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영석

90세 후반쯤 일이다. 큰아들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했다”면서 지팡이를 가져왔다. 그 후에는 여행을 함께하던 사람과 강원도 양구에서도 정성 들여 만든 지팡이를 또 보내왔다. 집에 지팡이만 세 개다.

당장 필요하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쓰게 되겠거니 생각했다. 뒷산에 오를 때나 집 부근을 산책할 때는 짚어보곤 했다.

옛날에 친구들과 런던에 갔을 때는 50~60대 영국 신사들이 실크 모자를 쓴 채 스틱을 팔에 걸치고 공원을 거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 동갑내기 친구 정 교수가 정년퇴직 이후부터는 스틱을 짚고 나서곤 했다. 지팡이 없이 걸어 다니는 나보다 신사다운 모습 같아 나도 해볼까 하는 유혹을 받았다.

하루는 광화문 시민회관 앞을 지나가는데 한 신사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지팡이라기보다는 스틱이라 부르면 더 좋을 것 같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 제자 교수였다. 짐작해 보니까 정년 은퇴할 나이는 되었을 것 같았다. 늙어서 마지못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름답지도, 신사답지도 않으나 장년기에 영국 신사 흉내를 내는 것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미 나는 그 좋은 시기를 놓친 것이다. 후회스럽기도 하다.

지금 나이에 지팡이를 짚고 나서면 ‘김 교수도 늙었구나. 작년만 해도 보기 좋았는데’라면서 측은히 여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지팡이 없이 다니면 ‘어떻게 하려고 지팡이도 없이 다니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보아도 지팡이에 의지하고 걷는 노인들 모습은 신사다움도, 멋지다는 인상도 주지 못한다. 사실 내 나이에 지팡이를 짚게 되면, 몇 해 뒤엔 휠체어를 타게 되고 그 후에는 외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동갑내기 안병욱 교수나 백선엽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직은 지팡이 신세를 지지 않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래전 친구인 이일선 목사 부부가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의사이기도 하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사람은 둘인데 다리가 여섯이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둘 다 지팡이를 짚고 와 미안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직 늙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 유머러스한 태도가 부러웠다. 나도 때가 되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면서 ‘나도 늙으니까 두 다리가 모자라 셋이 되었습니다’라고 농담할 용기가 있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 연말에 지팡이가 또 하나 들어왔다. 100세가 되었다고 청와대가 보내 준 청려장(靑藜杖)이었다. 옛날 왕실에서는 80세에 하사했는데 지금은 100세로 승격한 셈이다.

지팡이가 넷이 되니 언제부터 짚어야 하나? 때가 가까워진 것 같다. 새해가 되어 102세가 되는 4월부터는 지팡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지팡이를 짚는 것이 또 하나의 마지막이기보다 새로운 시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