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에 고무신 신고, 머리엔 갓을 쓴 무용수들이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에 맞춰 신나게 스텝을 밟는다. 막춤인가, 난해한 현대 무용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몸짓 뒤로 덕수궁, 자하문터널, DDP 등 한국의 관광 명소들이 스쳐 지나간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출연한 이 영상은 지난 한 해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은 광고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 홍보 캠페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서울, 부산, 전주 등 여섯 도시를 배경으로 만든 이 캠페인의 유튜브 조회 수는 현재 3억을 돌파했다. 댓글 창에는 “K팝 아이돌보다 신선하다”는 해외 팬들의 찬사가 줄을 잇는다. 한국 팬들은 기괴한 매력을 내뿜는 이 무용단에 ’21세기 도깨비'라는 별명을 붙였다.
여섯 ‘도깨비’를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연습실에서 만났다. 100㎡(약 33평)쯤 되는 지하 연습실엔 한기가 돌았다. 창고였던 곳을 손수 개조했다고 했다. 무용수들이 차가운 고무 매트 위로 쉴 새 없이 날고, 엎어지고, 뒹굴었다. 거친 숨소리 사이로 간간이 ‘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2019년 이날치를 만나다
연습을 끝낸 단원들이 땀을 닦으며 하나둘 모였다. 김보람(38) 예술 감독과 장경민(37) 대표를 비롯해 최경훈(38)·이혜상(33)·유동인(28)·임소정(26)씨.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춤출 때와는 표정이 전혀 딴판이다. 연습 때 가장 열심히 기합을 넣던 막내 임소정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주목 공포증이 있다”며 땅만 쳐다봤다. ‘맏형’ 최경훈이 “소정 무용수는 인터뷰가 처음인가 봐” 하며 골렸다.
–인기가 대단합니다. 각종 공연에 방송, 광고 촬영까지 섭외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오죠?
장경민(이하 장): “아니요. 지난 한 달간 휴가였어요.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어제(16일) 다시 모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휴가라니요.
김보람(이하 김): “이 회사(김 감독은 무용단을 회사라 불렀다)의 가장 큰 복지가 휴가예요. 매년 겨울에 한 달, 여름에 2주 휴가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은 많았지만,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휴식이 꼭 필요하니까요.”
–이날치와 함께한 ‘범 내려온다’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만 4500만이 넘었더군요. 앰비규어스가 출연한 관광공사 홍보 영상의 합산 조회 수는 3억이나 되고요. 이런 인기를 예상했습니까.
최경훈(이하 최): “아, 전혀요. 저희는 계속 저희만의 활동을 해왔을 뿐인데, 갑자기 유명해져 당황스럽죠.”
–이날치와는 어떻게 협업이 이뤄진 겁니까.
김: “이날치를 만든 장영규 음악 감독님과는 2019년 DMZ 뮤직 페스티벌 때 함께 작업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희가 마음에 드셨는지, 두 달 뒤에 밴드 ‘이날치’를 결성했다며 함께 공연해보자고 하셨죠. 이날치 정규 앨범 1집 ‘수궁가’의 10곡을 모두 보여주는 공연인데, 처음엔 저희 일정이 너무 바빠 손사래를 쳤어요. 당장 한 주 뒤에 유럽 투어를 떠나야 했고, 귀국 다음 날 이날치와 공연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음악을 들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열 곡의 안무를 한 주 만에 완성하고, 유럽 투어 중 틈틈이 연습했지요. 이날치 멤버들과는 공연 당일이 돼서야 처음 만났고요. ‘범 내려온다’ ‘좌우나졸’ 등 수록곡이 히트하면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의상 아이디어? 시장 바닥에서 얻죠”
싼 티 나는 듯 힙한 의상도 ‘앰비규어스 신드롬’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다. 하나같이 선글라스를 쓴 멤버들은 한복 저고리에 바람막이를 받쳐 입기도 하고, 정장에 조선시대 투구를 걸치기도 한다. 전통과 유행의 기묘한 조합이다.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임소정(이하 임): “‘혜보 디자인'이에요. 이혜상·김보람 디자인!”
김: “하하, 스타일리스트는 따로 없고요. 이혜상 무용수와 제가 주로 옷을 봅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모두 ‘시장 바닥’에서 나와요. 새 작품을 준비할 때면 매일 재래시장에 들러 옷을 봐요. 동묘시장, 동대문 원단 시장, 풍물 시장, 방산시장···.”
유동인(이하 유): “제가 쓴 투구는 풍물 시장에서 만오천 원에 샀어요. 근데 투구에 있어야 하는 상모(象毛·붉은 털 장식)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미러볼을 달았지요. 클럽 느낌 나고, 어쩐지 ‘힙’해 보이지 않나요?(웃음)”
–’범 내려온다'에서 최경훈 무용수가 정자관(程子冠·양반이 쓰는 갓의 일종)을 옆으로 돌려 쓴 모습도 화제가 됐습니다.
최: “그 갓은 다른 작품 할 때 쓰던 걸 재활용한 건데요. 사실 저는 돌려 쓰는 게 맞는 줄 알고 쓴 거예요(웃음). 제 갓이 관심을 받고 나서야 잘못 썼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 더 재밌는 것 같아 그 뒤로도 계속 돌려 쓰고 있어요.”
–전주 편 ‘좌우나졸’ 영상에서 입고 나온 색동 의상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이혜상(이하 이): “동대문시장을 돌면서 원단을 구했고, 평화시장 앞 지하 상가 봉제 공장에 저희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주문해 만들었어요. 마음에 딱 맞는 의상이 없으면 이렇게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합니다.”
◇무대 사라지자, 거리로 나섰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이날치와 이룬 협업이지만, 앰비규어스는 2007년 데뷔 때부터 무용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울예대 무용과 선후배 사이인 김보람과 장경민이 주축이 돼 창단한 이 무용단은 2008년 CJ영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여러 상을 탔다. 대표 레퍼토리 ‘바디콘서트’를 관람한 세계적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눈을 뗄 수 없는 공연”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무용단이 자리를 잡는 데는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요.
김: “첫 4년은 한 해에 백만원도 벌기 힘들었어요. 단원들은 카페 알바를 하며 생계를 이었죠. 오랫동안 변변한 연습 공간도 없어 한강공원, 공사장, 멤버 자취방 등을 돌아다니며 춤을 췄어요. 2015년 안산문화재단에 상주 예술 단체로 정착한 뒤부터는 그래도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해졌고요.”
–여러 대회에서 입상했는데, 왜 돈을 못 벌었나요.
최: “뮤지컬이나 연극은 한번 작품을 만들면 계속 티켓 수익이 나지만, 무용은 공연장에 관객을 동원할 ‘티켓 파워’가 약해요. 안무를 하고, 무대에 올리고, 입상하고, 접는 일의 반복이죠.”
–작년 한 해만 아모레, KT,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 광고도 여럿 찍었던데요.
유: “저희 살림살이는 나아졌죠. 하지만 무용계에서 함께 활동하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코로나 사태 이후 순수 예술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거든요. 지난 한 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무용을 그만두는 동료도 많았어요.”
–코로나 사태로 대면 공연이 사라지고, 대신 카메라로 관객을 만나는 비대면 공연이 늘었습니다. 카메라만 있는 무대에 서보니 어떻던가요.
최: “공연 예술의 생명은 관객과 현장에서 호흡하는 것인데, 갑자기 저희만 남고 관객은 모두 사라진 거잖아요. 텅 빈 객석에서 카메라만 보며 춤에 집중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의 뜨거운 에너지를 카메라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죠.”
임: “그래서 무대에서 저 자신한테 더 집중하려고 해요. 관객과 소통하는 대신, 제 내면의 것들을 더 끄집어내려고 노력하죠.”
◇KT·아모레 등 광고 쇄도
공연장에서 관객이 사라지자 앰비규어스는 관객을 찾아 거리로, 인터넷으로 나섰다. 무용수들이 마스크를 쓴 채 광화문에 나가 즉석 공연을 하고, 함께 춤을 추자며 유튜브에 ‘댄스 튜토리얼’도 올렸다. “저희는 작품도 사람과 함께 코로나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팬데믹 시대에 무용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라는 고민에 대한 저희 나름의 답이랄까.”(김보람) 하지만 정작 춤 튜토리얼의 댓글 창엔 ‘볼 땐 쉬웠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온몸이 저린다’ ‘관절 마디까지 어색한 동작투성이’라는 성토가 줄을 이었다.
–무용수들은 이 어려운 동작을 어찌 이리 쉽게 해냅니까.
최: “저희도 무지 힘들어요! 한 시간짜리 ‘바디 콘서트’ 공연을 끝내고 나면 몸무게가 2kg 정도 빠져요. 말 그대로 녹초가 되죠.”
임: “감독님 작업 특성상 평소에 안 쓰는 근육을 많이 활용해요.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짐을 빨리 싸야 하는데, 팔다리가 말을 안 들어요. 아직 20대인데, 벌써 몸 곳곳에 담이 들고 있어요(웃음).”
◇애매모호한 춤 회사
팀명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애매모호한 춤 회사’. 이름처럼 이들 작업은 언제나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테크노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다가(‘기가 막힌 흥’), 태평소 소리에 맞춰 치맛자락을 나부끼기도 하고(‘피버’), 바흐의 클래식과 다프트 펑크의 전자 음악을 한 무대에서 엮어내기도 한다(‘바디 콘서트’).
이 독특한 안무를 구상하는 건 김보람 예술 감독이다. 김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 엄정화, 이정현 등 유명 가수의 백업 댄서를 했다. 그러다 서울예대 무용과에서 평생 은사인 김기인(1953~2010) 교수를 만난다. 한국 현대 무용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김기인무용연구소에서 ‘스스로 춤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춤을 익혔고, 이후에도 안성수 무용가 등과 함께 활동하며 발레, 한국 무용, 스트리트 댄스 등을 두루 배웠다. 장인주 무용 평론가는 “김보람 감독은 방송에서 대중 친화적 춤을 체득했고, 이후 현대 무용의 대가들을 만나며 자신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완성했다. 앰비규어스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잡은 것도 김 감독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라고 했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스타일이 인상적입니다.
김: “그런 춤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제가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막춤도, 무용도 잘 모르니 ‘뭣도 아닌’ 독특한 동작이 나오는 거죠. 이날치와 함께한 춤도 한국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절대 못 했을 거예요. 전통 민요에 맞춰 로킹(locking·스트리트 댄스의 일종) 스텝을 밟은 거니까(웃음).”
–앰비규어스의 안무는 어떻게 만듭니까.
김: “먼저 소리가 들리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걸 어떻게 몸으로 표현할지 고민해요.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예측 불가능성’이죠. ‘1’ 다음에 ‘2’가 나오기보다, ‘니은’이 나오는 게 더 즐겁잖아요.”
김 감독이 안무 노트를 보여줬다. 음악을 분석하며 선을 수십, 수백 개 그린다고 했다. 음이 꺾이는 부분, 이어지는 부분이 모두 각자의 선이 된다. 박자는 수십 숫자로 쪼개진다. 이렇게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김보람만의 ‘음악 지도’가 완성된다. 이 노트를 바탕으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연구를 거듭해 레퍼토리 하나를 만든다고 했다.
–겉보기엔 즉흥으로 추는 춤 같은데, 사실은 철저히 계산된 동작이었네요.
임: “감독님은 집요할 정도로 계산된 대로 표현하라고 강조해요. 특히 ‘관중이 환호하거나 웃는다고 절대 오버하지 말라’고 다잡으시죠.”
김: “관객들이 환호한다고 우리가 더 익살스럽게 움직이면, 그때부터는 저희가 공들여 준비한 작품은 의미를 잃고 그저 ‘웃기는 작품’이 돼버리잖아요. 저희는 작품을 날것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해석은 오롯이 관객한테 맡기고 싶어요. 그들이 웃든, 울든 그것은 그들 영역이니까.”
◇우리가 선글라스 끼는 이유?
–그래서 공연 때마다 선글라스를 끼나요?
김: “저희는 눈이나 표정이 아닌 몸으로 언어를 표현하는 무용수들이에요. 선글라스를 쓰면 관객이 무용수의 몸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넘게 쓰다 보니 이제는 선글라스가 저희의 ‘시그니처’(상징물)가 됐고요.”
–시인들은 저마다 시상(詩想)을 끄집어내는 생각 창고가 있다고들 하죠. 안무가 김보람을 움직이는 영감은 뭡니까.
김: “제겐 별다른 영감이 필요하지 않아요.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게 제 일이니, 제가 듣는 음악이 곧 작품의 원류가 되죠. 그래서 팝, 국악, 힙합,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작은 동작들은 단원들과 연습하다 나올 때도 있고, 머릿속 상상을 통해 그려내기도 해요.”
–앰비규어스만이 가진 색깔은 뭘까요.
이: “앰비규어스에 들어오기 전에는, 동작에 익숙해지려고 춤을 췄어요. 지금은 정반대예요. 익숙해지지 않을 동작을 만들려고 춤을 춰요. 감독님도 예측 불가능하고,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원하고요.”
최: (끼어들며) “날계란! 날계란 같은 춤이 우리만의 색깔이죠.”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목표가 있다면.
김: “사실 한국에서 아직 무용은 직업이라 보기 어려워요. 춤만으로는 돈을 못 벌거든요. 무용수 대부분은 춤을 춰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춤을 가르쳐서 돈을 벌죠. 저는 춤이 직업이 되길 희망해요. 적어도 우리 회사 단원들은 춤을 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지금의 목표예요. 그러려면 티켓 가격을 지금보다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작업해야겠지만(웃음).”
인터뷰를 마치며 진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라는 이름엔 심오한 뜻이 들어 있나요?” 답이 역시 ‘앰비규어스’다웠다. “별 뜻 없어요. 장경민 무용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리 무용단 이름이나 지어보자!’ 하고 영어 사전을 폈어요. 그때 ‘앰비규어스(Ambiguous)’란 단어가 확 눈에 띄었죠. 애매모호한! 멋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