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혜화동에 있는 ‘샘터사’ 사무실에 들렀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네 사람이 자리를 같이했다. 사담이 교환되다가 김 의장이 “가족 자랑을 하면 점잖지 못하다는 것은 아는데 김 교수가 동석했으니까 괜찮겠지, 내 손주가 미국에 사는데, 이번에 MIT 대학의 교수가 되었어.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그런 학문적 성장은 못 했을 것 같아”라고 해 축하해 주었다. 내가 “그런 자랑은 많이 해도 괜찮아. 누가 봐도 그 교수가 아버지 닮았다고 하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안 할 테니까”라고 해 함께 웃었다. 나와는 먼 인척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미국에 사는 막내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W가 전공의 문제로 고민한다더니 어떻게 되었지?”라고 물었다. “W가 외할아버지를 닮아야 하는데 아버지를 닮아 말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심장내과보다는 말을 적게 해도 되는 심장외과를 택했어”라는 대답이었다. 외손녀는 명문 사립인 MIT를 다녔는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아들인 W는 할 수 없이 주립대학을 택했었다. 대학 상급반이 되면서 대학원까지 장학금을 보장해 주는 의과대학을 택했다.
“둘 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학창 생활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원하는 전문직을 갖기도 힘들었을 것 같아” “한국에서 서울대학에 갈 정도의 재능과 여건이 된다면, 미국에서는 어떤 일류 대학에라도 입학할 수 있고, 학부에서 1년 반 정도는 폭넓은 인문학 영역의 공부와 독서를 하니까, 스스로가 평생에 걸친 전문 분야를 선택할 수 있어. 개방된 대학 간의 교류와 국제적 진출까지도 가능해지는 것 같아.” 딸의 얘기다. 자기가 연세대를 중퇴하고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하는 얘기 같았다.
큰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릴 깊은 땅이 필요하고, 곡식도 수확을 높이기 위해서는 옥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지향하는 교육 정책을 그대로 추진한다면, 교육 전문가는 국가 정책의 심부름을 하고, 정부가 국민 교육 전체의 책임자가 될 것이다. 대학 교육까지도 정부가 주관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다. 중국과 북한의 교육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자유민주국가인 미국이 세계적 영도력을 갖추게 된 것은 교육의 자율성 혜택이었다. 서구 사회는 물론 일본과 자유국가들이 대학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내 후배 교수들의 공통된 평가가 있다. 150년 전에는 미국이 독일이나 프랑스를 따라올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년을 노력해도 미국을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본다. 대학 교육의 후진성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에 공산국가에서는 인문학의 명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학 평준화까지 주장한 정책 수립자가 있을 정도였다.
국가의 장래와 민족 문화의 세계 참여를 위해 이념 교육을 포기하고 인간 교육의 옥토를 준비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