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길을 파헤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곳곳이 공사 중이지요. 걷어놓은 세금을 해가 바뀌기 전에 쓰는 중일 겁니다. 시끄럽고 길은 더 막힙니다. 피곤하고 짜증이 나지요.
소수지만 정반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 가는 길을 닦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장의사(염장이) 도움을 받게 됩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고요. 그에게 ‘마지막 목욕’을 맡기고 수의로 갈아입은 다음에 관 속에 누울 테지요. 올해 들이닥친 코로나는 그 길마저 방해했습니다.
코로나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 2~3월에는 감염될까 봐 의료진도 장례업자도 시신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15만원이던 운구차 비용 또한 ‘위험 수당’이 붙어 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는군요. 강봉희(67) 장례지도사협의회 봉사단장에게 들었습니다. 대구에서 고독사나 무연고자,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무료로 대행해온 사람입니다.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 역사에는 올해 처음 등장한 단어가 ‘코로나’입니다. 코로나 사망자는 여느 죽음과는 정반대였대요. 3일장을 한 뒤에 화장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사후 24시간 안에 서둘러 화장하고 장례는 치르거나 말거나. 방역 매뉴얼에 따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옮을까 봐 두려워 누구도 주검에 손을 대지 않자 강봉희 단장이 나섰지요. 40대 중반에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염장이가 된 그는 “두렵고 섬뜩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하지요. 고령 사회에 우리는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강 단장은 “숨이 끊어진 뒤의 순간들을 마주하다 보니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고 해요. 생(生·삶)과 졸(卒·죽음)은 본디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어령 선생 말마따나 “사람은 좁은 산도(産道)를 필사적으로 기어 나오고 과일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 죽음도 함께 있지요.”
강 단장은 1년에 100명의 죽음을 닦고 배웅합니다. 60%는 기초생활수급자, 30%는 무연고자, 10%는 고독사. 무연고 시신은 코로나 사망자들이 그랬듯이 상주도 조문객도 거의 없는 적막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내가 만나는 죽음 대부분은 살아 있을 때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누군가는 무관심 속에 매일 죽어갑니다. 고독사 뉴스를 보고 뒤늦게 분노하지 말고 오늘부터 관심을 가져야 해요.”
망자의 얼굴은 코로나든 뭐든 사인(死因)과 관계없이 다 평온하다고 합니다. 고인 표정만으로는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가늠할 수 없대요.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다가올 때 괴로워하지 마세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분들이 편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