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의 카페 '아리주진'은 40년 넘게 농사짓던 땅 위에 지어져 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아리주진

카페 투어가 취미인 한상아(31)씨는 최근 시골 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카페 ‘아리주진’을 찾았다. 카페 소유의 논만 1000평 이상에 주변으로도 이웃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논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실내에선 통유리 너머로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야외에도 띄엄띄엄 나무 지붕과 의자를 놓아 논 한복판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한씨는 “부산 근처라 바다를 볼 수 있는 ‘오션뷰’ 카페는 많지만 ‘논밭뷰’는 처음이라 신선했다”면서 “시골에 홀로 뚝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라 도심 카페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고 했다.

‘바다뷰' ’숲뷰'에 이어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논밭뷰’ 카페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파가 적은 중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포스트 코로나’ 여행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졌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 300명이 뽑은 올해 가보고 싶은 국내 여행지 63곳 중 3분의 1이 강원도 고성, 전남 담양 등 군 단위 여행지였다.

/아리주진

‘아리주진’ 카페를 운영하는 임지윤(43)씨는 “시부모님이 연세가 높아지면서 40년 넘게 가족이 농사를 지어온 땅에 카페를 세우게 됐다”고 했다. 이웃 주민들도 “평생 농사만 지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카페도 할 수 있구나” ”우리 동네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며 개업을 반겼다. 직접 기계로 농사도 짓고 있어 모 심기부터 수확하는 모습까지 사계절 달라지는 논을 볼 수 있다. 임씨는 “쌀이 나무에서 나는 줄 알던 도시 아이들도 논 가까이서 벼를 만져보면서 ‘이게 쌀이 되는구나’ 신기해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경남 김해 ‘스트럭처커피’는 쌀농사를 짓던 땅에 카페를 세우고 텃밭을 만들었다. 500평 남짓한 땅에 계절별로 유채도 심고 메밀도 심는다. 사장인 김태완(32)씨는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꼬마 손님들이 와서 도마뱀, 달팽이들과 함께 뛰놀기도 한다”고 했다.

'논두렁 카페'가 콘셉트인 제천의 '파티올리'. /파티올리

제천에 있는 카페 겸 파티룸 ‘파티올리’는 콘셉트부터 ‘논두렁 카페’로 내세웠다. ‘파티올리’ 대표인 윤아란(37)씨는 “최근 유행하는 ‘불멍’(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처럼 ‘논멍’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소개하며 “음료도 오미자·오디·쑥을 이용해 건강 음료를 많이 판매한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영업을 중단했다가 앞으로는 사전 예약제로 소수 팀만 받을 계획이다.

경기도 양주의 ‘로슈아커피’도 ‘논멍’ 하기 좋은 카페로 입소문 났다. 2층 벽을 따라 낮은 의자를 ‘ㄷ’ 자로 두르고 논 풍경이 보이는 대형 창을 액자처럼 활용했다. 로슈아커피를 찾은 박민지(31)씨는 “매일 빌딩들만 보다가 눈이 확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대표인 황성환(41)씨는 “넓은 공간에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광야’를 모티브로 공간을 꾸몄다”면서 “자연이 주는 고요한 힘 때문인지 손님들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소곤소곤 얘기하더라”고 했다.

양주 '로슈아커피'. /박민지씨 인스타그램

20~30대가 주 고객층일 것 같지만 어린 아이부터 60대 이상까지 고객 연령대가 넓다. 지난해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카페 ‘구성커피로스터스’를 연 하상윤(43)씨는 “40~50대 주부 고객이 제일 많고 70대 이상의 어르신도 꽤 많다”면서 “주변이 전부 논이라 손님이 오면 모실 곳이 없었는데 카페가 생겨서 반갑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과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전남 나주 수목원 내 카페가 인기를 끌면서 주말마다 차량과 인파가 몰려들자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트랙터로 진입을 방해하는 등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제천 카페 ‘파티올리’의 윤아란씨는 “카페 주변의 자연을 만들어주시는 분들이 이웃 주민들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잘 지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밤에 다니기 위험한 도로였는데 카페가 들어오고 ‘동네가 환해졌다’는 말씀들을 해주실 때 뿌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