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결혼하는 일본인이 급증하고 있는데, 외국인과의 결혼 중에서도 일본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이 최근에는 크게 증가했다. 지난 1990년에는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출신 신부가 40%를 차지했다.”

1997년 5월 일본 도쿄발 연합뉴스 기사의 일부다. 이처럼 과거 일본 국적의 남성은 외국 여성들에게 인기였다. 한국 여성에게도 마찬가지. 1980년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내가 지금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1980년대에는 지금보다 한일 관계가 좋았던 탓인지 누구도 우리 부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이 결혼한 건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0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과 일본인 남성이 혼인한 건수는 135건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3년 이래 가장 적었다. 1993년 한국인 여성과 일본인 남성이 결혼한 건수는 1818건이었는데, 이후 꾸준히 늘어나 2005년 3423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지난 2015년에는 808건으로 1000건 아래로 내려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100건대까지 떨어졌다.

일본 요코하마에 사는 이연주(45)씨는 2008년 두 살 연하 일본인 남성과 결혼했다. 이씨는 “일본 시가나 한국 본가 모두 결혼을 축하했고, 주위의 한국·일본 친구들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줬던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5~6년 정도 전부터는 한국인과 일본인 만남이 크게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요인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한다. 우선 이른바 일본 남성이 가졌던 ‘선진국 프리미엄’이 떨어졌다는 점이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일본 남성은 ‘선진국 출신'’돈 많은 남성'과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실제 1980년대에는 “한국인 여성이 일본의 장기 비자를 받기 위해 일본인 남성과 위장 결혼을 하는 사례가 많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과 대등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그 ‘프리미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2011년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강세구(43) 일본 도쿄 한큐백화점 패션콘텐츠 개발팀 차장은 “일본에서 한국인들과 얘기해 보면 더는 문화나 미래 기술 등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크게 나은 것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본인 남성이 가진 선진국 후광이 사라졌고, 그렇다 보니 (일본인 남성에 대한)기대치가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인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한 결혼 정보 업체 관계자도 “과거 한국이 어려운 시절에는 연애 결혼이 아니라 중매 결혼 건수도 꽤 많았지만, 지금은 (일본인과 결혼하는 한국인 여성) 대다수가 연애 결혼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2010년대 들어 급속히 악화한 한·일 관계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 여성과 일본인 남성의 혼인 건수는 2010년대 들면서 해마다 200건씩 감소했다. 특히 2015년(808건)과 2016년(381건) 사이에는 430여건이나 줄었다. 이 기간에는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발표가 있었고, 이후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커지면서 박근혜 정권의 위기로까지 번졌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2010년대 들어 아베 신조 총리가 장기간 집권하면서 혐한(嫌韓) 문화가 강화됐는데, 혐한은 주로 일본 남성이 주도하는 것”이라며 “한국 여성에게 일본 남성이 좋지 않게 보인 것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관련 통계를 보면 일본인 남편 수와는 달리 일본인 며느리(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수)가 새로 탄생하는 건수는 2010년 1193건에서 2019년 903건으로 큰 변화가 없다. 이 밖에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후,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가진 각종 불안감 등도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있다.

반면 베트남 남편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베트남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결혼해 통계에 잡힌 것(1993년 이후)은 2000년(3건)이 처음인데, 해마다 늘어나 2019년에는 639건을 기록했다. 한 결혼 정보 업체 관계자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