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과 남대문 사이에 들어선 대형 신축 오피스 건물 ‘그랜드센트럴(구 SG 타워)’. 노후한 저층 건물을 허물고 지하 8층~지상 28층 두 동으로 지은 쌍둥이 건물이다. 지난 6월 준공한 이 건물은 요즘 밤마다 내부 조명을 모두 켜둔다. 한 공간도 빠짐없이 켜진 LED 조명의 향연에 멀리서도 눈부실 정도. 중간중간 불이 꺼진 바로 옆 연세세브란스 빌딩 등 주변 건물과 대비된다. 모든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있는 걸까? 정답은 노. 아직 이 건물은 임대가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왜 불을 켜놓은 걸까.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신축 건물은 준공 전 조명 점검 때문에 며칠 동안 전체 불을 켜놓는다. 준공 후엔 대외적으로 건물이 완성됐음을 알리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일정 기간 모든 조명을 밝히기도 한다”고 했다. 기간이 길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준공 후 효과적인 임대를 위해 홍보용으로 건물 전체를 환하게 해놓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했다. 모두 입주한 듯한 착시 효과를 주는 동시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얘기다.
최근 대형 오피스 건물의 높은 공실률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가 지난 9일 발표한 ‘2020년 3·4분기 오피스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직격탄으로 인해 서울 주요 권역의 대형 오피스 공실률은 12.4%. 전 분기 대비 5.4% 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종각⋅광화문⋅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10.9%)과 여의도(27.2%) 공실률이 높았다.
대우건설 안상태 상무는 “대형 오피스 빌딩은 건물 전체나 여러 층을 쓰는 큰 회사가 입주해야 수익이 나는 구조인데, 최근엔 대형 입주사를 못 구해 시공사가 들어가기도 한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자 야간 조명을 홍보 수단으로 쓰는 신축 건물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는 “LED 조명은 기존 조명보다 훨씬 밝아 한꺼번에 켜면 시선 끄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새 건물이 들어왔구나 생각하게 된다”며 “매체 광고, 전단, 모델 하우스 등 분양을 위한 다른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면 ‘가성비’ 좋은 홍보 방법”이라고 했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그랜드센트럴도 임대가 다 안 된 것으로 안다. 건물주가 임대 안 된 층들을 컴컴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활기찬 이미지를 주기 원해 조명을 다 켜놨다고 들었다”고 했다.
전기료는 얼마나 될까. 서울 도심의 한 대형 오피스 빌딩 관계자는 “건물 전체 한 달 전기요금이 1억~1억5000만원 정도 나온다. 대부분 동력에 쓰이는 전기요금이고 조명에 들어가는 돈은 극히 일부”라고 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입주로 화제 모은 용산트레이드센터를 설계한 간삼종합건축 관계자는 “바닥 면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력 소모가 적은 LED 조명을 쓰기 때문에 20~30층 대형 오피스 건물에서 한 달 동안 야간 조명을 다 켜둔다고 해도 많아야 몇백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안상태 상무는 “창에 태양광 셀을 붙이는 등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BIPV)을 넣은 신축 건물이 많고, 심야 전기료가 싸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기술적으로 수월해진 이유도 있다. 대림건설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자동제어 시스템으로 건물 전체 조명을 한 번에 켜고 끌 수 있게 됐다”며 “아무리 홍보 효과가 있다 해도 과거처럼 일일이 손으로 불을 켜고 꺼야 한다면 이런 방법은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