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실정이 깊을수록 언론(言論)은 살아나는 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에 미국 언론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 현 정권의 여러 실정이 재야의 무명 논객들을 스타로 만들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시무 7조’를 패러디한 글로 화제가 된 ‘조은산’, 네이버 카페에서 정부 정책을 재치 있게 풍자하는 ‘삼호어묵’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페이스북엔 에이드리안 킴(Adrien Kim·42)이 있다. 40대 이상 전문가들의 놀이터가 된 페이스북에서 그의 주 분야는 부동산. 맨손으로 시작해 서울 강남 아파트 2채를 보유하면서 쌓은, 그야말로 실전(實戰) 부동산 지식으로 무장했다. 철저한 시장 논리에 기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정을 매섭게 비판하면서 필명을 얻었다.
페이스북 친구 한도(5000명)는 꽉 찼고, 글이라도 읽으려고 그의 계정을 구독(follow)하는 사람만 1만7000여 명. 똑같이 페이스북을 주 활동 무대로 삼은 유명 논객 진중권씨의 구독자가 2800명 정도다. 특히 식자층이 그의 글에 열광한다. 작년 8월 서울에 집 두 채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난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해 “때려치우는 게 더 합리적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은 ‘좋아요’ 수 1500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세금 생각하면 아파트 파는 것보다 민정수석 관두는 게 낫다”는 걸 구체적인 세금 액수까지 조목조목 따져가며 꼬집은 논리와 전문성이 그의 강력한 무기다.
작년 말부터 글이 뜸해진다 싶더니 이달 초 필명으로 책 한 권을 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집이 언제나 이긴다’(기파랑). 부동산과 관련 없는 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란 배경 말고 알려진 게 없는 그를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조선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이 무명 논객을 만났다. 정장 바지에 검정 터틀넥을 받쳐 입은 말쑥한 차림의 그는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40대 회사원이었다. 본명 대신 필명처럼 쓰는 영어 이름만 공개하고,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부 비판하다가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를 원한다
-페이스북의 인기를 생각하면 책이 좀 늦게 나온 감이 있다.
“출판 제의는 몇 번 있었지만 책 낼 생각으로 글을 쓴 게 아니라서 고사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역대 최악으로 향하는 걸 보고 저 같은 사람이라도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기파랑에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
-출판사 얘길 들어보니 초고는 원고지 3300장 분량이었는데 1400장으로 줄이느라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동안 쓴 글 중에 그나마 의미가 있는 걸 모으니 그쯤 된 것 같다. 줄이기보다 예전에 쓴 글의 수치를 업데이트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아시다시피 이 정부 들어서 집값이 2~3배씩 오르지 않았나. 작년에 쓴 글에 나온 집값도 옛날얘기가 됐다.”
-작년에 큰 화제가 된 ‘문재인 정부는 사람들이 집을 갖지 않길 원한다’는 글을 첫머리에 배치했다.
“그 글에 독자들 호응도 많았고, 그때쯤 책 낼 결심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철학을 압축하는 글이란 생각도 들었고.”
-왜 이 정부는 사람들이 집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보나.
“좌파의 집권 전략이 그렇다. 사람들이 집을 갖고 재산이 생기면 그걸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보수 성향이 된다. 게다가 정부는 세입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여러 이점을 제공한다.”
-집이 없는데 어떤 이점이 있단 말인가.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전세 6억원으로 거주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전세를 살면 주택을 살 때 내는 취득세 3300만원(집값의 3.3%)은 물론, 재산세 등 온갖 세금을 면제받는다. 게다가 10억을 내야 살 수 있는 집에 6억만 내고 거주하면서 집값이 떨어져도 자기 돈은 안전하다. 반면 집주인들은 취득세, 양도세, 재산세에 더해 좋은 집에서 살면 종합부동산세까지 낸다. 그 돈으로 도로도 닦고 학교도 짓고 복지도 하는 것이다. 공동체에 세금이란 방식으로 기여하는 집주인들을 정부는 ‘다주택자' ’투기꾼'이라고 딱지를 붙여 공격한다. 이 정부는 이렇게 가진 자와 없는 자로 편을 갈라서, 없는 이들을 자기들의 표 장사에 동원한다.”
-하지만 집을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이가 많지 않은가.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원성도 높다.
“‘월급 몇 십 년 모아야 서울에 집 한 채 산다'는 식의 선동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한국 정도 되는 국가의 주요 도시에서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일반 직장인이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살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집은 원래 빚내서 사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상환 능력만 있으면 집값의 95%라도 빌려서 집을 사게 해주는 게 진짜 공정이다.”
-대출받아 집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공정?
“부모한테 물려받은 게 없어 수중에 5000만원 정도 있지만, 자기 노력으로 좋은 직업을 가져서 월 수입이 1000만원 정도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런 사람이 25년 만기로 9억5000만원을 빌리면 한 달에 500만원씩 갚으며 10억원짜리 집에서 살 수 있다. 선진국은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서울 지역 대부분을 LTV(주택담보대출 비율) 40%로 묶어놓으면 부모가 6억원을 대주지 않는 한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집을 살 수 없다.”
광주 출신 ‘동수저’의 강남 입성기
에이드리안 킴은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 생활을 하며 주거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한다. 그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반지하방에서 살았다”며 “서울 살던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서울에 집 한 채 갖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책에 대학 때 반지하방과 옥탑방을 전전했다고 썼더라. 흙수저였나.
“흙수저까진 아니었다. 부모님이 대학도 보내주고 등록금도 대주셨으니 동(銅)수저쯤 된다. 학자금 대출 끼고 사회에 나와서 마이너스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정도여야 흙수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부모님도 좀 도와드려야 했지만, 그거야 자식된 도리이니 기꺼이 했다.”
-그래도 집은 100퍼센트 본인 힘으로 마련한 것 아닌가.
“그렇진 않다. 세입자 보증금의 힘이다(웃음). 처음으로 집을 산 게 2014년이다. 그땐 빚내서 집 샀다가 ‘하우스 푸어’ 됐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직 많았을 때인데 난 거꾸로 집값이 싸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
“집 살 돈을 은행에 넣고 이자를 받거나 은행 대출을 받은 뒤 이자로 내는 돈보다, 그렇게 산 집을 월세로 놓아서 버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버는 건데 안 살 이유가 없다고 봤다.”
-그래도 첫 집을 강남에 샀다. 일반 직장인이면 엄두도 못 낼 일 같은데.
“당연히 100퍼센트 내 돈으로 산 건 아니다. 7억8000만원에 샀는데 집값 절반가량을 반월세 끼고 샀다. 그때 과천 지역도 보고 있었다. 근데 과천과 내가 보던 강남 지역 집값이 비슷하더라. 당연히 강남을 샀다(웃음).”
-그럼 4억원가량은 자기 돈이었던 것 아닌가. 책을 보니 소득의 70%를 저축하라고 썼던데.
“지금은 그렇게 못 모은다(웃음). 그땐 독신이었으니까 가능했다. 남자 혼자 살면 돈 쓸 데가 별로 없다. 차도 사면 돈 나가니까 3년 넘도록 뚜벅이 생활을 했다. 2004년 취업해서 10년간 모은 돈이 4억원쯤 됐다. 처음 집 산 뒤에도 계속 5000만원짜리 원룸 전세에 살았다. 혼자 사는데 30평대 아파트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계속 집을 사고팔면서 자산 증식을 했더라.
“처음 집 사고 1년쯤 지나서 7억8000만원에서 8억3000만원 받고 팔고, 다른 강남 지역 아파트를 8억4000만원 주고 샀다. 그때도 반월세 끼고 샀다. 요즘은 갭 투자(전세 등 세입자를 끼고 집을 사는 것)가 상식이지만 그땐 갭 투자란 개념이 희미했다. 사실 보증금을 줄이고 월세를 더 받는 식이었으니 요즘 흔히 말하는 갭투자와도 거리가 있고. 그렇게 현금을 쌓아가면서 집값이 오를 때마다 이전 집을 팔고 조금 더 비싼 집을 사는 식으로 단계 단계 밟아나갔다. 취득세 수천만원씩 꼬박꼬박 내가면서(웃음).”
-2주택자가 된 건 언제인가.
“2018년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는 걸 보니 집값이 오를 것 같더라. 한 채 더 사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원래 세를 놓고 있던 집의 보증금 비율을 좀 높여서 마련한 돈으로 샀다. 근데 지금은 다 정리하고 강남에서 최상급지 1채에 ‘몰빵’했다. 부채 없이.”
-왜 그랬나.
“절세하려고. 강남에 아파트 두 채 갖고 있으니 재산세·종부세 합쳐서 1억원 가까이 나오더라. 매년 그렇게 세금을 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재건축 중인 아파트 한 채를 샀다. 세법을 이리저리 보니 입주까진 종부세를 안 내도 되더라. 다들 말하는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탄 셈이다.”
-세무사도 안 쓰고 혼자서 그걸 다 공부한 건가.
“원래 사람은 자기 돈이 걸리면 공부를 하게 된다. 대학 때 경제·경영 쪽 수업을 들으면 세법이 가장 안 와 닿았는데 이제는 반대다(웃음). 나도 내 돈이 걸려 있으니 집을 사고팔 때마다 세법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공부했다. 그래야 돈을 한 푼이라도 아낀다.”
에이드리안 킴은 자신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스마트폰에 저장한 엑셀 파일을 확인했다. 파일에는 취업한 이후 수입 지출 내역과 집을 사고팔 때 오갔던 구체적 금액까지 빼곡히 기록돼 있었다. 그는 “사람의 두뇌에는 용량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기록해야 한다”며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구체적 숫자를 기록해두고 수시로 확인하면 자산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싼 집 산다고 벌 주는 정부
-그래도 보유한 집 값이 계속 오른 덕에 자산 증식을 했으니 문재인 정부의 수혜자 아닌가.
“그렇다. 사실 내 사정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를 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이 나라의 부동산 정책은 말이 안 된다. 세금을 보자. 선진국들 부동산 세금을 보면 보유세가 비싸면 거래세가 싸고, 거래세가 비싸면 보유세가 싸다. 한국은 보유세와 거래세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년에 이미 한국은 부동산 보유세·거래세 합산 세수가 GDP의 2.9%로 OECD 평균(1.6%)의 두 배에 가까웠다. 보유세를 올리면 거래세는 낮춰줘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둘 다 올리고 있다.”
-그래도 비싼 집에 사는 사람에게 무거운 세금 올리는 건 얼핏 공정으로 보이는데.
“같은 실거주 1주택자라도 1억원 주고 산 집이 9억원이 되면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9억원 주고 산 집이 10억원이 되면 양도세를 내야 한다. 후자가 취득세에 종부세도 냈고 시세 차익도 적은데 양도세까지 더 낸다. 그냥 비싼 집에 산다고 벌을 주는 것밖에 안 된다.”
-실거주 1주택자는 세 부담이 작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서울 강남구의 어떤 중형 아파트는 보유세가 2017년 평균 252만원에서 2021년 1192만원으로 올랐다. 그냥 살았을 뿐인데 4년 만에 세금이 4배가 된 것이다. 강남만 그런 게 아니다.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라고 하는 서울의 다른 지역도 세 부담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책을 보면 전체적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공정하지 않다는 취지로 비판하더라.
“사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 자체가 그런 불공정의 집합체다. 그 끝판왕이 청약 가점제다. 평생 전세를 살면서 부동산 관련 세금 한 푼도 안 내다가 청약 당첨 한 방에 10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몰아주는 게 지금의 청약 제도다. 집을 살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 산 사람들이 아닌, 아직 기회가 없었던 젊은 사람과 출산자들을 우선해야 한다. 조세 형평 관점에서 봐도 3억원짜리 빌라에서 5억원짜리 아파트로, 거기서 돈 모아서 10억원짜리 아파트로 밟아 나가며 세금 꼬박꼬박 낸 사람들이 오히려 청약에서 우대받아야 하는 게 공정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택 정책은 개인들이 자기 형편에 맞는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득으로 상환 능력이 증명된다면, 당장 목돈이 없는 2040 청·장년들에게도 대출받아서 원하는 집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상식이다. 지금처럼 대출을 아예 막아버리는 비상식적 관치 금융은 중단해야 한다. 세금도 집을 몇 채 가지고 있든 그 집의 가격에 대해서만 동일세율로 매기는 게 맞는다. 같은 부동산이라도 20억원짜리 한 채로 가지고 있느냐, 10억원짜리 두 채로 가지고 있느냐, 2억원짜리 10채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조세 부담이 수십 배 차이 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장 올바른 세금 정책은 초등학생도 집값과 세율만 알면 바로 세액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에이드리안 킴의 특징은 자신의 경험에서 건져 올린 ‘실전 부동산’이다. 핵심은 시장 원리와 공정. 누구든 자기 능력과 필요에 맞는 집을 살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를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정책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 명쾌한 논리야말로 많은 이가 그의 글을 기다리는 이유다.
-그래서 주식이나 코인 같은 투자는 안 하나? 오직 부동산 투자만 한다고 들었다.
“주식이나 코인에 자기 돈 3억원, 대출 3억원씩 넣고 시세 변동에 초연히 장기 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면 99% 일반인의 범주가 아닌 1% 강심장 소유자일 것이다. 하지만 집은 누구나 그렇게 산다. 심지어 자기 돈보다 훨씬 많은 전세금을 끼고도 심리적 불안감 없이 장기 가치 투자가 가능하다. 금융시장이 호황이라도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면 거기 참가한 사람 대부분이 그 과실을 누린다. 평범한 보통 사람 누구든 모두가 참여하고 그 과실을 누릴 수 있는 게 가장 건전한 투자 아닐까. 주식이나 코인처럼 남다른 재능과 기질을 요구하는 투자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 계속 글을 쓰면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게 목표?.
“지속적인 소득이 중요하다(웃음). 지금은 개인적으로 좀 바빠져서 글을 잘 못 쓰고 있지만 계속해서 쓰고 싶다. 개인적 바람은 개개인이 문재인 정부 같은 권력의 엉터리 정책에 속지 않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각자 집이 필요한 시점에, 동원할 수 있는 자기 돈에다 본인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대출을 받아서 그 돈으로 가능한 집 중에 가장 입지가 좋은 곳을 고르는 게 대원칙이다. 1주택자는 투자가 아니다. 물가 상승과 그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수단이다. 집값이 올라도 세금만 더 낸다. 1주택자가 집을 파는 건 더 좋은 집을 사려 할 때뿐이다. 생애 주기에 맞춰 그때그때 여건에 맞는 가장 좋은 집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단 생각으로 집을 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