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허엇!”

지난달 6일, 대전 동구의 한 시골 마을. 사방이 인삼밭과 숲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흙 마당에서 김보현(28)씨가 참매 ‘태산이’를 노려보며 꿩고기를 흔들었다. 20m 앞 말뚝에 자리 잡은 태산이는 김씨의 외침에도 제 자리에서 푸드덕 날갯짓만 하며 한눈을 팔았다.

“더 목청껏 불러야지!”

한참을 옆에서 지켜보던 응사(鷹師·매를 부려 사냥하는 사람) 박용순(62)씨가 한 소리 했다. “줘봐!” 김씨로부터 먹이를 건네받더니 “합!” 소리친다. 태산이가 한달음에 박 응사 손으로 올라타 먹이를 물어뜯는다. “저도 태산이를 본 지 3년째인데, 여전히 응사님만 좋아하네요.” 김씨가 멋쩍은 듯 웃었다.

이곳은 한국 전통 매사냥보전회 본부이자, 박 응사가 네 마리의 매를 키우는 응방(鷹坊·매를 사육하고 훈련하는 장소). 박 응사가 후학들에게 매사냥을 전수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매가 사람 손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줄밥’ 훈련에 한창이었다.

지난달 6일 응사 박용순씨와 매사냥 이수자격증을 준비 중인 김보현씨, 기자(왼쪽부터)가 함께 매를 날리고 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박 응사가 “직접 해보라”며 버렁(매를 다룰 때 손을 보호하기 위한 가죽 장갑)을 건넸다. 떨리는 마음으로 꿩고기를 집었다. “핫! 헛! 허엇!” 별의별 소리를 내며 꿩고기를 흔들어도 태산이는 딴청만 피운다. 수십 번의 부름 끝에 간신히 태산이가 기자 손 위에 앉았다. 박 응사는 “매는 경계심이 많아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눈길도 안 준다”며 웃었다.


◇매사냥 동호회원 1000명 넘어

현재 문화재청에 매사냥 기능보유자로 등록된 사람은 박용순 응사와 전남의 박정오(80) 응사, 단 두 명이다. 두 응사에게 3년 이상 교육을 거쳐 이수자격 심사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이수증이 부여된다. 지금까지 이수 자격증을 얻은 사람은 19명. 매사냥의 이론부터 매 포획법, 길들이는 법, 사냥하는 법, 매사냥에 필요한 도구 만들기까지 모두 배워야 이수자 자격을 얻는다.

올해 이수자격 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김보현씨는 4년째 박 응사에게 매사냥을 배우고 있다. 평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펫 리조트에서 애견 미용사로 일하면서 주말마다 대전에 있는 박 응사 집으로 출퇴근한다.

“여행차 들른 일본에서 우연히 매사냥을 접했는데, 매의 용맹함에 푹 빠졌어요. 야생동물인 매는 인간의 삶에 길들여진 강아지의 귀여움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귀국하자마자 인터넷을 수소문해 응사님을 찾았죠.” 전통 매사냥보전회 회원은 1000여명. 그중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30여명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20~30대라고 했다. 이들 대부분은 매사냥을 문화재 전승 차원이 아닌 취미로 접근한다. 박 응사는 “젊은 직장인들이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호연지기를 느끼기 위해 주로 찾는다”고 했다.


◇ 순식간에 꿩을 낚아챘다

박 응사가 매사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먼저 뒷산으로 올라 꿩을 풀고, 100m쯤 떨어진 거리에서 김보현씨가 참매 ‘대봉이’를 붙잡고 섰다. 김씨 손에 앉은 대봉이는 사방으로 고갯짓을 하며 먹잇감을 찾았다. 10분쯤 기다렸을까. 꿩이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매 날아간다!” 박 응사가 소리쳤다. 김씨가 힘차게 손을 뻗어 매를 날렸다. 김씨 손을 떠난 대봉이는 쏜살같이 날아올라 먹이를 낚아챘다. 날카로운 발톱이 꿩의 몸통에 박혔다. 둘은 순식간에 갈대숲 사이로 사라졌다.

“쉿! 이제 매를 찾으러 나가야 해요. 방울 소리가 나는지 들어야 하니 조용히 해주세요.” 김씨가 말했다. 박 응사는 전자 위치 추적기로, 김씨는 시치미(매의 꼬리에 다는 이름표)에 달린 은방울 소리로 사방을 돌며 매를 찾았다.

주변을 10여 분쯤 뒤졌을까. “찾았다!” 김씨가 외쳤다. 대봉이는 300m 떨어진 갈대밭 한가운데서 먹이로 잡은 꿩을 뜯고 있었다. “이번엔 제가 응사님보다 빨랐죠? 때론 추적기보다 방울 소리로 더 빨리 찾을 때도 있어요.” 김씨가 짓궂게 웃었다. 박 응사가 되받았다. “그래, 너 많이 늘었다.”

참매 ‘태산이'가 꿩 사냥에 성공한 모습.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 “활강하는 매를 보라!”

매는 야생의 동물인 만큼 잡기도, 길들이기도 어렵다. 천연동물인 매는 매사냥 기능보유자만 전수 목적으로 포획할 수 있다. 박 응사는 매가 주로 서식하는 숲에 명주실로 만든 그물을 쳐 놓고 살아있는 비둘기를 미끼로 묶어 둔다. 경계심 강한 매는 웬만해선 먹이를 물지 않는다. 박 응사는 “보름을 기다려도 매 구경도 못 하는 날이 태반”이라고 했다.

운 좋게 매를 잡아도 사냥에 나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 잡힌 매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길게는 한 달간 온종일 매를 손에 올려놓고 어르고 달래며 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 기간에는 잠도 매방에서 매와 같이 잔다. 시간이 지나면 매가 서서히 마음을 연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매를 붙잡은 상태로 다른 손에 있는 먹이를 주는 ‘뜀밥’부터 시작해 ‘손뜀밥’ ‘줄밥’으로 거리를 점점 벌려 나간다.

몇 달간 훈련을 마친 다음에야 매와 함께 사냥을 나간다. 사냥 중에도 안심할 수 없다. 매가 날아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 수년간 공들여 훈련한 매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박 응사는 “돌아오는 것도 매 마음이다.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에게 ‘주변에 매사냥을 하는 이들이 있냐’고 물었다. “독특한 취미긴 하죠. 매는 집에서 키울 수도 없고, 훈련하는 데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거든요. 하지만 푸른 하늘을 활강하는 매를 직접 보면, 그 전율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4년간 매 주말을 반납하고 있는데, 그만한 매력이 있지 않겠어요?” 김씨의 손에 올라타 천진하게 울고 있는 대봉이를 보자, 순간 ‘매사냥을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