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찾아간 한중대 캠퍼스. 잠금장치를 달았지만 의자로 유리문을 깨부수고 들어간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3월 초, 한때 신입생들로 붐볐을 한중대 캠퍼스는 깨진 유리와 부서진 의자, 먹다 버린 음료수 병들만 나뒹굴었다.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한중대는 교비 횡령과 교직원 임금 미지급 등 부실 운영으로 교육부의 폐쇄 명령을 받고 2018년에 문을 닫았다.

지난 3일 찾은 한중대는 3년 만에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었다. 건물 유리문은 벽돌과 의자를 던져 깨부수고 침입한 흔적이 그대로 남았다. 연구용 장비는 물론이고 전선이나 고철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쓸어 갔다. 강의실 바닥엔 누가 할퀴고 간 듯 끊어진 전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급기야 캠퍼스는 일부 유튜버의 공포 체험장으로 전락했다. 시뻘건 래커로 칠해놓은 낙서가 벽을 뒤덮었고, 바닥엔 목 잘린 인형이 뒹굴었다. 누군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썼던 그림들을 흉측하게 훼손해 계단 곳곳에 던져놓기도 했다.

대형 강당에 들어서자 누렇게 바랜 이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는 최근 제조 일자가 찍힌 소주병과 맥주병, 담배꽁초와 과자 봉지가 널려 있었다. 칠판에는 대부분 외설적인 낙서나 “다 죽어!” 같은 저주뿐이었지만, “11시에 졸업식 합니다”처럼 학생들의 마지막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복도에는 학생들 이름과 얼굴 사진이 담긴 서류들이 내팽개쳐져 있기도 했다.

한중대 본관 앞, 앞유리가 깨진 채 방치된 트럭.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한중대를 운영하던 학교 법인 광희학원은 2019년 파산선고를 받고, 법원이 선임한 파산 관재인이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파산 관재인 측은 “동해경찰서와 협조해 보수 공사도 하고 잠금장치까지 달았는데, 부수고 들어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건물과 부지를 공매에 내놨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두 번이나 유찰됐다. 교육용 시설인 폐교를 수익용 시설로 바꾸려면 건축물 용도 변경이 필요해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2000년 이후 폐교로 해산된 법인 9곳 중 청산이 완료된 곳은 1곳뿐이었다.

한중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의 주동식 교수는 “폐교가 예상되는 시점부터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일단 폐교부터 시키고 보자’는 식이었다”면서 “국가 지원 받아서 마련한 교육용 장비도 다 훔쳐가고, 부랑자들이 몰려들면서 학교가 쓰레기장이 됐다”고 했다. “교육부 직원이 한 번만 현장을 보면 심각성을 알 텐데…. 최소한의 관리·보존은 해야지 이렇게 흉가처럼 내팽개쳐 놓으면 누가 사려고 하겠어요. 관심이 있어서 보러 왔던 기업들도 현장에 와보곤 답답해하면서 돌아가죠.”

◇수학 8등급도 충북대 수학과 합격?

지난 2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능 등급 7·8·5·7·7이 합격한 현 충북대 수학과 상황’이라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국어 7등급, 수학 8등급, 영어 5등급, 과학탐구 7등급 성적표와 함께 충북대 수학과 합격 통지서를 올려 논란이 일었다. 충북대 입학처는 “학생 개인의 합격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지만, 올해 충북대 수학과는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해 마지막 예비 번호 수험생까지 합격시키고 추가 모집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 인구 감소가 현실로 닥쳤다. 이대로라면 한중대처럼 문을 닫는 지방대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전국 지방 대학은 정시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해 2만6000여 명 추가 모집에 나섰다. 수시·정시에 이은 ‘제3의 입시’라 할 정도다.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구대 총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육부는 현재의 대학 입학 정원이 유지되면 2024년엔 정원보다 입학생이 약 12만4000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서 문을 닫은 대학은 18곳이다. 지난해 동부산대에 이어 지난달엔 군산 서해대가 강제 폐교됐다. 서해대의 신입생 충원율은 2019년 17.5%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는 재정난으로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면서 충원율 0%를 기록했다.

애초 지방대가 우후죽순 생겨난 주된 이유로는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도입한 ‘대학 설립 준칙주의’가 꼽힌다. 대학 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최소 요건만 갖추면 설립을 인가해줬다. 성화대·광주예술대 등 폐교된 대학 대다수가 제도 도입 직후인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설립된 곳이다.

한중대 내부 태권도장. 천장까지 뜯어 전기선을 훔쳐간 흔적들이 남아있다. /한중대 학생 제공

◇우울증 앓는 교직원·주변 상권 마비

대학 한 곳이 사라질 때마다 지역 경제는 초토화한다. 2017년 9만3600명이던 동해시 인구는 2018년 3월 한중대 폐교 직후 9만2000명으로 3개월 만에 1600명이 급감했다. 출산장려금 확대에 주소 이전 운동까지 펼친 동해시의 자구책에도 9만명(올해 2월 기준)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한중대 앞 원룸촌에서 ‘청룡원룸’을 운영하는 정덕조(78)씨는 “학생 한 명이 월세, 식비로 최소 월 100만원씩은 쓸 텐데 동해시로선 엄청난 타격”이라고 했다. “이제 한두 달 있다 가는 일용직뿐이고 장기로 묵는 사람이 없어요. 공사가 없는 겨울철이면 방이 다 비죠. 학교 하나 죽으니까 이 주변 교통도 다 마비됐어요. 수십 회씩 다니던 버스도 열 번밖에 안 다니니까 시내 한번 나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는 “내 생애 마지막 업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학교가 이렇게 되니까 막막하다”면서 울먹였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폐교 대학의 교직원들은 재취업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김정희 전 성화대 교수가 2017년 폐교 대학 교수를 추적 조사한 결과, 44명 중 64%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앓았다. 폐교된 대학교수들이 만든 한국교수발전연구원의 이덕재 원장(전 성화대 교수)은 “대부분이 박사 학위 소지자인데 막노동을 하거나 운전 기사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젊은 교수 몇 명은 폐인처럼 살다가 건강 악화로 죽기도 했어요. 폐교가 늘어날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교육부에 여러 번 항의했지만 ‘법이 없다’는 이유로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애들이 없어도 교육은 필요하다”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 재정난을 겪다가 스스로 문을 닫는 ‘자진 폐교’ 사례도 나오고 있다. 건동대·경북외대 등에 이어 2017년엔 대구미래대가 전문대 중에선 처음으로 자진 폐교를 신청했다. 대구미래대 이재웅 교수는 “건물을 버려둘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토부, 교육부가 상의해서 사회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애들이 없어도 나라에 교육이 필요 없는 건 아니잖아요. 폐교 자산이 교육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죠. 앞으로도 우후죽순 폐교가 나올 텐데 국회나 교육부나 넋을 놓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학생과 교직원, 지역사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폐교 컨설팅부터 사후 활용까지 폐교 절차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생교육원이나 노인 요양원, 연구 단지, 지방 공기업 연수원 등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주동식 교수는 “교육 기능을 상실한 대학은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폐교 시설을 재활용하고 매각 자금으로 체불 임금을 해결하는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학내 구성원들도 막무가내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교육부는 2018년 폐교 대학 종합 관리 사업을 위해 예산 1000억원을 요구했으나 폐교 대학 기록물 관리 예산을 빼곤 전액 삭감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폐교 사후 대책에 대한 내부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당시엔 공감을 얻지 못해 예산 확보나 법 제도 정비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내년에 개소할 폐교 대학 기록물 관리센터를 중심으로 폐교 절차 컨설팅이나 교직원 재취업을 위한 연수도 가능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