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클럽하우스에 가입한 박혜정(27)씨는 “벌써 질렸다”고 했다. 설 연휴까지만 해도 밤을 새울 정도로 클럽하우스에 빠졌지만, 지금은 잠들기 전 잠깐 접속해 친구들과 대화하고 꺼버린다. 박씨는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가수나 작가와 말을 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며칠 이용해보니 클럽하우스도 현실과 다름없는 ‘계급 사회’였다”고 했다.

클럽하우스는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음성 채팅 애플리케이션. 지난해 12월만 해도 이용자 수가 60만 명 선이었지만, 일론 머스크·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가 활동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최근 이용자 수가 폭등했다. 클럽하우스 가입자 수는 지난 1월 20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최근 6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클럽하우스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누구나 평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이용해보니 소수 ‘인싸(인사이더)’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내외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클럽하우스, /AP·연합뉴스


◇사회자가 권한 독점하는 계급사회

클럽하우스는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폐쇄적 소셜미디어다. 이용자 한 명당 두 장씩 발급되는 초대장은 현재 중고나라 등에서 1~2만원에 팔린다. 클럽하우스 초대권 한 장을 1만5000원에 팔았다는 윤모(27)씨는 “인스타그램에 클럽하우스에 가입했다는 글을 올리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세 명이나 ‘초대장을 사고 싶다’며 연락이 오더라”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클럽하우스에 들어오고 싶어하는지 느꼈다”고 했다.

초대권을 구해 가입해도 유명인과 직접 대화하기는 어렵다. 클럽하우스 대화방의 구조가 수직적인 탓이다. 먼저 방을 개설한 사람과 소수 운영진이 사회자(Moderator)를 맡는다. 사회자는 누구에게 말할 권한을 줄지 결정한다. 다음으로는 말할 권한을 가지는 연사(Speaker)다. 마지막으로 발언 권한이 없고 듣기만 가능한 청중(Audience)이 있다. 청중은 사회자에게 발언권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의사를 표시할 수단이 없다.

청중의 관계도 평등하지 않다. 연사가 팔로하는 청중(Followed by the speakers)은 다른 청중보다 더 위에 표시된다. 연사가 팔로하지 않는 나머지 이용자(Others)는 방의 가장 밑에 있다. ‘기타’ 이용자들 역시 사회자에게 발언 권한을 요청할 수 있지만, 대개 연사가 팔로하는 청중 위주로 발언 권한을 얻는다. 클럽하우스 이용자 김현지(28)씨는 “소수의 사회자가 맘대로 방을 움직이고, 청중은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클럽하우스는 이용자들의 계층을 나누고, 위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본능을 철저히 이용하는 소셜미디어”라면서 “입장부터 발언 권한을 얻기까지 누군가의 허락을 계속 갈구해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래퍼 딘딘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클럽하우스) 초대장을 판매하는 건 마치 옛날 중세 시대 귀족들의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같다”고 비판했다.

일부 사회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발언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사회자가 일부 연사의 발언 권한을 빼앗고 대화를 일방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에는 페미니즘을 논하는 방에서 일부 이용자가 여성 혐오성 발언을 하다 강등되자, 이들이 별도의 방을 만들어 다른 방을 ‘저격’하는 일도 발생했다. 블룸버그도 수백 명이 참여한 한 영어 대화방에서 유대인 혐오 발언이 지속해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현국


◇“스펙 자랑에 소외돼”

클럽하우스는 팔로어 기반의 소셜미디어다. 내 팔로어가 어느 대화방에 참여하는지 볼 수 있고, 다른 사용자의 프로필을 눌러 누가 그를 팔로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팔로어 수는 사회자가 발언 권한을 부여하는 중요 기준이 된다. 팔로어가 수천 명인 ‘스타’들은 어디서든 쉽게 발언권을 얻는다. 이용자 허모(25)씨는 “클럽하우스에서 팔로어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스펙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인싸 중심’ 구조가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허씨는 “‘잘난 사람'이 발언권을 독차지하다 보니 평범한 이용자들은 평생 청중으로 남는다”고 했다. 지난 13일에는 고스펙자들에게 반감을 보인 일부 이용자가 ‘무스펙자 방’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방에서 한 이용자는 “석박사, 스타트업 대표 등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소수의 스피커만 발언 권한을 받는 게 꼴불견”이라면서 “이력 없는 사람들은 ‘잘난 분들’의 말을 조용히 듣거나, 성대모사 방처럼 영양가 없는 방으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사기·가짜 뉴스 온상 된다”

복합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컬쳐랩’의 이부형 대표는 최근 클럽하우스에서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이용자를 만났다. 자신을 해외 유명 은행 VIP 고객이라 소개한 사람이 스타트업 관계자와 VC(벤처캐피털)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영어를 섞어가며 “내게 돈을 보내면 미국에서 큰 세제 혜택을 받게 해주겠다”고 한 것. 그는 이미 1100명 정도의 팔로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엔 유명 투자 업계 관계자도 있었다. 이 대표는 “다른 방에서 활동하며 유명인들의 팔로를 받아낸 다음, 이를 바탕으로 돈을 받아내는 사기 수법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신을 금융 전문가라 소개하는 이들이 ‘코인 투자방’ ‘주식 추천방’ 등을 개설해 청중 수백 명을 상대로 특정 주식을 홍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코인 토론방에 들어갔다는 직장인 김모(27)씨는 “일론 머스크가 클럽하우스에서 비트코인을 언급하자마자 가격이 폭등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보에서 소외될까 투자방을 찾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투기를 조장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설사 클럽하우스에서 사기를 당해도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클럽하우스의 모든 대화는 녹음하거나 외부로 전송할 수 없다. 방이 닫히면 대화 기록을 복구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클럽하우스가 사기와 가짜 뉴스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IT매체 바이스는 코로나 백신에 낙태아 세포가 들어있다는 등의 가짜 뉴스가 클럽하우스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고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청각 기반 미디어는 마치 내가 상대방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지만, 실제로는 발언 권한을 가진 소수가 다수 청중을 상대하는 구조”라면서 “발화자가 대화 방향을 맘대로 제어할 수 있는 만큼, 가짜 뉴스나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