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현대백화점 앞에 이런 문구가 적힌 유세차가 서 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가혁명당 허경영(73)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유세차엔 허 후보 캠프의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이 연신 “허경영!”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 300여 지지자들이 몰려 허 후보의 등장을 기다렸다. 10시 40분, 경호원들을 대동한 허 후보가 백화점 안에서 걸어나왔다. 유세차 앞에 있던 지지자들이 순식간에 허 후보를 에워쌌다. 허 후보는 지지자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얼굴을 감싸쥐고 인사를 했다. 그가 손을 잡아주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지지자들을 헤치고 유세차에 오르는 데만 10분이 걸렸다. 마이크를 잡은 허 후보는 “여도 야도 답이 아니다. 허경영이 답이다”라고 외쳤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유리창을 내리고 “허경영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허 후보는 이번이 7번째 출마다. 1991년 서울 은평구의원 선거에 나간 것을 시작으로 1997년 대선, 2004년 총선 등에 꾸준히 출마했지만 당선된 적은 없다. 2007년 대선에 나왔을 때 유엔 본부 판문점 이전 등 파격적인 공약과 기행에 가까운 언행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때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2018년 피선거권을 회복한 허 후보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을 창당해 작년 총선에 나섰다. 이때는 모든 정당 중 가장 많은 예비 후보(2056명)를 등록해 화제가 됐지만, 득표율은 0.71%(20만657표)에 그쳐 원내 진입에는 실패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상 지지율은 1~2%대에 그치고 있지만, 그가 수위를 달리고 있는 항목이 있다. 바로 재산이다. 허 후보가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72억6224만원으로 현재 유세 중인 서울시장 후보 중 1위다. 2007년 대선 당시 재산이 6억원이라고 신고한 것과 비교하면 그 사이 10배 넘게 불어났다. 비결은 그의 현업과 관련이 있다. 허 후보는 선관위에 자신의 직업이 ‘강연업’이라고 신고했다. 실제로 허 후보는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재산 72억원 신고해 후보 중 1위
지난달 30일 허 후보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하늘궁’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기거하며 찾아오는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거의 매일 강연을 한다. 이날도 전국에서 허 후보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라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 때문에 3명씩 허 후보와 만나 20~30분간 상담 겸 강연을 듣는 식으로 진행됐다. 미국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강연은 무료가 아니다. 주중에는 참가비로 2만원을 받고, 주말엔 10만원을 받는다. 하늘궁 관계자는 “강연을 들으러 온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주말에는 숙박도 할 수 있다”며 “매일 100~150명씩 전국에서 허경영 총재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하루 300~500명씩 왔다고 한다. 또한 백궁이라고 불리는 시설에 명패를 안치한 사람은 허 후보와 개인 상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명패 안치 비용은 300만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허 후보는 이 하늘궁이 있는 장흥면 일대에 토지 1만3300여평을 소유하고 있다. 평가액은 129억8534만원. 강연장으로 활용 중인 하늘궁 본관과 별도의 영상 강연장, 숙박 시설, 직원 숙소, 주차장 등도 모두 허 후보 명의였다. 그는 2015년부터 이 일대에 토지를 매입하고 하늘궁 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도 좀 더 규모가 큰 신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하늘궁 본관 벽에는 이 신축 공사를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걸려 있었는데 기부금은 100만원부터 1억원까지 다양했다. 1억원을 기부한 이들에겐 ‘대천사’라는 호칭이 붙어 있었다.
허 후보는 최근 5년간 납세액으로 총 18억9875만원을 신고해 이 역시 서울시장 후보 중 1위였다. 다만 2016년에는 납세액이 없었고, 2017년엔 납세액이 1만2000원이었다. 그러다 2018년 1479만원을 납세하더니 2019년 3억3672만원, 2020년 15억4722만원으로 매년 급격히 늘어났다. 그의 소득 증가 속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산만큼 채무도 많아… 291억원
허 후보는 하늘궁 부지 일대와 건물 외에도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가혁명당 사무실과 서울 종로 피카디리 빌딩에 있는 상가 등 9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본인 명의 재산으로 신고했다. 피카디리 빌딩 상가 역시 강연장으로 활용 중이다. 다만 상가 부동산 등기부에는 소유권자가 ‘주식회사 초종교하늘궁’이라고 돼 있었다. 허 후보는 “초종교하늘궁은 내가 100%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이 초종교하늘궁 주식 200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는데, 평가액이 122억3799만원이라고 적어냈다. 주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612만원이다. 액면분할 전 삼성전자 주가가 250만원 수준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허 후보 측은 이런 평가액 기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 초종교하늘궁의 2019년 매출액이 38억3817만원, 영업이익은 37억3795만원으로 기재돼 있다. 영업이익률로 치면 97.4%인 초우량 기업인 셈이다. 이 회사 법인등기부에는 사업목적으로 강연업, 인생 및 상담 컨설팅업 등과 함께 초우주무한대에너지 컨설팅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늘궁 관계자는 “하늘궁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 후보는 예금이 아니라 현금으로 정확히 1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신고했다. 서울시장 후보 중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사람은 그뿐이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재산 신고는 선거법에서 정한 절차와 양식에 맞는지 여부를 확인할 뿐 재산 내역에 대한 세부적인 검증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후보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합하면 364억원가량인데, 정작 재산이 ‘겨우’ 72억원인 이유는 채무가 291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새마을금고 등 은행 대출이 61억원가량이었고 나머지는 사인과의 채무라고만 기록돼 있었다. 허 후보 선거캠프에 문의했지만 “재산은 후보님이 직접 등록하신 것이라 자세한 내용은 우리도 잘 모른다”고만 답했다. 허 후보 역시 이 채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날 허 후보는 기자에게 “이번 선거에선 내곡동 땅이니 일본 부동산이니 하면서 여야 모두 네거티브 캠페인만 하고 있다”며 “나는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를 하겠다”고 말했다. 허 후보는 서울시 예산의 70%를 절약해 시민들에게 배당금을 주고 주택과 자동차 등에 부과되는 재산세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들고나왔다. 서울 취수원(源)을 팔당댐에서 청평댐으로 이전해 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그는 “정권을 여당에도 맡겨보고 야당에도 맡겨봤지만 모두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다”며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이들이 나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허경영식 정치의 본질은 결국 대중이 품은 욕망을 자극하는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다”며 “미국의 ‘트럼프 현상'처럼, 허씨가 다소 황당해 보여도 그를 답답한 정치 현실을 타개하는 구원자라고 보는 사람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