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코로나와 맞는 두 번째 봄. 여전히 하루 300~400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KF94 마스크를 쓴 채이지만 기나긴 겨울을 견뎌낸 뒤 맞이하는 새봄이 반갑기만 하다.
이 봄을 누구보다 반가워할 도시가 있다. 코로나에 지난봄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대구다. 지난해 2월 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닥쳐올 대유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튿날 10명, 사흘 후 23명, 나흘 후 50명으로 늘어나던 대구의 일일 확진자 수는 2월 29일 74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3월 중순 대구의 확진자 수는 6700여 명으로 당시 전국 확진자 수의 70%에 육박했다. 인구 240만 도시에서 매일 수백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대구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라는 오명과 낙인, 루머가 쏟아졌다. 봄이 왔다가 가는지도 모른 채 대구는 코로나와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그로부터 1년. 다시 봄을 맞는 대구의 모습이 궁금해 동대구행 KTX에 올랐다. 서울에서 겨우 1시간 40분, 대구의 봄은 멀리 있지 않았다.
◇한숨 대신 활기, “봄이왔나봄”
지난 7일 오전 11시, 동대구역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마스크를 썼다뿐 코로나 이전과 다를 것 없이 분주한 기차역 풍경이었다. 슬슬 출출해질 시간이라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대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는 먹을 것도, 볼 것도 많다. 동대구역 앞에 줄 서 있던 택시를 타고 서문시장으로 가는 길. “서울에서 왔습니꺼?” 낯선 말투를 알아챈 기사가 반색하며 물었다. “반갑고 고마워서 그렇치예. 서울에서 대구까지 와주고 택시도 타주고.”
택시 기사 김성한(57)씨는 코로나가 대유행한 작년 이맘때 대구는 ‘유령 도시’였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는 손님은커녕 길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 아예 몇 주간 택시 영업을 접었다고 했다. 코로나가 잦아든 후에도 택시나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나마 올해 초부터 서울이나 부산 등 타지에서 대구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택시 이용객이 늘고 있단다. 백신 접종에 기대를 건다면서도 그는 중간중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문시장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첫째주·셋째주 일요일이 정기 휴무일이라는데 7일 문을 연 가게가 의외로 많았다. 목적지였던 국수 골목도 성업 중이었다. 코로나가 대확산하던 지난해 2월 24일에서 3월 1일까지 서문시장은 엿새 동안 임시 휴업했다. 전쟁 때도 문을 닫은 적 없다는 서문시장 5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시 문을 열고도 시장은 한동안 활기를 잃었다. 한숨 가득했던 서문시장은 1년이 지난 지금 달랐다. 이불, 옷, 그릇, 반찬 등 문을 연 가게마다, 골목마다 오가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쳤다. 납작만두, 호떡 등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은 손이 바빴다.
국수 골목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칼국수와 칼제비 한 그릇씩을 주문했다. 그릇이 넘치도록 퍼주는 칼국수가 3500원, 칼국수와 수제비 섞인 칼제비가 4000원이다. 대접에 담아주는 오이고추와 깍두기는 비우기도 전에 계속 채워준다. 칼국수와 칼제비도 모자라면 더 퍼주겠다는 인심에 미리 배가 불렀다. “요새는 그래도 주말에는 손님이 이래 많다. 시장이 북적거리니까 얼마나 좋노. 다들 조심하고 또 조심하니까 더 나아지지 않겠나.” 마스크 2장을 겹쳐 쓴 30년 경력의 칼국숫집 사장 김수자씨가 웃으며 말했다.
코로나로 단축 운영됐던 서문야시장도 이달부터 정상 영업에 들어갔다. 화~목요일·일요일 오후 6시에서 10시 30분, 금·토요일 오후 6시에서 11시 30분까지 색다른 먹거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봄의 교향악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서문시장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다. 지난해 2월 21일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코로나 전담병원을 자처한 동산병원은 115일 동안 최전선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였다. 평온해 보이는 병원 풍경이 오히려 생경해 보였다.
동산병원을 끼고 골목을 조금만 오르면 청라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박태준이 곡을 쓰고 이은상이 노랫말을 쓴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바로 그곳. 백합이 필 시기는 아직 멀었지만 목련과 나뭇가지들은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기 위해 서서히 조율을 시작했다. 곧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초록잎이 돋아날 것이다. 올해는 이곳에서 봄의 교향악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청라언덕에는 10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과 교회, 주택 등 서양식 건물이 모여 있다. 아쉽게도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사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는 스윗즈·챔니스·블레어 주택 등 선교사 주택은 코로나로 임시 휴관 중이지만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 사이 정원과 산책로를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대구 근대 문화 골목 여행이 시작된다. 근대 문화유산을 따라 대구 도심을 걷는 여정. 청라언덕은 3·1만세운동길로 이어진다. 1919년 대구 3·1만세운동 당시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일본의 눈을 피해 시위 집결지인 도심으로 향했던 길이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이 계단에선 손잡고 걷는 연인들, 카메라 들고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10대들이 새로운 봄날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큰길을 건너면 그 유명한 계산성당이다.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100년도 넘은 고딕 양식 성당. 이국적인 풍취의 성당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 이상화 고택을 만난다. 이상화 고택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고택과 마주 보고 서 있다. 그 바로 옆 골목엔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을 주제로 한 문학체험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있다. 역사적 인물과 소설 속 장면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골목 여행의 백미가 여기 있다.
어느새 한약재 냄새가 코를 맴돈다. 약전골목에 접어들었다는 얘기. 약령시한의약박물관 마당엔 봄의 전령인 노란 산수유와 하얀 매화가 활짝 폈다. 박물관 옆에는 근대 건축물인 옛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만개한 봄꽃이 이색적이다. “텅 비었던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꽃까지 피니까 진짜 봄이 오는 것 같네요.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봄을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족들과 근대 문화 골목을 돌아보던 강재화(44)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빠 손을 잡은 여섯 살 꼬맹이가 쓴 마스크가 눈에 밟혔다.
1시간 넘게 걷기만 하다 진골목의 미도다방에 들렀다. 40년 넘게 골목을 지킨 예술가와 중년들의 사랑방. 정인숙 사장은 “매일 문을 열긴 했는데 길에도 사람이 없을 땐 무섭기도 하고 어쩜 이러나 싶어 단골손님과 엉엉 울기도 했다”며 글썽였다. 새봄을 맞아 진골목과 다방을 찾는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단다. 달콤한 쌍화차 한잔이 온몸의 피로를 풀어줬다.
미도다방 맞은편에 있는 ‘진골목식당’에서 대구식 육개장을 맛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난해 11월 폐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40년 전통의 노포(老鋪)도 코로나를 피할 순 없었다. 다행히도 근대문화골목에는 아쉬움을 달래줄 맛집이 많다. ‘옛집식당’의 육개장과 ‘국일따로국밥’의 따로국밥은 대구의 화끈한 맛을 보여준다. 만두 노포로 꼽히는 ‘영생덕’과 ‘태산만두’도 있다. 옥수수빵이 유명한 ‘삼송빵집’과 고로케 맛집인 ‘반월당고로케’, 단팥빵으로 이름난 ‘대구근대골목단팥빵’도 있다.
◇가객 김광석이 전하는 위로
내친김에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거리도 찾아갔다. 근대문화골목에서 택시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 봄나들이 나선 가족과 연인들로 거리는 이미 붐비고 있었다. 가객(歌客)이자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가수 김광석과 그의 명곡을 테마로 한 벽화와 조형물이 350m가량 이어진다. 김광석거리가 있는 대봉동은 김광석이 태어난 동네다. 김광석과 관련된 벽화와 조형물 앞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버스킹 공연을 즐기기도 하고 추억의 교복, 먹거리를 체험하거나 인근 카페에서 여유를 즐긴다. 김광석 세대나 팬이 아니어도 환하게 웃고 있는 김광석 얼굴과 그의 명곡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다.
벽화는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게 했다. 노란색 바탕에 활짝 웃고 있는 김광석 얼굴 옆에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라는 가사가 적혀 있었다. 대구 사투리로 하면 ‘일나라, 다시 한번 해보는기다’쯤 될까. 오랜만에 ‘일어나’라는 그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잠시 따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대구의 봄은 따뜻했다. 활기를 되찾은 시장과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깨달았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는 걸. 코로나가 사라진 ‘진짜 봄’도 머지않아 오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