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 막내 정동원(14)이 마지막으로 도착하자, 임영웅(30)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동원아, 형님들 다 오셨는데 일찍 와야지. 차렷 경례!” ‘셋째 형’의 구령에 막내가 능숙하게 경례했다. “백골!” “제가 백골 부대 나왔거든요. 군대에 말뚝 박았어야 했는데. 하하!” 이내 둘은 구석에서 손뼉 놀이를 했다. “쎄쎄쎄. 푸른 하늘 은하수~”
맏형 장민호(44)가 음료를 주문했다. “난, 아바라(아이스 바닐라 라테의 준말).” “제 고향이 대구잖아요. 처음에 아바라라고 해서 ‘아(아이) 보라’는 줄 알았다니까요.” 이찬원(25)의 ‘아재 개그’에 일동 고개를 돌렸다. 막역한 사이에서만 나오는 반응이다. 단체 촬영에선 영탁이 지휘자였다. “자, 희며 들어(김희재에게 스며들듯 빠진다는 은어)!” 여섯이 칼 맞춤으로 김희재(26)처럼 브이(V)자로 턱을 괬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한 해 사이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삶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을까. 무명 가수, 평범한 대학생에서 오디션 한 번으로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됐다. 딱 1년 전인 지난해 3월 ‘미스터트롯’ 최종 경연에 오른 ‘톱 6’. 공교롭게도 코로나와 함께 왔다. 우울 바이러스가 세상을 삼켰을 때, 이들 노래를 상비약 삼았다는 팬들이 엄청나다.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 학당’으로 쉼 없이 달려온 지난 1년, 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달 초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스튜디오에서 톱 6를 만났다. 연예계에서 최고 바쁜 여섯 명이 가까스로 한자리에 모였다. 카메라 앞에선 거의 매일 보는 사이지만, 카메라 꺼지고 모두 둘러앉아 서로의 속 얘기 듣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선을 넘은 녀석들
“자, 집중!” 형들 말에 1초도 가만히 있질 못하던 정동원이 장민호 무릎 위에 착 앉았다. 순간, 무질서 속 질서가 생겼다.
-어느새 1년이 됐어요. 미스터트롯이 없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임영웅(이하 임): “오디션 프로그램엔 다 나갔을 거예요. 혹시 아나요. ‘싱 어게인’ 나가 우승했을지(웃음).”
“오~ 자신감!” 멤버들 추임새에 다시 입을 연 임영웅. “노래를 워낙 좋아하니까, 노래하기 위해 뭐든 끊임없이 도전했을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무대가 줄어 예전처럼 ‘알바’로 군고구마 장사하면서 버스킹도 하고.”
영탁(이하 탁): “민호 형이 우리 중 제일 잘 벌고 있었겠죠. 활동을 이미 오래해서.”
장민호(이하 장): “장민호의 시대였죠. 농담이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행사 뛰고 있겠죠. 무명이어서 서러웠을 거라 생각하는 분도 많은데, 그 생활에 꽤 만족했어요. 조금씩 나아지면 좋고 아니면 또 아닌 대로 안분지족(安分知足)하자는 주의였어요.”
이찬원(이하 이): “15학번. 예정대로라면 2월 졸업인데, 아마 휴학하고 취준생(취업 준비생)이었을 듯해요. 최종 목표는 가수였지만 일단 전공(영남대 경제금융학부) 살려 은행원이나 공무원 준비를 하려 했어요. 직장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가수로 풀리면 좋고, 가수 길이 영 안 보이면 부모님 식당을 이어받을 계획이었어요. 손님 응대하는 일을 좋아하거든요. 군대 2년 제외하고는 부모님 가게에 살다시피 했어요. 주방 일부터 가게 운영 관련된 사항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어요.”
부모님은 아들 걱정에 가게를 접었다. “제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코로나로 대구가 난리 났을 때도 우리 식당엔 손님이 넘쳤어요. 부모님이 손님 중에 확진자가 생기면 저한테 영향 갈 수 있다고 판단해 가게 문을 닫으셨어요.”
정동원(이하 정): “하동에서 학교 다녔을 거예요.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들으면서. 작은 행사도 뛰고요.”
옆에서 형들이 놀렸다. “서진이(가상의 여자 친구) 따라다닌 거 아니고?” “아니에요. 형! 아 진짜.” “이런 영재가 하동에만 묻혀 있었으면 얼마나 아까웠을까요.” (영탁). 서울로 전학(선화예중) 온 정동원은 “비대면 수업을 주로 해 학교엔 몇 번 못 갔지만 친구는 꽤 사귀었다”고 했다.
김희재(이하 김): “제대하면 트로트 앨범 내는 게 목표였어요. 가수 꿈은 확실했는데 앨범을 한 장도 못 냈거든요. 군에서 월급을 거의 안 쓰고 모았어요. 한 500만원 모았나. 트로트 가수는 회사가 열악해 직접 작곡가 찾아가서 자비 내고 곡을 받거든요.”
탁: “500만원이면 딱 한 곡 만들 돈이지. 저는 성인가요 전문 채널인 ‘아이넷TV’ ‘이벤트 TV’에 민호 형이랑 같이 출연하고 있겠죠. 지방 가면 같은 방 쓰니까 형한테 뭐 챙겨갈 거 없느냐고 종종 전화했을 거고.”
장: “저희한테는 그런 채널 프로그램이 ‘뮤직뱅크’랑 똑같아요. 일정 잡히면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죠. 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마이너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우연한 기회에 선을 넘어 메이저로 들어오게 됐어요.”
-마이너와 메이저의 선을 넘어보니 어떻던가요.
장: “동전 앞뒤처럼 맞붙어 있지만 너무나 다른 세계예요.”
임: “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겠어요. 마이너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단계가 있어요. 마이너를 10단계로 나눈다 치면, 민호 형은 9~10단계, 저는 5~6단계 정도였어요. 거기서 한 단계 올라가는 것도 정말 힘들었어요. 몇 년 걸릴지도 모르고, 궤도에 올라갈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니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장: “아이돌(유비스) 하고 이리저리 돌아도 안 뜨니 그 길을 포기해야 할 시점이 왔어요. 포기 안 하면 남은 인생의 질이 너무 떨어질 게 자명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포기하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 보니 이 세계 나름대로 커뮤니티가 넓었어요. 나를 좋아하는 소수 팬도 정말 고맙고. 놀이터같이 즐거웠어요.”
임: “저도 민호 형처럼 조금 있는 팬과 소통하며 그 삶을 즐겼어요. 행사 끝나고 현장에 와준 팬 스무 명 정도하고 밥 먹곤 했어요. 반찬도 싸주고 소소한 선물도 주셨지요. 그 시절이 가끔 그립습니다. 따로 연락처가 있는 건 아니라 계속 뵙지는 못하지만 얼굴은 다 기억해요. 콘서트 중간중간 그때 팬들이 보였어요. 맘속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인기? 홍수에 먹을 물이 없는 법
-그 사이 엄청난 인기가 몰려 왔죠. 광고 모델도 섭렵했고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말, 실감했을 듯한데요.
임: “그 물이 해일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군요.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1㎏짜리 노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었달까요.”
장: “갑자기 한꺼번에 인기가 몰려올 땐 더 조심해야 한다고 동생들한테 말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도 다 휩쓸려 오니까. 떠내려 오는 것 중 뭘 내 것으로 취하고 뭘 버릴지 분별력이 필요하다, 까딱 잘못하다간 있던 것도 떠내려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해요. 홍수에 막상 먹을 물이 없잖아요. 인기에 취해 들떠 있지 말자고 해요.”
-동원군은 인기를 느끼는지.
기자의 질문에 먼 산 보던 막내를 형들이 챙겼다. “동원아, 집중.”(영탁) “뭐가 좋은지, 기사에 쓸 수 있게 한번 생각해 봐.”(찬원)
정: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니까 신기해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많이 못 하는데 ‘알아봐 주면 좋겠다’ 싶을 땐 일부러 모자 안 쓰고 마스크만 끼고 나가 봐요, 헤헤! 서울 사니까 정말 신나요. ‘말은 나면 제주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얘기가 왜 나왔는지 알겠어요. 대형마트도 가고, 길거리도 걸어보고. 재미있어요.”
이: “동원이랑 종종 같이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동원이가 ‘여기 찬또배기 있어요!’ 하고 뜬금없이 외쳐요. 자기 쳐다봐 달라는 거죠, 하하!”
탁: “저도 인기를 체감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모자도 안 쓰고 파란색 옷 입고, 누가 봐도 연예인이다 싶게 입고 동원이랑 피규어 가게에 간 적이 있어요. 동원이를 더 많이 알아보시더군요.”
이: “작년 팀 미션 때 동원이랑 목욕탕 갔는데, 욕탕에서 어떤 아저씨가 하동 출신이라면서 동원이한테 인사를 하더라고요. 옆에 있던 저를 보더니 ‘아따, 아빠가 억수로 젊네’… 굴욕이었죠.”
-10대 하나, 20대 둘, 30대 둘, 40대 하나. 10대부터 40대까지 모여 있는데 격의가 없어요. 세대 차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요즘 보기 드문 조합이네요.
이: “하늘이 만들어준 조합이랄까. 일부러 짜맞춘 것처럼 나이 차도 조금씩 있어서 서로 부딪칠 일도 없어요. 앞으로 이런 조합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탁: “동감. 저희가 유별나죠. 나이도 다른데 이렇게 만나기 어렵죠. 지난 1년 가족보다 더 자주 본 사이니 합이 잘 맞을 수밖에요.”
-규율 반장은 누구인가요?
탁: “제가 좀 잔소리가 많아요(웃음).”
이: “민호 형이 아빠, 영탁이 형이 엄마, 영웅이 형이 막냇삼촌 같은 분위기?”
◇넌 장미, 난 안개꽃
-공동체로 같이 움직여 보니 어떤 시너지가 있던가요.
“형, 시너지가 뭐예요?” 곁에서 정동원이 묻자 이찬원이 설명했다. “여러 명이 같이해서 좋은 거. 말하고 보니 이게 시너지네. 모르는 부분 서로 가르쳐 주잖아.” “아, 이해됐어요. 형도 혼자 있으면 엉뚱한 말도, 욕도 못 하잖아. 이것도 시너지죠? 히히.” “뭐라고? 이 녀석이.” 어느새 또 주거니 받거니다. 말하기보다 듣는 편인 김희재가 입을 뗐다.
김: “내 단점을 다른 멤버가 채워주고 다른 멤버 단점을 내 장점으로 메워주고. 그게 저희 시너지죠.”
탁: “사랑의 콜센타를 매주 하면서 우리 팀워크는 꽃다발 같구나 생각했어요. 멤버 하나가 독무대 할 때 나머지는 옆에서 안무하면서 조미료 팍팍 쳐줘요. 메인 꽃으로 장미 한 송이가 있으면, 나머지는 기꺼이 안개꽃이 돼 주죠. 단, 메인 꽃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아요. 돌아가면서 멤버 누구나 메인 꽃이 되죠.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조연으로 주인공을 빛내주겠다는 준비가 돼 있어요. 제아무리 예쁜 꽃도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답지 않은가요?”
임: “녹화하면서 ‘와,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동생들 잘하는 모습 보면 행복하고 고마워요. 요즘은 찬원이가 정통 트로트 할 때 쟤가 저렇게 잘하는구나 싶어요. 음, 찬원아 이 정도면 됐지?”
이: “(함박웃음 지으며) 감사합니다! 형들 인터뷰 전날 코멘트 하나씩 다 생각해 온 거 아니에요? 민호 형은 ‘미스트롯2′ 심사할 때 성경까지 읽고 코멘트 준비한다던데(웃음).”
◇좌절이 키운 ‘올라운드 플레이어'
-실패한 경험이 서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탁: “제가 아이돌 조직, 발라드 장르, 다 갔다 왔지 않습니까.”
이: “갔다 왔어요? ‘돌싱’이에요? 대체 몇 번 갔다 온 거야.” 이찬원표 농담에 멤버들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탁: “뮤직뱅크, 인기가요, 스케치북에도 다 나가봤죠. 그러다가 트로트 시작한 지 5년 됐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주목받지 못하고 배척받는 소외 장르. 그렇다 보니 좀 더 끈끈한 게 있어요.”
옆에서 정동원이 물었다. “소외 장르가 뭐예요?” 임영웅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올해가 소의 해 아니냐. 그래서 ‘소의 장르’야.” 주변에서 배꼽을 잡았다.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아요. 예상했습니까.
“저희도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어요.” 한목소리로 답했다.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 학당’을 보니 발라드는 기본에 랩, 힙합까지 여러 장르를 소화하던데요. 좌절이 올라운드 플레이어(모든 포지션에 능한 선수)를 만든 게 아닐까요.
임: “노래방에 참 많이 다녔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일념만 있을 때였죠. 실용음악과 다니면서 이 노래 저 노래 다 해봤죠. 1순위가 트로트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트로트는 절대 안 하겠다도 아니었어요. 기회가 온다면 뭐든 부른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온 기회가 트로트였던 거고요. 원래 발라드, R&B(알앤비)를 제일 좋아했죠.”
-인순이부터 크러쉬까지 장르 불문 톱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던데요.
탁: “시청률이 높아서 출연했다가 저희 실력 보고 놀랐다, 인기 있을 만하다고 칭찬해 주는 선배가 많아요. 영광이죠.”
이: “조항조 선배와 듀엣 할 기회가 있었어요. 조 선배께서 먼저 전화해 ‘너랑 하는 무대 정말 기대된다. 어떤 무대보다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전화로 30분 동안 맞춰 봤어요. 다음 날 또 맞추고. 제 휴대전화 컬러링이 조항조 선배님 ‘남자라는 이유로’일 정도로 동경하는 선배가 진심으로 무대를 대하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김: “린 선배와 한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실현했어요. 한 번으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서 다른 곡으로 꼭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요.”
탁: “이적 형, (김)조한이 형과 같은 무대 선 건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임: “전 오승근 선배와 함께한 시간을 못 잊습니다. 트로트 길을 걸으면서 가장 동경했던 선배였거든요.”
장: “제작진에게 권인하 선배를 모셔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어요. 어렸을 때 선배님이 부르던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쉬지 않고 음악인으로 사는 모습도 존경스러웠습니다. 만나 뵈니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하신다고 했어요. 오랫동안 이분을 존경했던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니 벅찼어요.”
정: “저는요, 되게 가까이 있어요. 오랫동안 그분을 동경했어요. 그분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행사장에서 앞뒤로 공연한 적도 있고요. 누구냐면, 바로바로~ 영웅이 형이에요.” 임영웅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얘가 요즘 왜 이래, 허허!” 주변에서 가만있지 않았다. “너, 너무 정치적인 거 아니냐?”
◇팬 카페는 ‘내 편 카페’
-지난 1년 코로나로 참 힘들었어요. 톱6 노래로 힐링 받았다는 분이 많습니다.
탁: “정작 팬들한테 저희가 위로받았어요. 멤버마다 쌓인 팬레터가 몇 트럭일 겁니다. 저는 아크릴로 엄청나게 큰 우체통을 제작했어요. 방 하나를 다 채울 분량이죠. 하나도 버릴 수 없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임: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사연 보낸 분이 계셨어요. 어머니 위해 콘서트 티켓도 어렵게 구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고 낙담하셨죠.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가끔 안부를 확인하는데, 어저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혼자라도 와서 눈에 담겠다고 하시더군요. 맘이 아팠습니다.”
-인기가 많아진 만큼 그늘도 많겠습니다.
이: “악플, 악성 메시지도 많아 가끔 확인합니다.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피폐해져서요.”
장: “100% 좋은 얘기만 있을 순 없죠. 봐서 상처받을 거면 안 보는 게 낫다 싶어 소셜 미디어를 잘 안 해요. 팬 카페는 자주 갑니다. 저는 ‘팬 카페’라고 하지 않고 ‘편 카페’라고 해요. 내 편인 카페. 천군만마죠.”
-몰려오는 인기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터득했나요?
김: “모든 걸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가 있어요. 짬이 나면 그 친구 만나 속상하고 힘든 일을 쏟아내요. ‘힘들었겠다’는 친구 한마디가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최대한 생각이 고일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려 하고요.”
임: “원래는 축구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구장 여는 데가 없었어요. 대신 새로 개발한 취미가 있어요. 운동화 커스텀(장식이나 색을 덧대 나만의 운동화를 만드는 것), 레고 조립에 빠졌어요. 얼마 전엔 레고로 람보르기니를 만들었고 지금은 부가티를 조립하고 있어요. 손을 움직이며 잡생각을 떨쳐내는 거죠. 인기가 주는 중압감, 어깨에 진 짐이 때론 버겁답니다.”
정: “심심하면 서울 지도를 그려요. 서울 이사 와서 마포다, 송파다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사는 송파 중심으로 무슨 구가 있는지 그려 보다가, 한강 다리도 하나씩 그리게 됐어요.”
이: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있으면 꼬리에 꼬리 물고 활동에 대한 회의가 몰려와 우울해져요. 여러 사람을 만나 대화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장: “운동 끝나고 사우나 하는 게 인생 최대 낙이었는데, 코로나가 앗아갔죠. 얼마 전 아웃렛에 갔다가 난생처음 입욕제를 사봤더니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어젠 새벽 배송으로 ‘쑥 향기 입욕제’도 사고(웃음). 입욕제 푼 물 안에서 세상 시름도 녹입니다. 외국어 공부도 좋아해서 새로운 언어에도 도전하려고요.”
◇인생 로또? 준비 없인 기회도 없다
-1년간 깨달은 인생의 교훈이 있다면요.
이: “취직이 워낙 어려우니 친구들 대부분 취준생이에요. 가끔 연락해서 부러워해요. ‘학교 다니다가 갑자기 오디션에 붙어 취업 걱정할 일 없으니 좋겠다’면서. 그런데 전 갑자기 잘된 게 아니에요. 20년 동안 트로트 한길을 팠어요. 친구들이 ‘트로트가 웬 말이냐’ 할 때도, 아버지가 반대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준비하지 않았다면 오디션 기회도 못 잡았겠죠. ‘쉽게 포기하지 말자, 언젠가 기회가 온다. 포기하면 기회가 나를 비켜간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김: “저도 대여섯 살 때부터 트로트 신동으로 불리면서 한 우물만 팠어요. 예고(한국예고) 입학시험 칠 때 트로트를 불렀는데, 면접 본 선생님이 개교 이래 처음 봤다더라고요. 또래 친구들은 관심이 하나도 없던 장르를 끝까지 잡고 있었어요. 고등학교 동기인 아이돌 그룹 ‘오마이걸’ 멤버 승희가 그러더라고요. 학교 땐 정말 특이하다 생각했다고.”
임: “노래 경력 따진다면 저는 옹알이부터. 엄마가 저 두 살 때 ‘걸어서 하늘까지’ 불렀다고 해요(웃음). 농담이고 고2 때부터 본격적으로 했으니 십이삼년 정도 됐네요.”
탁: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뜬 거라 생각하는데, 민호 형이 1997년 데뷔했으니까 25년, 제가 15년, 희재하고 찬원이 20년, 영웅이 13년, 동원이 3년, 다 합치면 경력이 100년 정도예요. 반짝 뜬 거 같지만 그 뒤엔 눈에 안 보이는 엄청난 시간이 버티고 있어요. 어린 동생들이 1년 동안 바쁜 스케줄 쫓아오고 매번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껴요. 웬만한 기성 가수도 쉽지 않아요. 그동안 쌓은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장: “미스터트롯 최종 관문에 살아남아 이렇게 활동하지만 ‘살아남은 6명만 가수로서 좋은 인생을 사는가?’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이번 ‘미스트롯 2’ 출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은 딱 한 명이고 99명이 떨어지지만, 생각 바꿔 보면 수많은 예선 거쳐 100명 안에 들어온 겁니다. 전국 100등 안에 들었다는 얘기니까 엄청난 성적이에요. 좌절하지 마세요. 노래를 부르는 한, 결국 다 만나게 돼 있어요. 2000년대 톱스타였다가 ‘추억의 스타’로 우리 방송에 출연한 동년배 게스트가 꽤 있어요. 그들에겐 ‘가수 1등’이 세상 전부였기에 인기가 떨어졌을 때 그만큼 상실감이 컸지만, 저는 애초에 음악을 삶의 일부로 오래 가져가자고 생각했어요. 20~30대엔 그들이 앞섰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어요. 결국 인생은 제로섬(합쳐서 ‘0’). 길게 보고, 천천히 가는 것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