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패딩의 계절’. 2011년 10대 사이에서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든다는 뜻)로 불린 노스페이스의 패딩 점퍼(이하 패딩)가 유행하면서 패딩은 겨울에 꼭 필요한 겉옷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롱패딩이 유행하더니 요즘는 숏패딩이 대세라는 얘기가 나오고, 노스페이스보다 더 비싼 캐나다구스나 몽클레어와 같은 신(新)등골브레이커도 등장했다. 하지만 올해 겨울은 패딩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후에 패딩은 필요없다는 ‘패딩무용론’과 패딩 말고도 입을 게 많다는 ‘패딩회의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위·오리털 대신에 공기로 보온을 하는 ‘에어 패딩’. /무신사

얼죽코, 코트 입으면 얼어 죽을까?

‘얼죽코’. 영하의 날씨에 “얼어 죽어도 코트를 입겠다”며 멋을 중시하는 이들을 가리킨 신조어이다. 얼죽코는 거위와 오리털로 빵빵하게 채워진 패딩이 패션에 방해가 된다고 여긴다. 패션과는 무관하게, 한국 겨울 날씨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두꺼운 패딩을 입을 필요가 없단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제표준화기준(ISO)는 러시아나 몽골처럼 겨울철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지역에서는 후드가 있는 다운 파카, 바지 두 겹, 내복, 스웨터, 양모 장갑 등을 갖춰 입는 것을 권장한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대한민국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6도에서 영하 0.4도였다. 그럼에도 같은 기간 영하 15~20도인 러시아·몽골과는 바지 하나 차이밖에 없는 셈이다.

필요 이상으로 따뜻하게 입으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이주영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제주도의 해녀 할머니와 도시의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손가락 끝의 혈관 확장을 통해 추위를 참는 능력을 검사했다. 나이가 들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해녀 할머니들이 20대 여성보다 추위를 잘 참았다. 십대 때부터 겨울철에도 물질을 하면서 체온조절 능력이 생긴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 겨울 날씨에서는 패딩을 안 입어도 될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패딩을 입어서 너무 따뜻하게 다닐수록 추위에 약해지게 된다.

거위털 대신 공기를 입는다?

2010년대 중반부터 ‘착한 소비’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동물의 털을 이용한 옷감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가장 대표적인 게 모피. 일명 ‘에코퍼’라고 불리는 인조 모피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박은경(44)씨는 “요새는 동물 복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모피를 입고 다니기가 조심스럽다. 에코퍼를 입고 나간 날엔 나도 모르게 ‘이거 진짜 아닌 에코퍼’라고 먼저 말을 하게 된다”라고 했다.

패딩에 쓰이는 오리와 거위의 털은 모피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비교적 최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캐나다구스나 몽클레어처럼 인기가 많은 고가 패딩은 대부분 ‘다운 패딩’으로 오리·거위의 가슴, 배, 목 아래, 날개 밑에서 나는 솜털이 충전재로 들어가있다. 깃털과 솜털이 섞여 들어가는데 솜털 함량이 75% 이상인 것만 다운 패딩이 될 수 있다. 거위와 오리가 산 채로 털이 뽑힌다는 게 알려지면서 다운 패딩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올해는 인조 가죽이나 인조 모피처럼 대체 충전재를 넣은 패딩이 유행이다.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았다고 ‘비건 패딩’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패딩 브랜드 ‘세이브더덕(SAVE THE DUCK·오리를 살린다)’은 오리털·거위털 등 동물 깃털 대신 자체 개발한 신소재 ‘플룸테크’를 보온용 충전재로 사용한다. 세이브더덕을 수입·판매하는 신세계인터내셔널 측에 따르면 8월부터 매달 목표 판매량의 2배 이상 팔리고 있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광고대행사 이노션, 패션 브랜드 파라코즘은 공기를 충전재로 쓰는 에어 패딩을 내놨다. 말 그대로 공기를 충전해서 입는 패딩이다. 공기의 보온성을 검증한 논문(2015)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옷은 다운 패딩보다 보온력이 비슷하거나 우수하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이주영 교수는 “따뜻함도 중독”이라며 “이미 어릴 때부터 따뜻한 환경에 길들여지고 계속 패딩을 입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걸 벗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