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테마주(株)요? 총 10개 종목입니다. 지금 대장주는 NE능률이지만 곧 기신정기도 주목받을 거예요.”

지난 9일 기자가 카카오톡으로 영업 중인 한 주식정보방에 윤석열 테마주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주식정보방이란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투자 알선·중개 등을 통해 수수료를 챙기는 업체들. 기자가 문의한 정보방 운영자가 추천한 10개 종목은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혈연·학연 등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기업들이었다.

가장 ‘강추’한 종목은 교육업체 NE능률과 중소 제조업체 기신정기. 둘 다 회사 최대주주가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기신정기 최대주주는 윤 전 총장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기도 해서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두 회사는 윤 전 총장이 전격 사퇴한 지난 4일부터 매일 10~30%씩 주가가 수직상승 중이다. 이 외에 알루미늄 압출 전문회사인 알루코라는 기업도 추천했는데, 회사 소재지가 윤 전 총장 아버지 고향인 충남 논산이라는 이유였다. 나머지 7개 회사는 모두 대표이사나 사외이사가 윤 전 총장과 고등학교·대학교 동문이라서 테마주에 올랐다.

그러나 정보방 운영자가 제공한 정보엔 일부 오류도 있었다. 대표이사가 윤 전 총장과 동문이 아니거나 이미 퇴임한 사람이었다. 다른 주식정보방에선 기신정기 최대주주가 파평 윤씨가 아니라 해남 윤씨라는 정보도 돌았다. 파평 윤씨 대종회에 따르면 윤 전 총장과 NE능률·기신정기 최대주주가 다 같은 파평 윤씨 집안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 간에 그 이상의 연결고리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파평 윤씨 대종회 관계자는 “모두 바쁘신 분들이라 종친회 행사에 나오거나 서로 어울린 적도 없는 사이인 걸로 안다”고 했다.

일러스트=유현호

대선주자급이면 테마주만 40개 넘어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인 테마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온갖 테마주 추천 정보가 난무하지만 올해는 열기가 유독 뜨겁다. 주식 투자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탓이다. 가장 ‘핫’한 테마주의 주인공은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로 올라선 윤 전 총장이지만,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대선주자급 인물 모두 수십 종목의 테마주를 거느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기자가 소셜미디어에서 영업 중인 주식정보방 3곳에 접속해 정치인 테마주 추천을 받아봤다. 윤석열, 이재명 등 대선주자급 정치인부터 정세균 국무총리, 오세훈 전 시장 등 이른바 ‘잠룡’으로 묶을 수 있는 정치인 7명을 골랐다. 적게는 1인당 10개에서 많으면 40여 종목이 테마주로 묶여 있었다.

특정 정치인의 테마주로 분류한 이유는 대개 학연·지연·혈연이었다. 수많은 테마주 중 안철수가 창업한 안랩처럼 테마주로 분류할 근거가 확실한 경우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연결고리만으로 테마주로 분류하는 수준이었다. 나름의 변화도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주로 학연이나 지연을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윤 전 총장처럼 종친(宗親)까지 테마주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종친 테마주’의 원조는 정세균 총리였다. 건설장비 제조업체 ‘수산중공업’이 정 총리 테마주인데, 이 회사 회장이 정 총리와 같은 압해 정씨 종친이라고 했다. 2019년 정 총리가 임명됐을 때 이 회사 주가가 이틀 넘게 20~30%씩 올랐다. 재밌는 건 2016년엔 수산중공업이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의 테마주로 분류됐다는 점이다. 이 회사 회장이 김무성 전 의원과 한양대 동문이라는 이유였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하면서 이 회사 주가도 덩달아 흔들렸다.

엉뚱한 회사를 테마주로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테마주 중 가장 대표적인 게 ‘오리엔트 정공’이다. 이 지사가 10대 때 계열사인 오리엔트시계 공장에서 일한 적 있고, 2017년 대선 출정식도 그 공장에서 했다는 이유다. 그런데 지난 9일 기자에게 이재명 테마주를 추천해준 한 주식정보방 운영자는 이름이 비슷한 오리엔탈 정공을 이 지사 테마주로 추천했다. 오리엔탈 정공 역시 실제로 있는 회사이지만 오리엔트 정공과는 무관하고, 업종도 전혀 달랐다. 오리엔탈 정공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의 처가가 소유주인 회사이니 금태섭 테마주로 분류되는 게 맞는다. 하지만 이 오리엔탈 정공은 종종 이재명 테마주로 잘못 분류돼, 지난 1월 이 지사가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오리엔탈 정공 주가가 30%가량 오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투기·작전 세력에 악용 우려도

증권업계에선 정치인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시기를 2002년 16대 대선 전후로 본다. 이 당시엔 특정 정치인과의 학연·지연보다는 그 정치인의 정책이나 공약과 관련된 주식이 테마주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충청권 수도 이전 계획과 관련된 건설사들 주가가 오르는 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대운하 공약 때문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때의 테마주는 정책이 추진됐을 때 수혜를 볼 기업들을 예측한 것이라 주가가 오를 이유가 탄탄한 편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학연 같은 정치인 개인과의 작은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이른바 ‘묻지 마 테마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카카오톡을 비롯, 각종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과거엔 증권가에서 트레이더나 기관투자자들만 공유하던 정보들이 개인에게도 쉽게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과 시기를 같이한다. 특히 최근엔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등에서 영업하는 주식정보방 같은 유의 업체들이 온갖 정치인 테마주 관련 정보를 양산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작년까지 한 주식정보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김명호(가명·33)씨는 “평소 정치인 개인 정보와 공시된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테마주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둔다”며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거나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 테마주 문의가 부쩍 늘어나는데 그럴 때 미리 만들어둔 리스트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묻지 마 테마주들 대부분이 단타 매매를 통한 투기나 이른바 ‘작전세력’의 투자 사기 등에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정치인 테마주들의 주가 추이를 보면 특정 이슈가 있을 때 테마주 관련 정보가 확 퍼지면서 주가가 급등한 뒤 며칠 사이에 폭락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전후 맥락을 잘 모르고 테마주란 말에 현혹돼 주가가 급등한 상태에서 투자한 이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이다. 개인투자자 오모씨는 “요즘은 개인투자자 중에도 그런 정치인 테마주를 무턱대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테마주로 뜬다는 정보를 듣고 빨리 투자했다가 빠지면 버는 거고 늦게 투자하면 바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일 이후 이슈가 된 윤석열 테마주들 역시 대부분 개인이 순매수를 하며 상승세를 주도하는 반면, 기관과 외국인들은 팔고 있는 형국이다. 김은미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은 “정보가 없는 투자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주식정보방에서 흘려주는 정보를 전문가 정보라고 생각하고 매매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런 부주의한 투자로 피해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