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DB

“부모의 죄가 곧 자식의 죄다. 똑똑히 지켜보고 종놈이 법을 어기면 어찌 되는지 뼈에 새기거라.”

2018년 tvN에서 절찬리에 방영한, 그리고 내가 이번 설 연휴 때 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 대감이 한 말이다. 조선 말기의 권력자였던 김 대감은 데리고 있던 여종을 탐하던 또 다른 권력자에게 그녀를 넘기기로 한다. 그 사실을 미리 안 여종은 역시 종놈인 남편과 도망치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붙잡히고 만다. 종놈 부부의 아들인 유진 초이(이병헌 분)는 맞아 죽기 직전인 아버지를 살려보려고 애쓰는데, 아홉 살이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대감은 다음과 같이 명한다. “죽여라! 재산이 축나는 건 아까우나, 종놈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맞아 죽고, 유진 초이 역시 그럴 운명에 처하지만, 어머니는 사력을 다해 유진 초이를 탈출시킨다. 미국에 건너간 유진 초이는 노비 대신 미군 대위 신분으로 다시 조선 땅을 밟는다. 그러는 가운데 만난 이가 바로 김 대감의 손자 김희성(변요한 분). 김희성은 특유의 넉살로 그와 친해지려 하지만, 유진 초이는 그럴 마음이 없다. “그날 당신도 거기에 있었어. 당신 어머니 태중에. 부모의 죄가 곧 자식의 죄라면, 태중에 있었다고 해서 뭐가 다르겠어?”

이렇게 범죄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자까지 책임을 물리는 것을 연좌제라 한다. 연좌제는 고대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으며, 우리나라에도 조선 후기까지 연좌제가 있었다. 어떤 이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부계와 모계, 처계 등 3족이 전멸하는 비극이 생긴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5공화국 때로, 헌법 제13조 3항을 보면 “자신이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명문화됐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그 후에도 연좌제는 암암리에 남아 수많은 이를 힘들게 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이가 가족 중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이 공무원 임용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수시로 불려가 치도곤을 당한 것도 비공식 연좌제의 그늘이었다. 요즘이라고 연좌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한 부부가 1997년 지인 10여 명에게 수십억 원을 빌리고 뉴질랜드로 도망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은 나중에 유명 래퍼가 돼서 TV에 나가게 되는데, 그 바람에 그의 부모가 TV에 얼굴이 나왔다. 떼인 돈 때문에 고통받던 이들은 유명 래퍼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고, 이를 계기로 유명 연예인이 부모 빚을 대신 갚으라는 이른바 ‘빚투' 운동이 벌어졌다. ‘그 당시 우리한테 가져간 돈으로 네가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너도 책임이 있다’는 게 빚투 운동의 논리였는데, 인간 감정으로는 이해가 될지언정, 이건 우리나라 헌법에서 금지하는 일종의 연좌제였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연좌제 금지의 원칙,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업무방해 범죄 행위다.”

한 친문 단체가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씨의 의사 자격을 박탈하자고 주장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고발했다. 조 전 장관도 소셜미디어에서 “근래 제 딸에 대한 악의적 허위 보도가 있었고, 그에 따른 개인 정보 유출과 온·오프라인의 무차별 공격이 있었다”며 “스토킹에 가까운 언론 보도와 사회적 조리돌림이 재개된 느낌”이라고 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소속인 김근식 교수마저 “누구보다 조국을 비판해 왔지만 조민의 인턴 지원을 생중계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의사가 된 조씨의 행보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두는 게 과연 연좌제일까? 조민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 의대나 의전원은 입학하기는 어렵지만, 입학에 성공하면 졸업해 의사가 될 확률이 95% 이상이다. 조씨가 2.0 이하의 학점을 받는 등 저공 비행을 하고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또 한일병원 인턴이 된 것은 어려운 입학 과정을 뚫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일 뿐, 정청래 의원 말처럼 “멘털에 경의”를 보낼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조씨가 위조된 서류를 이용해 의전원에 입학했다는 게 재판 결과 드러났다면, 조씨의 의사 면허는 취소돼야 하는 게 옳다.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이 사건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반면, 조씨는 1991년생으로 의전원 입학 당시 이미 성인이었다. 위조 여부를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이 해당 서류를 의전원에 제출했으니, 아버지가 전직 법무장관이 아니었더라도 이 정도면 입학이 취소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조씨는 검찰 수사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표창장이 정말 봉사 활동을 해서 받은 거라고 거짓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친문들은 ‘그렇게 한 사람이 어디 조씨뿐이냐?’고 우기던데, 그게 정말이라면 관련 증거를 모아 검찰에 고발해 입학 취소를 시키면 된다.

조국 전 장관의 아들 조원씨의 군 입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자녀의 병역의무 이행 여부는 고위 공직자의 자격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다. 그걸 잘 알기에 조 전 장관은 청문회에서 조원씨가 2020년이 가기 전에 군 입대를 시키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조원씨는 2021년 2월 현재까지 입대하지 않았으니, 이를 따져 묻는 것은 전 고위 공직자의 약속 이행에 관한 것일 뿐, 그의 아들을 이유 없이 조리돌리는 건 아니다.

“내 조부와 내 부모님을 대신해 진심으로 미안하오.” ‘미스터 션샤인'에서 사건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김희성은 진심을 다해 유진 초이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유진 초이는 김희성의 사과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뒤 둘이 힘을 합쳐 조선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이 사과에서 비롯된다. 이와는 달리 1심 판결 결과 조민씨의 의전원 부정 입학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조국 전 장관 부부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음에도, 조 전 장관 가족, 그리고 조민을 옹호했던 수많은 친문 중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조민의 의사 생활을 계속 추적하되, 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난 정권 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 아들의 운전병 특혜 의혹은 왜 욕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