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동작구 이수역 지하철 역사 안에 ‘창고’가 생겼다. 단순한 컨테이너 창고가 아니다. 보온·보습 기능, CCTV 녹화, 앱을 통한 출입 인증 기능까지 갖췄다. 이용객도 역사 직원이 아닌 시민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창고 크기에 따라 월 8만~13만원 수준의 이용료를 받는다.
동대문구 답십리역, 송파구 가락시장역에도 같은 창고가 생겼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이 서비스 이름은 ‘또타 스토리지’.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수납공간이 부족한 1인‧4인 가구를 위해 이들이 많이 사는 역사에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다”면서 “개시 한 달 만에 이용률이 74%에 달해, 조만간 다른 역에도 ‘또타 스토리지’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창고가 늘고 있다. 지하철역에도, 대형 마트에도, 주유소에도, 심지어 강남 도심 한복판에도. 원하는 공간에 필요한 물건을 맡기고 언제나 빼 올 수 있는 공유 창고, 이른바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다.
◇계절 옷·취미 용품 모두 ‘공유 창고’로
서울 강남구 17평 아파트에 사는 오은주(55)씨 집에는 여름옷이 없다. 오씨는 최근 여름철 옷 120여 벌을 큰 상자 두 개에 나눠 담아 한 공유 창고 업체에 맡겼다. 월 이용료는 1만3000원 수준. 계절이 바뀌면 겨울옷도 똑같은 방식으로 맡길 계획이다. 오씨는 “집이 좁다 보니 계절 옷을 보관할 만한 서비스를 찾게 됐다”고 했다.
오씨처럼 계절용품을 집 밖에 맡기는 이는 계속 늘고 있다. 짐 보관 서비스 ‘마타주’를 운영하는 마타컴퍼니 이주미 대표는 “2016년 사업 시작 이후 매년 이용 고객이 40~50%씩 늘고 있다”면서 “원룸 등 수납공간이 부족한 집에 사는 젊은 여성이 옷을 맡기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했다.
좁은 집에 사는 1인 가구만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부터 공유 창고 ‘편안창고 스페이스타임’을 운영하는 시공테크 최준우 팀장은 “고가의 미술품이나 스포츠 장비, 도서 등 취미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려는 중장년층 이상 수요도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한 셀프 스토리지 업체 관계자도 “캠핑용품이나 아이 물건을 보관하려는 40대 이상 고객이 1인 가구에 사는 20대 고객만큼 많다”고 했다.
캠핑과 낚시가 취미인 이준오(26)씨는 지난여름부터 월 10만원을 내고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이씨는 “캠핑용품이 점점 늘다 보니 집에 짐을 쌓아 놓기 눈치 보였다”면서 “나만의 창고를 가지면서부터는 짐 걱정 없이 취미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내년 결혼을 앞둔 김영은(30)씨는 예비 신혼집 리모델링을 위해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를 사용한 경우. 김씨는 “당장 생활에 필요 없는 에어 프라이어와 TV, 옷, 주방 기구 등을 맡겼다”고 했다.
◇마트도, 주유소도 ‘창고 전쟁’
대형 마트와 주유소도 공유 창고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일산점, 부산 서면점, 수원 원천점에서 유휴공간을 활용한 공유창고 서비스 ‘더 스토리지 위드 홈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한 스타트업과 제휴해 사당동 주유소에 공유 창고를 만들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도심으로 인구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충분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물건을 맡길 창고를 집 밖에서 찾는 ‘집의 외주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관련 수요가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했다.
공유 창고 사업은 이미 선진국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 중개업체 스페어풋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셀프 스토리지 시장 규모는 380억달러(약 42조원)에 달한다. 1인 가구 수가 많은 일본의 셀프 스토리지 규모도 같은 해 기준 743억3000만엔(약 8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