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49)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를 만난다고 하니, 주변에서 여럿이 물었다. “무서운 사람 아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이었던 그가 노랗게 염색한 짧은 커트 머리에 빨간색 안경을 쓰고, 매서운 표정으로 기자회견 하는 모습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은 이 모습만 기억할지 몰라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다르다. 김 변호사는 2002년 인권 변호사 이명숙 사무실에서 시보 생활을 시작한 후, 19년째 성폭력 피해자 대리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 사건 무료 법률 지원을 많이 한 변호사 중 한 사람이다. 고려대 의대에 재학 중인 남학생 3명이 동기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 어린 시절 태권도 도장에 다니던 여성들이 사범에게 성폭행당한 일을 성인이 돼 폭로한 ‘태권도 미투’ 변호 등을 맡았다.
지난해 박 전 시장 피해자를 대리한 후 그의 이런 이력은 비난 대상이 됐다. ‘성에 관한 최고 정보통’이라며 ‘국성(性)원장’이라 수군거렸고, 그를 ‘마녀’라고도 했다. 한 시민 단체는 그가 박 전 시장 피해자를 설득해 사건을 왜곡했다며 무고 및 무고 교사 혐의로 작년 8월 경찰청에 고발했다. 작년 연말 가족과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때, 그의 남편은 세쌍둥이 아들들을 앞에 두고 말했다. “엄마가 올해 호랑이 입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왔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이틀 뒤인 9일, 서울 서초동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노란색 머리가 반백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피해자의 문제 제기 이후 박 시장 지지자, 민주당 의원들의 2차 가해가 계속 있었다”며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건 그들의 행위가 잘못됐다는 사회적 심판 아니겠느냐”고 했다.
◇노랑 대가리? 흰머리 지우려 탈색한 것
–머리 색이 달라졌다.
“이게 원래 내 머리 색이다. 재작년부터 흰머리가 너무 많이 나서, 까맣게 염색해도 일주일만 지나면 귀밑 머리가 하얗게 올라왔다. 미용실 원장님께 아예 흰머리 나도 티 안 나게 바꿔달라고 했더니, 탈색해주셨다. 덕분에 작년에 ‘노랑 대가리’라고 비난 많이 받았다.”
–공격 수위가 상당했다. 무섭지 않았나.
“박 시장 사건 이후 다른 사건 의뢰인과 재판하러 가는데, 법원 의자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들이 ‘김재련 아니야? 저 미친 X’이라고 하더라. ‘노랑 대가리 자살시켜야 한다’고 글 쓴 사람은 검도장 관장이었다. 박 전 시장을 지지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보다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행동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대리인으로 나왔을 때도 공격받았다.
“지금은 내가 음모를 가지고 피해자를 교사(敎唆)한다고 하는데, 그땐 내 행적에 비춰봤을 때 미투를 한 현직 검사를 대리하는 게 ‘염치없다’고 했다. 두 사건 모두 위력 성추행에 의한 것이고, 피해자 신분은 공무원이며, 대리인도 같은데 반응이 판이했다. 가해자가 어느 진영에 있는지에 따라 인권, 성폭력에 관한 문제조차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가, 과거 이력 논란 끝에 일주일 만에 사퇴했다. 서 검사와는 이화여대 법대 동기생이자 친구다.
–문제가 된 과거는 뭐였나.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으로 일했고,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이사였다는 점에서 ‘적폐’로 몰렸다.”
–적폐라기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성 단체(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일하지 않나.
“그러니 얼마나 촌스러운가. 어떤 사람들은 그 두 단체에 전화해서 ‘당신들이 김재련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항의한다. 그 두 단체는 문제가 없고, 나의 어떤 꼬드김에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그 두 단체는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경험과 오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생전 박 전 시장과 인연을 맺었던 분들도 있다.”
–여가부는 어떻게 가게 됐나.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4대 악 척결’에 성폭력·가정폭력이 포함됐고, 여가부 권익증진국이 주무 부서였다. 그 당시(2013년) 내가 성폭력 피해자 무료 법률 지원을 굉장히 활발히 하고 있었다. 이런 전문성을 정책 부서에서 펼쳐보고 싶은 생각으로 응모했고, 개방직 공모에서 채용됐다.”
–화해치유재단 이사로도 활동했다. 재단 설립 배경이 된 2015년 한·일 합의는 사과의 진정성, 피해자 배제 논란 등이 있었다.
“화해치유재단은 한·일 합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양국의 책임 있는 사람이 이행 조치를 취해서, 할머니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자는 데서 나왔다. 처음엔 이사들이 너무 보수적일 수 있으니 나라도 쓴소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합류했는데, 의외로 참여한 분들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출범 초부터 너무 많은 공격이 있다 보니, 할머니들에게 배상금 지급하는 업무 외의 것은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바뀌었고 해산했다.”
–위안부 문제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여가부에서 일할 때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이었다. 재직하는 동안 주말 등을 이용해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을 모두 만나 뵀다. 자부하건대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가장 적극적인 정책을 폈던 사람일 거다.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시나리오 공모전을 통해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지원했다. 당시 할머니들을 뵙고 느낀 건 할머니들은 위안소에 끌려갈 때는 물론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나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진영 논리에 따라 이용당한다는 점이었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들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나서지 않으려 했고, 시민 단체는 성역화돼 감히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결국 작년 5월 이용수 할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시 대표의 기부금 회계 부정 등을 지적하면서 “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고 폭로했다.
–박 전 시장 사건 때도 누구보다 피해자 쪽에 설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을 썼다.
“권력을 갖게 됐을 때는 내가 그 권력을 왜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다 그 자리에 가게 됐는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성찰해야 한다. 남인순 의원은 여성 권익을 위해 활동해왔고, 그게 자산이 돼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 사람이 법에도 없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쓴 거다. 진선미 의원은 2018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통과될 때 여가부 장관이었다. 누구보다 그 법의 내용을 잘 알 텐데도 그랬다. 고민정 의원도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만큼 그 문제에 대한 민감도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아야 했다.”
–남 의원은 피소 사실을 유출한 당사자로도 지목됐다.
“그와 관련해 피해자가 남인순 의원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으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남 의원은 인권위 발표 이후에야 페이스북에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피해자에게 사과한다고 했으면 피해자에게 사과해야지 왜 소셜미디어에 올리나? 그건 정치적 퍼포먼스지 사과가 아니다.”
◇“박원순이 말해도 믿지 않을 것”
지난 1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조사한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직권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 결정문에는 밤 9시가 넘은 시각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혼자 있냐’ ‘너네 집에 갈까’ 등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고, 러닝셔츠를 입은 셀카 사진과 함께 ‘향기 좋아, 킁킁’ 같은 메시지를 보낸 것을 피해자가 ‘우려된다’며 제3자에게 보여줬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인권위 결정문이 나왔는데도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일방적인 진술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고인이 돌아오셔서 직접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다’고. 성폭력 여부는 사실 영역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위력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은 매우 의미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물론 피해자가 진술한다고 해서 그 진술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의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박 전 시장 사건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피해자의 사생활을 이렇게까지 까발려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나.
“다른 사건은 부정하는 피의자가 있으면 그 사람이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만 반박하면 된다. 박 전 시장 사건은 피고소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행위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생활이 담긴 모든 자료를 제공해야만 했다. 인권위 결정문에도 ‘피진정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의 일이라 피해자 진술을 더 엄격히 판단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일부 서울 시청 직원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피해자는 똑똑하고 성실하고 대인 관계가 좋은 친구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걔 밝게 열심히 했는데 무슨 피해를 봤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박제돼 있다. 피해 봤다고 골방에 처박혀서 울고 있어야 하나? 직장에서 성희롱당했다고 바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야만 피해자로 인정받는 건가.”
–선거 기간 ‘박원순은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원순은 내 롤모델'(민주당 우상호 서울시장 경선 후보) 등 2차 가해가 극심했다.
“성폭력은 정말 형편없는 사람만 저지르는 게 아니다. 사회생활을 그럴듯하게 하고, 업적을 많이 쌓았더라도 가해자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박 전 시장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추후 이뤄지겠지만, 적어도 보궐선거를 하게 된 이유는 그의 과(過) 때문이다. 그런데 보궐선거를 치르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청렴했다’고 뭉뚱그려 얘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최소한 ‘이런 과가 있지만 공에 대해 평가해주자’고 해야 했다.”
–박 전 시장 발인 때 기자회견을 해서 비난받았다.
“서울 시장이 갑자기 사망했다. 피해자가 고소한 다음 날 그랬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 조사를 받게 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하는데, 가해자의 여러 가지 사정까지 다 고려해야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발인 날에 했느냐고 하는데, 그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 기자회견을 하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당시 장례를 5일간 서울시장(葬)으로 했는데, 10일장 하면 10일까지 있어야 하고 100일장 하면 100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피해자가 오세훈 시장과 만나 업무 복귀에 대해 논의했다고 들었다. 피해자가 바라는 건 뭔가.
“이런 피해가 없던 때처럼 생활하는 것. 평범한 젊은 청년으로서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이번 주말에는 뭐 할까 고민하는 것. 피해자가 평범한 근로자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 위력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알린 후에도 안전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지금도 위력 성폭력으로 숨죽인 채 일하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 낼 수 있다.”
◇“엄마가 아팠으면 좋겠어···기자회견 안 가게”
김 변호사 사무실에는 예상치 못한 두 가지가 있었다. 곳곳에 놓인 아이들 사진과 그림. 그는 아들 세쌍둥이 엄마다. 아이들 얘기 할 때 가장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밝아졌다.
–아들 세쌍둥이라니, 키우기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올해 중1이 됐다. 세월의 힘으로 키우고 있다(웃음).”
–아이들은 엄마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나?
“엄마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까지 다 안다. 한번은 기자회견 준비한다고 대책위랑 회의하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둘째가 안 자고 있더라. 그러더니 ‘엄마가 내일 아팠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럼 기자회견 안 갈 수도 있지 않냐고. 아이들이 주변에서 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얘기해주면, 그런 주장이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 보게 한다.”
–아이들 반응은?
“‘엄마가 변호사니까 도와달라는 피해자를 도와주는 게 맞는 거 아냐?’ 그런다. 엄마가 무고 교사범으로 고발당했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피해자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더라(웃음).”
–사무실 곳곳에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리는 재주는 없는데, 보는 건 좋아한다. 그림이 주는 에너지가 참 큰 것 같다. 쉴 때 그림 보러 많이 다녔는데, 요즘은 시간이 없다.”
–세간에서 보는 이미지와 다르다.
“사법연수원 시절엔 오락부장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관현악부 활동도 했고. 큰북 쳤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플루트 했다(웃음). 코로나 전에는 애들 친구 엄마들이랑 노래방도 많이 갔다. 요즘 애창곡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다. 가사가 너무 좋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내 삶에 대한 노래 같다.”
–성폭력 피해자 변호를 19년째 해온 이유가 있나.
“변호사로서 맡은 사건이 잘되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보람 있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하면서 ‘내가 변호사여서 피해자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해 훨씬 더 많이 힘을 얻고 상처를 치유한다고 믿는다. 피해자도 안다. 오래전 단둘이 있을 때 있던 사건이고 객관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또는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누가 내 가슴 만진다고 해서 옷에 지문이 남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해자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맘속에 두면 병이 되니까 피해자가 만나는 사람이 변호사다. 그런 피해자에게 힘을 주고 같이 가는 과정이 나한테도 에너지가 됐다.”
–페이스북에 ‘그들이 침 튀기며, 눈 부릅뜨며 내뱉는 정의·공정·적폐·인권 이런 단어들이 그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썼더라.
“공정, 인권을 주장하면서 정의로워야 한다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기실은 더 적폐 같고, 반인권적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외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속은 구린내가 난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인권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의로우면 얼마나 정의롭고, 인권 감수성이 풍부하면 얼마나 풍부하겠나.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위치에서 내 할 일 제대로 하면 그게 정의고 인권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