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공원에 실종됐다 사망한 채 발견된 의대생 손정민씨 사건. 의혹을 풀어줄 것으로 꼽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휴대전화다. 친구 A씨의 사라진 휴대전화에 사건의 실마리가 담겨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A씨는 한강 일대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진한 회색 아이폰8)를 분실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민간잠수사들이 A씨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한강물에 뛰어들었고, 건져 올린 휴대전화는 ‘아이폰 10’ ‘아이폰 8’ ‘갤럭시 S20’ 등 세 대. 그러나 모두 A씨의 휴대전화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휴대전화 단말기에는 제조사와 모델, 국적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고유식별번호(IMEI)가 있는데, 경찰은 이를 통해 A씨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한강에 세 대의 휴대전화를 버린 진짜 주인들이다. 이들 휴대전화는 발견 당시 액정이 깨져 있었는데, 데이터 등 휴대전화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기 위해 고의로 파손한 뒤, 한강에 던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은 “세 대의 휴대전화가 모두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디지털 포렌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만약 해당 휴대전화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난다면 누군가에게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는 셈이다.
수사기관과 보안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휴대전화 복구의 열쇠는 내장된 메모리칩이다. 가로세로 1cm 정도 크기의 메모리칩에 모든 정보가 담기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메모리칩만 손상되지 않으면 과거 삭제한 자료를 복구할 수 있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반드시 휴대전화 기기를 켤 수 있어야 한다. 전화가 켜지지 않으면 메모리칩이 아무리 멀쩡해도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휴대전화가 켜지지 않아도 메모리칩만 살아있으면 디지털 포렌식 방식을 써서 자료를 복구할 수 있었다. 삼성 갤럭시 기종의 경우 대체로 2016년 출시된 S7 이전 모델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안을 강화하는 추세에 맞춰 메모리칩 내에 있는 데이터를 암호화해 저장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휴대전화가 켜지지 않을 경우 암호를 풀어낼 수 없게 됐다. 즉 메모리칩 자체만으로는 디지털 포렌식 방식을 써도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데이터복구업체 ‘더컴즈’ 관계자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보안 강화 기술을 만들어내면, 우리 같은 보안업체는 이를 풀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며 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는 어떤 경우에 작동이 불가능해질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망치 등으로 심하게 내리쳐서 부수는 경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휴대전화는 반도체 부품이 내장된 정밀 전자기기이므로 깨서 부수면 정상적인 작동이 어렵다”고 했다. 다만 한 보안업체 관계자는 “완전 박살 난 것처럼 보이더라도 살아날 수 있다. 완전히 휴대전화를 없애고 싶다면 파쇄하는 기계에 밀어 넣어 흔적도 없게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강처럼 물에 잠겨 있다 발견된 경우 살아날 수 있느냐도 관심사다. 과거 휴대전화는 방수 기능이 없어 조금만 물이 들어가도 완전히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휴대전화에 방수(삼성전자 2016년 출시된 갤럭시 S7부터) 기능이 포함됐다. 현재 삼성과 애플이 적용하는 방수 기술(IP68)은 ‘깨끗한 물에, 1.5m 깊이로, 30분간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수준이다. 다만 휴대전화에 금이 생긴 정도와 수질, 수심의 차이 등 환경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린다. 경찰 관계자는 “최대 석 달 동안 물에 있었던 휴대전화도 살려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휴대전화를 바닷물에 빠트리는 경우, 부식이 빨리 진행돼 복구가 더 어렵다고 한다. 다만 바닷물 진흙 안에 처박히면 부식이 늦어져 살아날 가능성은 조금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휴대전화를 박살 내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된다는 얘기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엔 휴대전화에 배터리가 합체돼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배터리가 붙어 있으면 과전류가 흘러 손상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일각에서는 휴대전화를 교체하거나 중고로 팔기 위해 초기화하더라도 디지털 포렌식을 하면 데이터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한다. 이에 대해 수사기관과 보안업체 관계자 모두 “휴대전화가 완전히 초기화되면, 현재의 기술로는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우고 싶었던 데이터의 흔적이 남게 돼 디지털 포렌식으로 해당 데이터를 살릴 수 있다. 보안업체 관계자는 “데이터를 완전히 없애고 싶으면 휴대전화 초기화를 몇 차례 완벽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