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세종대로에 시선 끄는 설치물 하나가 등장했다. 코리아나호텔 외벽에 생긴 초대형(면적 219.6㎡) LED 전광판. 원래 이곳에 있던 전광판(112.3㎡)의 두 배로 커지기도 했지만, 스마트폰처럼 세로로 기다란 형태라 멀리서도 눈에 띈다. 종전 가로형(가로 14.4m, 세로 7.8m)에서 세로형(가로 12.48 m, 세로 17.6m)으로 바뀐 것. 대각선 방향 길 건너에 있는 청계천 옆 청계한국빌딩에도 세로형 전광판이 붙어 있다.
전광판이 ‘세로 본능’ 시대를 맞았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소비자를 겨냥해 몇 해 전 ‘세로 TV’가 등장하더니, 이젠 ‘거리의 모니터’ 전광판도 세로형으로 변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3년 새 서울 도산대로에만 세로형 전광판이 10여 개 생겼다”며 “관찰력 좋은 이들은 서울 도심 풍경이 미세하게 바뀐 걸 눈치 챘을 것”이라고 했다.
‘16대9’ TV 모니터 비율이 주를 이루던 전광판이 세로형으로 바뀐 데엔 모바일 영향이 크다. SM C&C 광고사업부문 조현경 국장은 “‘틱톡' 같은 세로형 플랫폼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모바일에 익숙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세로형 광고 캠페인이 많이 제작되고, 기존 가로형 광고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며 “이런 추세가 세로형 전광판 확산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숨은 이유가 또 있다. 그 사이 전광판 규정이 바뀌었다. 우창훈 디지탈이미지테크 대표(한국전광방송협회 회장)는 “원래 서울시 ‘옥외 광고물 조례’에 ‘전광판의 가로는 제한이 없지만 세로는 8m까지 허용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 규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업계 지적이 일자, 2017년 7월 서울시에서 ‘옥외 광고물과 옥외광고산업진흥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가로·세로 길이 상관없이 면적 225㎡ 이하’로 규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세로 8m 제한이 풀리자 가로형 일색이던 전광판 틀이 바뀌었다. 첫 파격 전광판은, 3년 전 도산대로 학동사거리 S&S(에스앤에스) 타워에 등장한 세로 전광판(가로 13m, 세로 17.2m). 한 광고 대행사 관계자는 “초반 S&S 타워 전광판에 걸린 어느 럭셔리 브랜드 제품이 ‘완판’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주변 건물들이 너도나도 세로형 전광판을 내건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현재 신사역 유경빌딩·강남을지병원 사거리 신웅타워 등 도산대로 일대, 강남역 이즈타워·역삼동 아이타워 등 테헤란로 일대에 세로형 전광판이 주로 설치돼 있다. 사무용 고층 건물이 많은 광화문,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홍대 입구에도 최근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전광판 업체 삼익전자공업 관계자는 “가로형은 이미지가 넓게 퍼지는 느낌이 강한 반면 세로형은 폭이 좁고 길어 집중 효과와 가시성이 좋다”며 “이 때문에 제품을 부각해 보여줘야 하는 광고주가 선호한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시대에 명품 소비가 늘면서 명품 광고가 늘었다”며 “럭셔리 브랜드들이 세로 이미지로 된 잡지 광고에 익숙하기 때문에 전광판 영상 광고도 세로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현경 국장은 “세로형 옥외 광고 전광판 대부분이 과거 가로형보다 크다. 아무래도 광고주들은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고주에겐 독특한 형태로 인한 주목도뿐만 아니라 최신 전광판의 선명한 화질도 이점이다. 삼익전자 관계자는 “LED 해상도는 LED 소자 간격이 좁을수록 높다”며 “최신 세로형 LED 전광판에 들어가는 소자 간격은 대개 10mm 정도로 이전보다 촘촘해져 그만큼 선명하다”고 했다.
업계에선 앞으로 더 다양한 비율의 전광판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 우창훈 대표는 “지금까지 가로형만 있다가 세로형이 나오니 시선을 끄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면적 제한에 맞춰 세로가 아주 짧고 옆으로 매우 긴 ‘극단적 가로형’, 가로가 아주 짧고 세로가 매우 긴 ‘극단적 세로형’ 등 튀는 전광판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