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주말뉴스부장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철도원’을 최근 다시 보았습니다. 이번 주 1~2면에 소개한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일본 국민 배우로 불리는 다카구라 겐이, 2대째 철도원으로 살아가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60대 남자를 연기합니다.

그는 “끝없이 이어진 철로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는 기차처럼 씩씩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그러나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결혼 17년 만에 얻은 딸이 열병으로 죽어갈 때에도, 병이 깊어진 아내가 소도시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교대할 역무원이 없다”며 기차역을 지킵니다. 딸과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묵묵히 자기 사명을 다하지만, 어느 날 철도 도시화에 따라 시골 노선들을 폐쇄한다는 통지가 날아듭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래서 섬뜩합니다. 반듯한 제복의 주인공이 매일 아침저녁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향해 자랑스럽게 흔들던 붉은 깃발이 흰 눈 위에 핏물처럼 버려져 있고, 그 옆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으나 정작 가족과의 행복은 누리지 못했던 산업화 세대 가장들의 쓸쓸한 말년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혀 눈시울이 뜨거워졌지요.

소설을 쓴 아사다 지로가 “돈이 생기면 바로 써야 한다”고 호방하게 답한 대목에서 웃음과 동시에 슬픔이 느껴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공부도, 돈벌이에도 때가 있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놀고 여행하며 웃을 수 있는 때도 잠시뿐일 테니까요.

오늘 첫 원고를 선보인 김동규 교수의 ‘나는 꼰대로소이다’도 더 늦기 전에 틀에 박힌 삶과 생각에서 탈출해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는 ‘꼰대’들의 즐거운 반란으로 읽힙니다. 3면에 ‘YJ 리더십’으로 소개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50대에 이미 반란을 시작한 듯 보입니다. ‘유머’와 ‘자기 낮춤’을 앞세운 그의 인스타그램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할 만큼 마케팅 효과가 대단하다니 매우 전략적인 경영인 같습니다.

즐겨 듣는 음악 가운데 하나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입니다. 쇼팽이 열아홉 살에 쓴 곡을 88세의 거장이 연주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뭉클합니다. 화려한 표정과 제스처로 감정을 먼저 드러내는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달리 이 노장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음 한 음에서 인생을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배어납니다. 비평가들은 “그는 모든 음악을 처음 연주하듯이 연주한다”고 했던가요. 아사다 지로는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하다”고 했더군요. 어쩌면 꼰대와 거장은 한 끗 차이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