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라인 텍스트로만 간신히 제정신 유지 중이고 오프라인 자아는 갈 지(之) 자로 걷고 있음. 정신과 신체의 괴리가 가슴 아프다” “온라인 자아 비대증 치료제는 언제 나오나” “우리 인생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자아가 대신 살아주는 것” “오프라인에서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온라인 자아는 꺼놓는다”….

최근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이다. 비대면 세상이 점점 막강해지면서 ‘온라인 자아(디지털 세상에서 존재하는 자아)’와 ‘오프라인 자아(현실의 자아)’의 혼란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상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아(自我)의 무게중심도 디지털 세상으로 쏠리고 있다.

2021년, 과연 우리의 자아는 어떤 세상에 있는 것일까.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10~50대 2518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설문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과 함께 세대별 특성을 분석해 봤다.

일러스트=김영석

◇10~20대 70%, “온·오프라인 자아 따로 논다”

“‘실친(실제 친구)’과 ‘넷상 친구(온라인에서 사귄 친구를 일컫는 은어)’가 있어요. 오프라인에선 내성적인데 온라인에선 엄청 활발한 친구도 꽤 있어요.” 서울 용산의 모 중학교 2학년 김민서(가명)양의 얘기다.

설문 결과, 김양처럼 어린 세대일수록 온라인 자아와 오프라인 자아의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온라인 자아’와 ‘오프라인 자아’에 차이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큰 차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50대와 40대는 각각 52.9%, 47.0%였지만, 20대와 10대는 각각 30.7%, 29.8%였다. 즉, 40~50대에선 절반 가까이 두 자아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10~20대에선 70%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10대에선 ‘전혀 다르다’는 답이 25.4%로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10~30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통칭)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리셋(reset·초기화)하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하니 온라인 자아에 더 애착을 갖는다. 그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자아가 점점 벌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대 특성으로 바라봤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기 수용도’가 커진다.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쓰며 이것도 내 모습, 저것도 내 모습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자아 분열이 적은 편이다. 반면 젊은 세대는 동료나 또래 그룹의 영향이 크다. 그들에게 보이는 온라인상 모습에 신경 쓰다 보니 두 자아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이 ‘본캐’, 오프라인이 ‘부캐’?

“초·중등 때부터 온라인에서 ○○○라는 이름을 써서 온라인 자아가 너무 견고하다. 누군가 ○○○라고 불러줄 때 안정감, 만족감이 든다. 본명만큼 의미를 가져 버렸다.” MZ세대로 추정되는 한 트위터 이용자의 글이다.

“둘 중 어느 모습이 실제 모습과 가까운 ‘진짜 자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10대와 20대는 각각 22.3%, 23.8%가 ‘온라인 자아’를 꼽았다. 40대(10.8%), 50대(13.5%)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는 “PC 시대 땐 컴퓨터를 켜야만 온라인 자아와 접속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 세상이 오면서 24시간 온라인 자아에 접속하는 세상이 됐다. 자연스럽게 온라인 자아의 비중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자아가 진짜 자아와 비슷하다고 답한 응답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전 세대 평균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41.8%)가 가장 많았지만, 10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 익숙해서’(45.9%)가 제일 많았다. 이동귀 교수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태어나 온라인 세상을 맞은 세대와 달리, 태어나자마자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동시에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에겐 주 소통 무대가 온라인이다. 당연히 자아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치우친다”고 했다.

이렇게 되니, ‘가상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최재붕 교수는 ‘메타버스(metaverse)’를 주목했다. 메타버스는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디지털의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에 흡수된 형태를 말한다. 최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사람들의 자아도 헷갈린다. 과거엔 오프라인의 나를 ‘본캐(본캐릭터)’, 온라인의 나를 ‘부캐(부캐릭터)’로 단정했다. 요즘은 진짜 나는 온라인에 살고 오프라인의 내가 ‘부캐’인 전도 현상도 나타난다”고 했다. 실제로 이향은 교수는 “대학생들이 발표할 때 ‘어, 뭐지?’ 하면서 채팅식 추임새를 넣거나 인터넷 용어, 약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자아가 오프라인 자아에 투영되는 것”이라고 했다.

◇10대 인스타, 50대 네이트판에 일체감

“1980년대생 후배가 들어왔을 땐 업무 지시를 했을 때 당돌하게 면전에서 ‘싫다’고 말해 놀랐어요. 1990년대생 후배는 앞에선 알았다고 고분고분 말하는데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무섭게 욕하더군요. 어느 모습이 진짜인지 헷갈려요(웃음).” 22년 경력 대기업 팀장 이모(45)씨의 하소연이다.

설문에서 ‘오프라인에서는 하지 않을 욕설이나 비방을 온라인에서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10대와 20대는 각각 42.5%, 44,3%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30대는 28.5%, 40대는 18.3%, 50대는 15.4%가 ‘있다’고 답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간에겐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를 증명하려는 ‘연결 욕구’가 있다. 오프라인에선 속내를 드러내면 눈앞의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하다가 주저하게 되는데, 온라인은 불특정 다수와 연결은 돼 있지만 보이지 않아 훨씬 솔직하게 내면의 나를 꺼낸다. ‘감정의 셀프 기자회견’ 같은 것”이라며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 이런 특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에도 세대 차가 보였다. 10·20대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네이트 판 같은 익명 커뮤니티 순이었고, 50대는 익명 커뮤니티→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 순이었다. 이향은 교수는 “50대는 체면을 중요하게 여겨 ‘온라인 자아’를 익명으로 숨겨야 하는 것으로 본다. 반면 젊은 세대는 체면보다는 솔직하고 당당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진으로 일상을 인증하는 인스타그램이 실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온·오프라인 괴리 현상을 겪으며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가’라는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에서 내놓은 인간관을 처방전으로 삼을 수 있겠다. 히라노는 “흔들리지 않는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대인관계, 상황마다 다양하게 드러나는 자아’를 ‘분인(分人·dividual)’이라고 정의하면서 “한 명의 인간은 여러 분인의 합”이라고 했다.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자아 모두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