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만 해도 스마트폰의 진격 속에 다이어리는 구시대 유물이 될 운명이었다. 엄지 몇 번 까딱해 휴대전화에 스케줄을 입력하는 세상, 수첩 꺼내 펜으로 긁적이는 수고와 영영 작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10~20대 Z세대가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빠졌다. 일명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줄인 신조어)’ 열풍. 아기자기하게 스티커 붙이고, 정성 담뿍 담은 손글씨로 하루 일과를 기록한다.
당장 신년 다이어리 판매량이 급증했다. ‘핫트랙스’ 온라인몰의 경우 2020년 다이어리·플래너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2배, 스티커 등 ‘다꾸’ 아이템은 8배 증가했다. 디자인 소품 전문 쇼핑몰 ‘텐바이텐’도 같은 기간 다이어리 판매 수량이 130만개로 68%, 다꾸 아이템은 280만개로 97% 늘었다. G마켓의 관련 상품 판매도 전년 대비 39% 정도 증가했다.
다이어리의 복권(復權)은 코로나가 몰고 온 현상. 중학교 2학년인 유지민(15)양은 “코로나 초기에 등교 안 할 땐 유튜브로 시간을 때웠는데, 학교 안 가는 기간이 길어지니 다들 따분함을 느낀다”며 “생산적인 취미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다이어리 쓰는 친구가 많아졌다”고 했다. 핫트랙스 관계자도 “2019년 전후로 학생들 사이에서 다꾸 트렌드가 조금씩 생겨났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집에서 하는 소확행으로 주목받으며 다이어리 소비가 급증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 손실을 다이어리 매출로 메우겠다는 업체의 계산도 깔려 있다고 한다. 문구 업체 ‘모트모트’ 김권봉 대표는 “문구 회사 매출에서 다이어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연말 다이어리 판매로 연중 적자를 메운다는 얘기가 있다”며 “2020년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커 ‘얼리버드 판매’라 이름 붙여 조금이라도 일찍 다이어리 장사를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보통 이듬해 다이어리 판매를 10월 전후에 시작했는데 2019년엔 9월, 2020년엔 8월로 한 달씩 빨라졌다”고 했다. G마켓 관계자도 “업체들이 코로나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려 팔릴 만한 아이템은 무조건 경쟁적으로 내놓는다”며 “그중 다이어리는 ‘코로나 집콕 아이템’으로 제격이라 예년보다 두세 달 앞당겨 판매하는 회사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