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권 지폐 수명 고작 4년’.
2001년 5월에 나온 한 일간지 기사의 제목이다. 한국은행이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고액권이던 1만원권 수명을 조사해보니 48개월이었다. 이는 미국(112개월)과 캐나다(142개월)의 최고액권(각각 100달러) 수명의 절반도 안 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한국은행이 지난해 1만원권의 수명을 살펴보니 평균 130개월(약 11년) 유통되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20년 사이에 수명이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산출된 5만원권의 평균 수명은 174개월이다. 5만원권은 2009년 6월 처음 시중에 풀리면서 우리나라 최고액권이 됐다. 한국은행은 10년 동안은 수명을 조사하지 않다가 2019년 처음 수명(162개월)을 집계했다. 1년 새 수명이 1년가량 늘어난 것이다.
지폐는 한국조폐공사에서 만들어진 후 한국은행을 통해 ‘발행→유통→환수→폐기’되는 과정을 거쳐 수명을 다한다. 지폐가 언제 처음 유통됐는지는 지폐의 앞면 상단 왼쪽에 있는 고유번호를 통해 알 수 있다(한국은행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무작위로 1만장 이상을 뽑아 폐기를 앞둔 지폐의 유통 시작 연도를 파악하고,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지폐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균수명을 산출한다.
돈의 목숨은 보통 Δ내구성이 좋아 잘 찢기지 않거나 Δ국민들이 화폐를 깨끗이 쓰거나 Δ자주 쓰지 않으면 길어진다. 최근에는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 수단이 늘어나 화폐의 쓰임이 줄었기 때문에 해마다 수명은 길어지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줄었고, 지폐가 많이 유통되는 명절이나 공휴일에 이동이 크게 줄어들면서 ‘목숨 줄'이 길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최고액권의 수명은 미국 등 지폐 수명을 공개하는 주요 8국의 최고액권과 비교해보면 중간 수준(다섯째)이다. 미국 100달러(약 11만원), 영국 50파운드(7만8000원), 스위스 1000프랑(약 122만원)은 각각 275개월, 492개월, 240개월로 우리보다 2~3배 정도 길다. 한국은행 이병창 화폐연구팀장은 “주요 선진국 최고액권은 1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어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측면이 강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최고액권이 이 나라들보다 액수가 낮고 상대적으로 경조사 등에 직접 많이 쓰이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것”이라고 했다.
지폐 한 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5만원권이 약 200원이고, 나머지 1만원권이나 5000원권, 1000원권은 100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권에는 띠형 홀로그램 같은 위조방지 장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다소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