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서 운동하자니 춥고,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은 가기 어려운데 여긴 언제든 갈 수 있잖아요. 장비도 필요 없고, 문만 열면 나타나는 나만의 운동장이죠. 저 같은 사람이 꽤 되더라고요.”
IT 업체 ‘티몬’ 이수현(44) 실장은 요즘 매일 밤 9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우선 예열 차원에서 자신이 사는 아파트 17층부터 꼭대기 층인 29층까지 걷기. 다 올라가면 가져간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다. 이제 진짜 운동 시작. 1층부터 29층까지 걸어 오른다. 한 번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분. 내려올 땐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렇게 다섯 번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걷기 파트너는 넷플릭스. “스마트폰으로 한 시간짜리 넷플릭스 ‘미드’를 보면서 걸으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라요.” 혹시 계단에서 만나는 이웃이 놀랄까 봐 스마트폰 조명을 켜둔다.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라는 트로트 가사에 익숙하신가? 요즘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을 외치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 시대, 계단이 틈새 운동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가동하는 전천후 헬스장이다.
서울 사직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39)씨는 코로나 2차 대유행 기간이던 지난해 8월 말 다니던 피트니스 센터가 문 닫으면서 계단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지난해 초부터 주민에게 계단 운동을 독려할 때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신세계가 열렸다. 기구 하나 없이 두 발로만 하는 아날로그 운동인데, 기록은 최첨단 방식으로 집계된다.
강북삼성병원에서 개발한 ‘오르GO나누GO’라는 계단 운동 전용 앱을 깔아 아파트 인증을 한 다음, 운동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출입문 옆에 설치된 NFC용 QR 코드에 스마트폰을 대면 몇 계단을 걸었는지 자동으로 나온다. 앱에 가입한 아파트 이웃 주민 기록도 실시간 집계된다. 김씨는 “그게 뭐라고 일종의 경쟁 심리가 생겨서 더 열심히 계단 운동을 하게 되더라. 이웃 아주머니가 ‘넘사벽’ 1등이라 1등은 포기했다”며 웃었다. 김씨가 생각하는 계단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공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운동할 수 있는 것도 좋다고 했다. ‘계단왕’이라는 앱도 유명하다. 오른 계단 수, 소모 칼로리를 자동으로 계산해 준다.
계단 운동 전용 공간을 둔 아파트도 화제다. 경기도 오산 서동탄역 더샵 파크시티엔 ‘헬시스퀘어’라는 이름의 계단 운동 전용 시설이 있다. 세 면이 개방형으로 된 높이 17층 건물이다. 5· 10·15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운동하다가 힘들면 타고 내려올 수 있게 만들어놨다. 경남 김해시에선 계단 걷기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건강 아파트’를 지정했다.
운동 효과는 있을까. 정형외과·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서동원 바른세상병원장은 “계단 오르기는 허벅지 앞 대퇴사두근과 종아리의 비복근·가자미근, 엉덩이 근육 강화에 좋은 운동”이라며 “특히 허리 아픈 사람은 요추 신전근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내려올 때는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탈 것. “발목과 무릎에 체중이 실리면서 연골판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통증을 느낄 땐 운동을 멈춰야 한다. “계단 올라갈 때 무릎 앞 뚜껑 뼈(슬개골·대퇴사두근이 붙는 뼈)에 압력이 가해져 뚜껑 뼈 관절염이 생길 수 있다. 처음엔 무릎 앞쪽이 시큰거리지만 서서히 전체 관절염으로 퍼질 수 있으니 무리해선 안 된다”고 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 발목을 잡고 무릎을 뒤로 쭉 당겨주는 ‘대퇴사두근 스트레칭’, 두 손바닥을 벽에 대고 발을 쭉 뺀 다음 무릎을 살짝 굽히는 ‘비복근 스트레칭’을 하면 좋다.
노년층은 혼자 계단 운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갑자기 계단을 오르다가 심장에 부담이 가 쓰러질 수 있다. 주변에 등산객이 있는 산과 달리 계단엔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수 있다. 계단실 환기도 중요하다. 서 원장은 “창이 있는 계단은 괜찮지만, 창이 없어 환기가 안 되고 먼지가 많은 비상계단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