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공무원들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겠다는 파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의 기절할 뻔했다. 우리 쪽 원전을 없애겠다는 정부가 북한에는 왜 국민 세금을 들여 원전을 지어준다는 것일까. 위험 시설인 원전을 만듦으로써 북한을 망하게 하려고? 하지만 우리나라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고, 또 북한에 대한 현 정권의 애틋한 마음을 고려하면 원전으로 북한을 위협할 목적은 아닌 듯하다. 혹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고 우리가 그 전기를 사서 쓰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원전에선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으니, 정작 위협받는 곳은 오히려 우리나라가 아닌가?
나처럼 생각하는 분이 많아서인지, 이 기사를 읽고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안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북한을 주적으로 생각하느냐는 유승민 후보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지 않은가. 대북 관련 의혹은 철저히 규명하는 게 국민들 정신 건강에 좋다는 점에서, 보도 초기 정부가 어떤 해명을 하는지가 중요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해명은 매우 신속했고, 의혹의 핵심을 관통함으로써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줬다.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아이디어 차원이었다
우리나라 대표 방송사인 KBS에 따르면, 이 문건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 자료일 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란다. 안도감이 들었다. 정부가 잠깐이라도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한다면, 그건 괴뢰정권으로 봐야지 제대로 된 정부 취급을 해선 안 되니 말이다. 그런데 왜 공무원이 실행도 안 될 아이디어를 냈던 것일까? 여기에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현 정권 들어 공무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건 다들 알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에 관심이 많았던 정부가 공무원 증원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 덕분인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일은 한정돼 있는데 사람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노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따금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여는 것은 권장할 일일지언정 뭐라고 할 사안은 아니다. 산업부의 전신이 아이디어자원부라는 설도 있던데, 이게 정말이라면 아이디어 대회는 전통을 살리는 좋은 일이기도 하다. 혹자는 원전 아이디어가 왜 1차와 2차 남북정상회담 중간에 나왔느냐고 따져 묻던데, 식목일에 나무 심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처럼, 남북 간 협력에 관한 아이디어가 그 시기에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둘째, 이전 정권 때도 있던 일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해당 자료가 박근혜 정부 때부터 검토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안보관 하나만큼은 투철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검토된 바 있다면,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물론 산업부는 이 파일의 작성일이 2018년 5월이라며 윤 의원 주장을 반박했지만, 산업부 공무원의 컴퓨터에 대해 여당 국회의원만큼 잘 아는 이가 또 누가 있겠는가? 한 친여 인사에 따르면 이는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던 일이란다. 실제로 2010년 천영우 외교부 차관의 ‘북 원전 추진 검토’ 발언이 여러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물론 그는 ‘통일 이후’와 ‘비핵화 전제’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 지역에 원전을 짓는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런 걸 알면서도 문 정권만 공격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라 할 수밖에.
셋째, 신내림 때 한 행위로 처벌해선 안된다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 문제없는 문건이라면 파일을 삭제한 이유는 무엇이냐?’ 산업부 서기관이 휴일에 나와 파일을 삭제한 건 맞는다. 하지만 그 공무원은 검찰 조사에서 파일 삭제가 ‘신내림을 받아서 한 일’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신내림은 무당이 되기 직전 필수적으로 거치는 체험을 뜻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들이 제법 있다. 산업부 공무원이라고 신내림을 받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신내림 때 한 행동을 빌미로 단죄하는 것은 매우 좀스럽다. 참고로 삭제된 파일의 이름이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을 가진 ‘포흐요이스’(pohjois)인 것을 보면, 해당 서기관에게 찾아온 신은 핀란드 출신인 듯하다.
넷째, 이건 다 소설이란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한다는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4월 27일, 도보다리에서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났을 때 문 대통령의 입 모양을 근거로 일부 언론이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입 모양으로 보아 저건 ‘발전소’다.”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은 이를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소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가상의 이야기. 예컨대 구름을 타고 다니며 여의봉을 일으키는 손오공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이는 없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도 ‘소설 쓰시네’라는 추 전 장관의 한마디로 해명된 바 있듯이, 여권 실세가 이를 소설이라 하면, 믿는 것이 국민 된 도리다. 게다가 입 모양으로 판단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문 대통령이 발정 난 소를 뜻하는 ‘발정소’라고 했는지, 아니면 비밀번호로 널리 쓰이는 ‘팔천오’라고 했는지 입 모양으로 구분이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북한 원전 해프닝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결정적 근거를 댄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 사건을 빌미로 현 정권이 ‘이적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자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정부는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다.” 원래 법적 대응은 자신 있을 때 하는 것. 정경심 교수 건, 윤석열 총장 건 등등 재판만 하면 정권 측이 지기만 하는 와중에 김종인 위원장 발언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니 이 정도면 확신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쯤 해서 북한 원전 해프닝을 덮자.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을 쟁점화하는 것이야말로 이적 행위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