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직장인 A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상대방은 A씨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며, 카카오톡으로 대화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카카오톡 친구 추가를 하고 보니 프로필에 미모의 여성 사진이 떴다. A씨가 호감을 가지고 상대와 대화를 이어가자, 여성은 A씨에게 “영상 통화를 하자”고 했다. 대화가 한창 무르익자, 여성은 서로 옷 벗고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화상 채팅 방에서 나체를 드러냈다. 다음 날 A씨에게 메시지가 한 통 왔다. ‘아내에게 이 영상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300만원 보내.’ 그 영상에는 자신이 음란 행위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상대는 A씨 아내 전화번호를 포함해 A씨 휴대전화에 있는 휴대전화 번호 전부를 이미 확보한 상태. 전형적 ‘몸캠 피싱’에 걸린 것이다.

‘몸캠 피싱’이란 의도적으로 유도한 음란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을 트집 잡아 금전을 갈취하는 행위다. 대검찰청 조사에 따르면 몸캠 피싱 관련 범죄 적발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02건에서 지난해 1800여 건으로 5년 만에 약 18배 급증했다. 피해액 역시 2016년 8억7400만원에서 지난해 55억2900만원으로, 3년 만에 약 6.3배 늘었다.

그러나 적발 건수가 이 정도일 뿐,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사이버보안협회에 따르면 올해 몸캠 피싱 관련 악성 코드를 받은 피해자는 1만2000여 명에 달했다. 김현걸 한국사이버보안협회장은 “몸캠 피싱은 2018년에 이미 정점을 찍고 매해 1만여 명 정도로 큰 변동이 없었는데, 올해에 예년보다 피해자가 20% 정도 늘었다”며 “코로나 확산으로 집 안에 머무르며 디지털 기기를 쓰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피해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의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몸캠 피싱을 당해 울고 있는 남자들이다. 이달 초 기자에게도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1년에 한두 번 정도 연락하는 지인 이름과 동영상이 담겨 있었다. 문자는 지인을 사칭하면서도 평소 지인 말투와 달랐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약간씩 틀렸다. 영상을 누르지 않았지만, 섬네일에 이미 지인 얼굴과 벗은 여자 몸이 올랐다. 조용히 문자를 지우고 번호를 차단했다. 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어나는 몸캠피싱 범죄

◊피해자 대부분 남성인 성범죄

“어제 당했습니다…” “아 미치겠습니다…”

네이버 ‘몸캠 피싱 피해자 모임’ 카페에 올라온 글 제목이다. 2만4780여 명이 가입한 이 카페는 몸캠 피싱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곳이다. 이번 달에만 60여 건의 피해 호소 글이 올라왔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일 것이란 생각과 달리, 몸캠 피싱 피해자는 99% 이상이 남성이다. 피해자 나이는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으며, 직업군도 고학력 전문직부터 초등학생까지 다양하다. 김 협회장은 “피해자 중에서 ‘어떻게 채팅을 하셨을까’ 싶을 정도로 고령인 분이 있었는데, 피싱범이 정말 잘 따라 할 수 있게 차근차근 알려줬더라”고 했다.

몸캠 피싱 방법은 대개 이렇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미모의 여성이 말을 건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종착점은 스카이프, 페이스톡 등 ‘화상 채팅’. 이곳에서 피해자들은 상대의 달콤한 말에 속아, 타인에게 보이기 민망한 장면을 노출한다.

이때 피해자들은 상대의 영상이 대부분 진짜라고 착각하지만, 상대는 미리 준비된 영상을 띄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요즘엔 화상 채팅 앱에 동영상을 띄우는 기능이 있어, 어렵지 않게 상대를 속일 수 있다. 피해자들이 시기별로 당한 영상을 보면 상대의 모습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 게 이 때문이다.

피싱 범죄를 벌이는 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휴대전화 속 연락처 해킹이다. 이 역시도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거나 “화질이 떨어진다”며 특정 파일을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 이 파일에는 연락처 등 휴대전화 데이터를 빼내는 악성 코드가 숨어 있다.

어찌 보면 뻔히 보이는 수법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왜 걸려드는 것일까. 경찰 관계자는 “지능이나 교양 수준과는 관계가 없다”며 “일각의 생각과 달리 몸캠 피싱범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을 두고 피해자에게 접근한다”고 했다. “단 한 번 채팅으로 만나서 서로 알몸을 보여달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은 1~2주 동안 연애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분히 호감을 쌓고 나서 화상 채팅을 시도합니다.”

‘디지털 익명성’을 너무 믿는 것도 문제다. 내가 단 댓글을 주변 사람들이 모르듯, 피해자 대부분이 “절대 내 주변에 영상이 유출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처 방안은?

몸캠 피싱이 무서운 건 금전적 피해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낙인찍힌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음란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신고를 꺼린다. 협박범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기혼 피해자라면 아내·장모 등에게 가장 먼저 유포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딸에게 영상을 보낸다.

몸캠 피싱 피해자 카페에서는 이로 인한 괴로움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혼하고 애들과 떨어져서 혼자 사는” 경우도 있고 “이민을 준비 중”이기도 하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토로한다. 실제 2014년에는 몸캠 피싱 협박범에게 시달리던 한 대학생이 투신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미성년자는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점을 노려, 이들을 이른바 ‘몸캠 노예’로 삼는 경우도 있다. ‘돈을 내는 대신 다른 사람 3명을 데려오면 영상을 지워 주겠다’며 몸캠 범죄에 가담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당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속인다. 이 경우 해당 청소년이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몸캠 피싱’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걸려들지 않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합의금을 건네더라도, 협박범이 영상을 지우고 유포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합의금을 줘도 유포하고, 주지 않아도 유포하니 차라리 돈이라도 주지 말라’는 게 피해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일부 피해자는 “나는 음란 채팅을 하지 않았는데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다른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것)에 당했다”고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본다. 한 보안 업체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몸캠 피싱은 스스로 음란 채팅을 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했다.

몸캠 피싱에 당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지만, 만약 걸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디지털성범죄피해지원센터·한국사이버보안협회 등에서 피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일부 사이버·보안 업체를 통하면 협박범이 빼내 간 연락처 정보를 바꾸거나 삭제하는 등의 기술적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이때 자신의 휴대전화에 심긴 악성 코드를 지워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해 단서를 잡기 때문. 그러나 업체를 통할 경우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업체라도 영상을 영구적으로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페이스북이든 채팅 앱이든 친밀감을 가장한 접근이 범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특히 화상 채팅에서 서로 나체를 보여주자고 하면 범죄일 확률이 99%, 채팅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라며 파일 설치를 유도하면 100%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몸캠 피싱

피해자 99%가 남성인 디지털 성범죄. 의도적으로 음란 화상 채팅을 유도하고서, 이를 녹화해 피해자 지인에게 유포하겠다며 협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