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트레이닝 열풍에 맞춰 방 안처럼 스튜디오를 꾸며놓고 운동 영상을 찍는 '올블랑tv' 멤버들과 여주엽(맨 오른쪽) 대표. 여 대표는 "코로나 유행 전에는 해외 촬영도 했는데, 갈 때마다 우리를 알아보고 말 거는 구독자가 있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한강·한옥마을·롯데월드·찜질방…. 코로나로 여행하기 어려운 시기, 한국의 관광 명소에서 운동하는 영상에 외국인들이 열광했다. 영하 15도 꽁꽁 언 한강에서 상의를 벗고 운동하는 영상은 조회 수 200만을 기록했다. 이들의 영상에는 “코로나가 끝나면 한국에 가고 싶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다” 등의 영어 댓글이 가득하다.

‘올블랑TV’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운동 유튜브 채널이다. 2019년 1월에 유튜브 채널을 연 뒤로 2년여 만에 구독자 수 150만을 돌파했고 이 중 80%가 해외 구독자다. 댓글에서 한국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국가별로는 미국·영국·인도 순으로 구독자가 많다. 최근엔 코로나로 인해 ‘홈트(홈+트레이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한체육회와 협업해 국가대표 선수들과 ‘2분 국민 타바타’ 영상도 만들었다.

멤버 여럿이 나와 군무처럼 고강도 운동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 사무실도 활력이 넘치는 헬스장 같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였다. 지난 1일 만난 여주엽(36) 올블랑TV 대표는 “갑자기 이슈가 돼서 가파르게 성장하는 채널이 있지만 저희는 ‘쟤네가 누구길래 150만 채널이지?’ 의아해할 정도로 꾸준히 성장해왔다”면서 “그만큼 소리 소문 없이 성장해와서 별로 들뜬 분위기가 없다”고 했다.

영하 15도 한강에서 찍은 운동 영상은 2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Allblanc TV'

◇”BTS처럼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지자!”

– 해외 구독자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요?

“처음부터 미국 영상을 많이 참고했어요. 미국에서 조회 수가 많이 나온 운동 영상들을 분석했고요. 그들에게 익숙한 포맷으로 만들다 보니 해외 구독자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 특별히 해외를 겨냥한 까닭이 있나요.

“우리나라 인구가 적다 보니 채널 성장 속도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처음부터 영상도 영어로 제작하고, 한국어 영상이라도 자막을 영어로 달았죠. BTS가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에서 더 인정받았듯이 저희도 해외에서 유명해지면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지 않을까 했어요.”

– 맨 처음 반응이 온 게 언제였나요.

“처음부터 페이스북에 영상을 하나 올렸는데 하루 만에 조회 수 300만이 나왔어요. 초심자의 행운이 컸겠지만, 그전부터 철저히 기획한 덕도 있었어요. 영상에 몇 명이 나와야 조회 수가 제일 높은지부터 영상 속 타이머 크기와 조회 수의 관계,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기존 영상들의 이미지를 분석했어요. 분석한 요소들에 하나씩 우리만의 특색을 더해서 ‘우리보다 잘 만든 영상은 없겠다’ 할 정도로 준비했죠.”

– 몇 명이 함께 하는 게 조회수가 제일 높던가요.

“일단은 다섯 명 정도까지는 비례해서 늘어나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같이 운동할 때 나오는 에너지 때문인지, 보면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힘을 받는 것 같아요.”

– 기획한 영상 중 가장 인기 있던 영상은 뭐였나요?

“저희 구독자 중에 많은 비율을 차지한 인도를 겨냥해 만든 영상이었는데요. 발리우드 포스터를 분석해봤더니 대부분 카레색에 영웅 캐릭터가 부각됐더라고요. 그래서 색감도 살짝 노랗게 만들고,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운동 영상을 찍어봤는데 2000만 뷰가 나왔어요. 진짜 인도에서 대박이 난 거죠.”

유튜브 '올블랑tv' 멤버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연구원·디자이너 출신 운동 유튜버

여 대표는 데이터를 다루는 과학자로 일했던 경험이 “객관적 수치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6년 넘게 항공 우주 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다. 장시간 앉아있다 보니 허리가 아파서 시작한 운동으로 인생이 달라졌다.

– 어떻게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까지 하게 됐나요.

“그전까진 취미로만 운동하다가 목표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직장인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게 됐어요. 지원자 2600명 중에 저를 포함해 30명이 수상했는데 그중 세 명한테 우리처럼 시간 없는 직장인들을 위한 운동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죠.”

– 다른 분들도 다 같이 직장을 그만두신 건가요.

“경영학을 전공하고 LG상사에 다니던 친구도 있었고, 시각디자인과 나와서 서체 개발자로 일하던 친구도 있었어요. 둘 다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었죠. 베이징에서 호텔경영학과를 막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들어온 친구도 있었고요.”

–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유튜브 영상에 대한 확신은 없었죠. 저도 직장 그만두고 한동안 부모님한테 말씀 못 드리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야 말씀드렸어요. 그래도 다들 영상이 아니면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라도 뭐든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강했어요.”

북촌 한옥마을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 /유튜브 'Allblanc TV'

◇한류 팬들 위해 운동+문화 결합

처음부터 해외 구독자를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영어·스페인어 등 다국적 언어로 자막을 달고 있다. 각자 영어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한국 생활을 담은 브이로그도 찍는다.

– 국내와 해외 구독자의 차이점도 있나요.

“해외 구독자들은 아무래도 한류의 성격이 묻어난 영상을 좋아하세요. 머리 스타일이나 외모도 좀 예쁘게 나와야 하고, 아무래도 아이돌처럼 얇은 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외국에서도 덩치 큰 근육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한국인에게 바라는 건 약간 ‘패션 근육’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K팝과 운동의 교집합을 찾는 거죠.”

– 그래서인지 K팝 뮤직비디오 느낌이 나는 영상들도 있더라고요.

“실제로 리아킴 안무가의 ‘원밀리언스튜디오’ 채널 영상을 참조했어요. 한국 댄스 영상 중에선 해외 분들한테 가장 많이 알려진 유튜버니까요. 분석해보면 춤이 멋있게 보이도록 카메라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정해진 움직임들이 있더라고요. 운동하는 사람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운동 영상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 해외 구독자에 맞춰 제작한 또 다른 사례도 있을까요.

“한국적인 곳을 찾아가요. 찜질방을 배경으로 운동하고 나서 생소해하는 외국 분들을 위해 찜질방에 대한 브이로그나 다큐멘터리 콘텐츠도 같이 만들고요. 운동으로 한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문화와도 이어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홈트 노하우? “식단부터 바꾸지 마라.”

‘올블랑TV’가 올린 영상들은 크게 4분짜리 고강도 운동인 ‘타바타 운동법’과 20~30분짜리 ‘걷기 홈트’로 나뉜다. 타바타 운동은 국가대표 선수들도 체험해보고 헉헉댔을 정도라고. 그래서인지 영상에는 ‘누워서 눈으로 보고만 있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보고 잔다'는 댓글도 많이 달린다.

– 국가대표도 힘들어하는데 처음 운동하는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나요.

“느린 속도로 따라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천천히 4분을 채우면 되는데 1분 하고선 ‘역시 나는 안 돼’하면서 끄시잖아요. 그보다는 3분의 1 속도로 끝까지 따라 해보시고, 한 달 뒤엔 제 속도로 따라가겠다는 목표를 가지시면 됩니다.”

–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식단을 바꾸는 건 좋지 않아요. 하나하나씩 밟아 가야 하는데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고 하다 보니까 쉽게 포기하게 되죠. 운동에 취미가 없다면 취미부터 붙이고, 그다음에 근육을 늘리거나 유연성을 높이고, 그 이후에 식단을 조정해도 늦지 않아요. 처음부터 다 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 코로나 유행 이후에 채널 구독자가 더 늘었나요?

“미세 먼지 때문에 야외 활동이 줄면서 채널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엔 코로나 때문에 또 구독자가 늘었죠. 1월에는 하루에 5만 명씩 늘어나기도 했어요. 그때 구독자가 80만 명 정도였는데 2주 만에 순식간에 100만 명이 되더라고요.”

– 코로나 종식 이후에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육체적 건강을 키우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멘털 관리하는 콘텐츠도 만들어 보고 싶고요. 극한 상황에 도전하는 것도 좋아해서 겨울에 수영해서 한강을 건너거나, 사막을 건너는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