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선생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전문가입니다. 조선일보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한글특별전 ‘ㄱ의 순간’ 총괄 자문이기도 한 그가, 2006년 1월 뉴욕에서 거행된 백남준 장례식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슬프고 엄숙한 일반 장례식과 달리 백남준 장례식은 위트와 농담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세계적인 무용가 머스 커닝햄과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참석했는데요.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추모사를 하는데 “남준, 나한테 빌려간 200달러 기억하지? 그냥 잊어버리게” 같은 농담들을 해서 웃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존 레넌의 아내이자 전위예술그룹 플럭서스의 멤버답게 오노 요코는 기발한 제안을 합니다. 1960년 백남준이 정신적 스승인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파격의 퍼포먼스를 재현해보자는 것이었죠. 하객들에게 가위를 나눠주고 자신의 가장 귀한 부분을 잘라 떠나는 백남준에게 선물하자는 겁니다. 남성들은 넥타이를 잘라서 관을 향해 던졌고, 여성들은 스카프 혹은 치맛단을 자르는 등 ‘즐거운’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장례식 후 뉴욕 메디슨가가 넥타이가 반쯤 잘린 신사들로 가득 메워졌다니 상상만 해도 유쾌하지요?
그 얘기를 들은 뒤로 어렵기만 했던 백남준의 작품이 한결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에서 전시 중인 백남준의 ‘W3’도 그렇습니다. 1960년대에 ‘WWW’의 세계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 이 천재 작가가 64대 모니터로 주역의 64괘를 표현한 이 거대 작품을 바라볼 때마다 찬란한 우주의 세계로 빨려드는 착각이 듭니다. 국내 들어와 있는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라 ‘ㄱ의 순간’전 개막일부터 미술계 인사들이 앞다퉈 찾아왔습니다. 2월 28일 폐막하니 놓치지 마세요.
며칠 전 ‘아무튼, 주말’의 열독자로부터 반가운 문자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공연계에 종사하는 분인데요. 문자 한 줄 한 줄에서 그의 들뜬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오늘부터 극장이 문을 엽니다. 두 달 만에. 부산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렙니다.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새해엔 이런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