 1000건 이상의 리뷰가 달리면서 이제는 리뷰가 배달 식당을 정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8월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월간 실사용자(MAU)는 1066만명, 531만2466명에 달했다. 후발 주자라서 시장 점유율이 낮은 쿠팡이츠의 경우 지난해 9월 이용자가 34만1618명에서 올해 9월에는 150만722명으로 1년 새 세 배로 늘었다. 위메프오도 같은 기간 월 이용자가 8만3176명에서 50만4711명으로 다섯 배가 늘었다. 이용자들이 배달 식당을 선택하는 3대 기준이 배달료, 최소 주문 금액, 그리고 리뷰다. 배달료는 거리에 따라 정해지고 최소 주문 금액도 메뉴에 따라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고객이 참여하는 리뷰가 바로 최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리뷰 한 줄에 울고 웃는 식당 사장들이 급기야 리뷰 한 줄에 소송까지 불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리뷰에 웃고 리뷰에 운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배달의민족’ 측은 “리뷰 개수가 몇 개인지, 개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늘어난 것은 맞는다”고 했다. 소상공인이나 요식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선 “코로나 이후 배달과 리뷰가 함께 늘어서 긴장된다” “리뷰가 가장 큰 스트레스” “리뷰 반응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글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최근 한 달치의 게시물 중 임대료와 대출 말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제가 바로 ‘리뷰’다.
배달 플랫폼에 입점한 업주들이 꼽는 변화는 사진과 구체적인 표현이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맛있어요’ ‘잘 먹었어요’ 정도의 표현만 했다면 지금은 배달 당시의 포장 상태와 재료, 맛에 대한 평가까지, 장문의 리뷰를 올리는 고객이 많아졌다. 성동구의 한 샌드위치 가게 사장은 “배달 시작 초기에 ‘가격이 비싸지만 재료가 풍성해 돈이 아깝지 않다’는 내용의 리뷰와 음식을 예쁘게 찍은 사진이 리뷰에 올라왔는데, 그 뒤로 사진이 경쟁적으로 올라왔고, 주문은 거의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정성 들여 쓴 리뷰가 호평이 아니라 악평일 때다. 최근 온라인에서 회자가 된 리뷰는 “떡볶이가 맛이 없어서 다 버렸다”는 글과 함께 싱크대에 버려진 떡볶이 사진을 올린 리뷰다. 일반인 사이에선 “맛없게 만든 게 잘못”이란 의견과 “너무 극단적인 리뷰”라는 의견으로 갈리지만, 요식업자 사이에선 “내 일이 아니지만 가슴이 아프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앞서 김씨의 집에 찾아간 찜닭집 사장 정모씨는 “신생 업체의 경우 혹평이 하나라도 있으면 치명적이다. 리뷰 100개 중 별점 1점은 큰 영향을 못 미쳐도, 리뷰 4개 중 별점 1점의 영향은 크다. 맨 위에 나쁜 리뷰가 있으면 거기에 동조해서 혹평을 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왜 전화를 하지 않고 찾아갔냐고 묻자 그는 “전화를 하면 따지는 것처럼 들릴까봐 직접 찾아갔다. 위협의 의도는 전혀 없었고,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구운 고기 배달을 하는 오창규씨는 밤 12시가 넘어 가게 문을 닫고선 손바닥만 한 종이 수십 장에 글을 쓴다. 다음 날 배달 음식을 내보낼 때 같이 보내는 편지다. 자신이 얼마나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었고, 그 음식을 먹은 고객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그는 “좋은 리뷰를 기대하고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행여나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이 편지를 읽고 마음을 누그러져 나쁜 리뷰를 안 쓰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편지”라고 했다.
리뷰를 늘리기 위해 신생 업체에선 리뷰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리뷰를 조건으로 서비스를 주는 마케팅 방식인데, 이런 ‘출혈' 마케팅을 하고도 좋은 리뷰만 기대할 수 없다. 한 카페 업주는 “리뷰 한 건당 커피 한 잔을 주겠다고 했는데, 커피만 받고 리뷰를 안 쓴 고객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했다. 한 햄버거 가게 업주는 “우리 식당의 최소 주문 금액은 1만원인데, 리뷰 이벤트 때는 8000원부터 주문 가능하고 핫도그를 서비스로 준다. 핫도그를 많이 받으려고 8000원짜리 주문을 연달아 서너 번씩 하는 고객도 있고, 심지어 서비스로 준 핫도그가 맛이 없다고 리뷰를 남긴 고객도 있다”고 했다.
리뷰 때문에 소송까지
별점 한두 개와 악평이 나올 경우 업주 입장에서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괴롭다”고 한다. 소상공인과 요식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무조건 “죄송하다”는 답글을 달라고 조언한다. ‘감정적으로 댓글을 안다는 법' ‘댓글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더 이상 악평을 참지 않겠다”는 업주들도 나타났다. 리뷰에 반박하는 답글을 달거나 배달 플랫폼에 리뷰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플랫폼 측에선 이런 요청이 들어올 경우, 인신 공격이나 욕설이 있는지, 혹은 지속적인 악평인지,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리뷰인지 판단한다. 업주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입히는 리뷰라는 판단이 나오면 일단 해당 리뷰가 안 보이게 처리하고 작성자에게 삭제 요청을 한다. 식당 업주들은 “플랫폼을 통해 리뷰가 삭제되는 경우는 열 건에 한 건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업주가 직접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삭제 요청을 하기도 하지만, 좋게 끝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옥민석 변호사는 “배달 플랫폼에 리뷰를 남겼다가 식당 주인에게 명예훼손과 영업 방해로 고소를 당했다며 찾아오는 고객들이 있다. 업주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리뷰를 지워달라고 하는데 ‘리뷰도 소비자의 권리’라고 인식하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이런 상황을 더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업주는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리뷰를 꼭 지워야 한다는 생각에 고소를 한다”고 했다. 리뷰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단 고소에 부담을 느낀 고객이 리뷰를 지운다는 것이다. 만약 허위로 리뷰를 작성하거나 심한 욕설을 써놓은 게 아니라 배달 시킨 음식을 먹고 주관적 평가를 남긴 것이라면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가짜 리뷰와도 싸워야
리뷰 전쟁의 후방에선 배달 플랫폼도 싸우고 있다. 리뷰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조작 업체 때문이다. 리뷰는 실제로 주문을 한 사람이 쓸 수 있기 때문에 조작 업체에선 가게에 주문을 넣은 뒤 허위 리뷰를 쓴다. 예를 들어 1만5000원짜리 피자의 리뷰를 조작하기 위해 실제로 피자를 시키고 돈을 낸 다음 업주에게 2만원을 받는 식이다. 업주도 주문만 받고 실제로 배달은 안 하기 때문에 조작 리뷰 한 건에 쓴 돈은 5000원인 셈. 리뷰 조작 업체에 문의를 해보니 “지역이나 업종에 따라 다른데, 최소 비용은 건당 3000원이고 4000원 정도는 생각을 해야 한다. 건당 최대 5000원까지도 간다”는 답을 들었다.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적발한 허위 리뷰만 7만 건으로 지난해 전체 2만 건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AI가 조작으로 의심이 되는 리뷰를 1차 분류한 뒤 검수 전담팀의 인력이 직접 조작 리뷰를 골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적발한 리뷰 조작 업체를 지난 3월 고발했다. 배달의민족 측은 “이 업체를 쓴 업주에게 경고를 줬다. 리뷰 조작을 반복적으로 할 경우, 플랫폼에서 내보낼 것이다”라고 했다.
업주 입장에선 리뷰가 곧 홍보이자 자산이기 때문에 조작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식당의 권리금을 산정하는 기준에 매출 뿐아니라 리뷰도 포함되는 게 추세다. 예를 들어 ‘동 평점 3위 안이면 권리금 4000만원’이란 식이다.
분식집을 하는 하모(43)씨는 칭찬 일색인 리뷰와 만점에 가까운 평점으로 장사를 해왔다. 두 달 전부터 별점 1점과 함께 “음식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튀김이 다 눅눅하다” “양이 너무 적다”는 평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하씨는 “죄송하다, 고치겠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어서 변호사를 찾아갔다. 리뷰를 남긴 사람을 찾아내 보니 동일 인물이 아이디와 주소만 달리한 것이었다. 이젠 경쟁 식당이 남기는 허위 리뷰와도 싸워야 한다.
“같은 동네 다른 분식집 사장이더군요. 제가 배달 노하우가 좋아서 주문이 많다 보니 샘이 났나 봐요. 고소를 하긴 했는데,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그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요. 배달도 없고, 리뷰도 없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