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처벌 요구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수많은 남자 연예인이 알페스 문화를 통해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 (알페스 처벌을 요구한 국민청원 게시글)

“소라넷과 n번방의 시대에 여자들이 음란 소설 좀 썼다고 저렇게 흥분할 일인가?”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 A씨)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강력 처벌 요구가 온라인상 젠더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알페스는 주로 남성 아이돌 간 동성애를 소재로 삼는 팬픽(팬이 스타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을 말한다. 청원인은 “이미 수많은 남자 연예인이 이러한 알페스 문화를 통해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 피해자 상당수는 아직 미성년자이거나 갓 사회 초년생이 된 아이돌”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기준 20만명이 넘게 이 청원에 동의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A씨는 이 청원을 반대하며 이렇게 썼다. “(알페스가) 아무리 지독해봐야 그 대상은 어차피 극소수의 ‘미남’으로 한정돼 있고 그 폭력이란 것도 텍스트에서 멈춘다. 여성은 이미 숱한 실존 인물들이 알페스보다 훨씬 더 지독한 묘사의 야설로, 딥페이크로 당한다.”

실제 인기 래퍼 비와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청원을 공유하면서 “알페스는 성범죄다”라고 썼다가, 여성 네티즌들의 거센 악성 댓글 세례를 받았다. ‘관상이 딱 N번방 성범죄자 운영자 한남들하고 비슷’ ‘알페스는 불편하지만 AI 인공지능 여자 캐릭터 이루다 성희롱하는 건 침묵하는 그 성별. 여자 아이돌 움짤, 직캠, 합성, 딥페이크는 안 불편함?’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여성 이용자가 많은 이른바 여초(女超)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알페스 논란이 챗봇 이루다의 성희롱 논란을 덮기 위해 나온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딥페이크 처벌 요구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알페스 청원 이틀 만인 지난 13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맞불 청원’도 등장했다.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내용이다. 딥페이크는 AI를 이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를 합성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최근 이 기술이 성인용 비디오에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데 악용되면서 심각한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청원인은 “구글, 트위터 등에서 딥페이크 영상을 쉽게 검색할 수 있고 수많은 사이트가 생성되고 있다”며 “특히 딥페이크 영상 피해자 대부분이 한국 여성 연예인”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피해자가 각각 남자와 여자 연예인인 두 청원이 등장하면서, 남초(男超)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대리전 양상이 벌어졌다. 양 커뮤니티는 ‘화력이 부족하다'며 청원 동의를 적극 독려했다. ‘맞불 청원’에 이어 ‘실검 총공(실시간 검색어 총공격)’도 등장했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는 특정 시간에 많은 사용자가 검색한 단어를 1위부터 10위까지 메인 화면에 노출한다. 실시간 검색어로 등록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에게 해당 이슈를 알릴 수 있다. 이를 노린 여초·남초 커뮤니티에서 ‘오전 8시 딥페이크 총공’ 등 정해진 시간에 특정 단어를 많이 검색하도록 집중 공세를 펼쳤다. 실제 지난 13일 오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알페스와 딥페이크가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젠더 갈등과는 별개로 전문가들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했거나 성애 수위가 높은 알페스의 경우, 법적 처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알페스의 경우 형법 제243조(음화반포등) 등에 의해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형법 제243조는 음란한 문서나 도화 필름 등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고 했다. 딥페이크의 경우에도 이미 법적 처벌 근거를 갖추고 있다. 성폭력 특별법 개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반포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영리 목적이 인정되면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