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주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과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개막한 ‘ㄱ의 순간’전은, 한글을 현대 미술과 고대 유물의 대화로 풀어낸 역대 최대 규모 전시다. 한글을 소재로 삼았으되,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까지 풍요롭게 하는 다채로운 실험들이 평단과 관객들에게서 “2020년 최고의 전시” “한글의 철학과 예술성을 현대 미술로 간파한 경이로운 전시”라는 극찬을 받았다. 김환기·백남준·김창열·이우환 등 거장부터 서도호·강이연·전광영·최정화 등 현대 미술 최전선에 있는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더욱 뜻깊은 이 전시가 이달 28일 폐막한다. 놓치면 아쉬울 작품이 많다. 지난 두 달간의 관객 반응을 토대로 ‘베스트 11’을 꼽아봤다.


1.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서울’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서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다. 전시장 바닥에 청록의 향가루를 열흘 밤낮으로 쌓아올려 만든 글자들은 연기와 함께 타오르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서울의 게이바 이름들. 우리 사회에서 금지되고 억압된 개인들과 그들의 언어를 예술로 승화했다. 전시가 끝나는 이달 말이면 모든 글자들이 또렷이 드러나는 동시에 불에 탄 글자는 재가 되어 쓸려나갈 것이다. 놓치면 더욱 후회할 명작이다.


2. 백남준 ‘W-3’

백남준 'W-3'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주역(周易)의 64괘를 의미하는 모니터 64대와 소리의 형태를 본딴 X, W 모양의 배치 등 W-3엔 한글 창제의 원리와 이치가 숨어 있다. 마주 보는 거대한 벽면엔 울산 천전리 암각화가 걸려 있다.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일정한 패턴의 기하 추상 문양이 하늘의 소리를 표현한 언어라면 백남준의 W3과 만년의 대화를 나누는 격이다. 그 사이에 놓인 가야 토기의 문양에는 ‘비밀'이 담겨 있으니 유심히 살펴볼 것.


3. 강이연 ‘문’

강이연 '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점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이 된다.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면서 퍼져나간 빛은 파장이 되어 물결치고 춤춘다. 5분 6초 길이의 이 미디어아트는 방탄소년단과 아미, 한글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이다. 영상이 맺히는 스크린은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상징하는 로고. 영상 후반부에 들려오는 해외 아미들의 한국어 떼창 소리는 바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4. 태싯그룹 ‘Morse ㅋung ㅋung’

태싯그룹 'Morse ㅋung ㅋung'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쿵쿵거리는 전자음과 함께 대형 화면 3개에 붉은 글자가 나타난다. 모스부호 같은 점이 선으로, 선은 다시 자음과 모음으로 확장하며 춤을 추다 이내 ‘쿵'이 된다. 쿵은 다시 킹, 콩, 빵으로! 한글의 조형성과 추상성을 표현했다. 어린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5. 김효진 ‘여민락-2020′

김효진 '여민락-2020'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화면 16개를 가득 채운 건 무용가 김효진의 맨발이다. 춤출 때 가장 고생하는 것이 온몸의 무게를 견디는 발이라는 점에서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사상을 떠올렸다. 세종이 작곡한 ‘여민락(與民樂)’에 맞춰 춤추는 발 영상 앞에서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 등 여러 관객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춤을 췄다.


6. 고산금 ‘조선일보 1950년 6월 25일’

고산금 '조선일보 1950년 6월 25일'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신문을 채운 활자가 사라지고 진주 구슬이 그 자리를 채웠다. 활자를 대신해 붙인 지름 4㎜ 진주 구슬은 점자(點字) 같아 보이지만 무의미하다. 사라진 활자의 의미를 확인하려면 바로 옆에 걸린 조선일보 1950년 6월 25일 자 신문을 보자. 6·25 전쟁 당일 발행된 신문인데 너무도 평화롭다. 전날 제작된 기사이기 때문이다. 활자가 사라진 신문을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7. 전광영 ‘집합 20-MA015(100년의 증언)’

전광영 '집합20-MA015(100년의 증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한지에 인쇄된 1920년 조선일보 창간호와 2020년 조선일보 100주년 기념호로 만든 삼각꼴 1000개가 캔버스에 빼곡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사건과 시간이 교차하며 100년의 시간을 증언한다. 염상섭, 이광수, 채만식 등 한국 대표 문인들과 축구 선수 손흥민의 얼굴도 보인다.


8. 노주환 ‘생각을 담다’

노주환 '생각을 담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에 버려진 납활자로 만든 단어들이 작은 나무 상자들을 채웠다. 상자마다 배열된 단어들을 읽고 조합하다 보면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버려진 납활자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 가족이 함께 단어를 찾고 조합하는 시간을 만끽하시길!


9. 김창열 ‘세종대왕 고'

김창열 '세종대왕 고' /조선DB

지난달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희귀작이다. 주로 천자문을 소재 삼은 김 화백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채운 바탕에 영롱한 물방울을 올렸다. 엉뚱하게도, 이 작품을 옷감에 프린트해 목에 두르고 다니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10. 김막동·김점순·박점례·안기임·양양금·윤금순·최영자 ‘곡성할머니 시화’

김막동·김점순·박점례·안기임·양양금·윤금순·최영자 '곡성할머니 시화'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남 곡성 서봉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팔십 넘어 깨친 한글로 쓴 시와 그림이다. 여인들의 아득한 세월과 인생의 고락이 담겨 있어 가슴이 아프다가도 금세 웃음이 난다. 방탄소년단 RM이 이번 전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11. 최정화 ‘ㄱ의 순간’

최정화 'ㄱ의 순간'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석기시대 쟁기와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서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깜빡인다. ‘ㄱㄴㅁㅅㅇ’ ‘엄마’ ‘쌀’ 같은 글자와 추상 문양들이 빛난다. 최정화의 유쾌한 상상력을 타고 자기만의 ‘ㄱ의 순간’으로 여행해보시길!


한글 특별展 ‘ㄱ의 순간’

▲기간: 2021년 2월 28일까지

▲장소: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관,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초·중·고교생 8000원, 유치원생 5000원

▲문의: (02)580-1300, (02)724-6322


봉산 만둣국·뚝배기 순두부… 예술의전당 대표 맛집

‘ㄱ의 순간’전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주변엔 맛집들이 많다. 예술의전당 ‘토박이’ 직원들이 추천한 식당을 소개한다. 미식으로 전시의 여운을 달랠 수 있다.

서울 서초동 '봉산옥'의 '봉산 만둣국'과 '녹두전'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봉산옥(02-525-2282)은 서초동에서 황해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황해도식 봉산 만둣국(1만원)이 대표 메뉴. 양지와 차돌로 끓여낸 국물에 반달 모양의 만두, 빨갛게 양념한 꾸미를 올리는 게 특징이다. 매일 손으로 빚는 만두는 쫄깃쫄깃하고 절인 배추와 숙주, 두부가 들어가 담백하다. 만두전골(3만5000원·4만5000원)로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황해도식 녹두전(2만원)과 소고기전(1만5000원), 김치말이국수(9000원)도 별미다.


서울 서초동 '앵콜칼국수'의 '팥칼국수'와 '옛날손칼국수'.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백년옥(02-523-2860)은 국내산 콩으로 조미료 없이 직접 만든 두부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 건강하고 든든한 한 끼가 생각날 때 좋다. 몽글몽글한 하얀 자연식 순두부(1만원)와 얼큰한 뚝배기 순두부(1만원), 콩비지찌개(1만원) 등이 인기다. 백년옥과 형제 격인 앵콜칼국수(02-525-8418)는 푸짐한 칼국수로 이름났다. 멸치육수에 바지락을 가득 넣어 끓인 옛날손칼국수(8000원)와 진한 팥칼국수(1만원), 매생이칼국수(9000원) 등이 대표적이다. 두툼한 매생이전도 인기다. 가성비 좋은 ‘미쉐린 빕 구르망’에 오른 식당이다.

찌개백반과 제철 생선 요리 전문 복있는집(02-581-2261)은 골목 안에 숨은 내공 있는 맛집. 중식 코스 요리가 돋보이는 선궁(02-597-1397)과 일본식 돈가스가 유명한 허수아비돈까스(02-582-1187)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서울 서초동 '립프린츠'의 '문어라구 리가토니'와 '오이스터 플레이트' /립프린츠

분위기 내고 싶을 땐 내추럴와인바(bar) 립프린츠(010-8072-6682)를 찾으면 된다. 생면 라자냐(3만5000원)와 문어라구 리가토니(2만4000원), 오이스터 플레이트(2만7000원) 등의 요리와 사퀴테리, 치즈 등과 내추럴와인을 즐길 수 있다. 170종에 달하는 내추럴와인은 취향 따라 고를 수 있다. 예약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