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은 내용 면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은 매우 흡족한 듯했다. 대체 무슨 성과를 그리도 많이 낸 것일까? 대통령 방미 전에 나온 모 매체의 기사를 보자. “특히 최우선 의제로 꼽히는 백신 협력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방미를, 백신 협력을 강화하고 백신 생산의 글로벌 허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다’고 한 만큼 가시적 성과가 절실하다.”

정상회담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백신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다. 들여온 백신이 적어서 찔끔찔끔 접종하며 버텼는데, 그 결과 접종률이 세계 평균은커녕 르완다보다 낮았다. 이에 격분한 대통령이 접종 속도를 높이라고 한마디 했는데, 며칠간 기분 내다 백신 재고가 바닥나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얼마나 백신을 얻어 올지가 관심사가 된 건 당연했다.

일러스트=안병현

사정이 이랬으니 “미국과 접촉하는 한국군 55만 명에게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말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다가 아니겠지, 라며 기사를 다 훑어봐도 백신에 관한 언급은 그게 다였다. 이후 미국이 양을 늘려 총 100만 명 분의 백신이 지급됐지만, 턱없이 부족한 숫자인 건 변함이 없다. 스가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방미 때 5000만회분의 화이자 백신을 얻어왔다는데,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최소한 2000만회분 정도는 얻어왔어야 ‘선방’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반박한다. “미국은 처음부터 백신 지원이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고 있기에 우리보다 훨씬 더 못한 개도국에 우선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정상회담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방역 모범국이라 해도 영원히 마스크를 쓰고, 다섯 명 이상 모임도 하지 못한 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백신을 맞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갈 때 일정 기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백신 접종은 필수다.

5월 31일 기준 우리나라의 1차 접종률은 10.5%로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60% 이상이 접종한 이스라엘, 50% 이상의 접종률을 보이는 캐나다, 미국, 헝가리는 물론, 40% 내외의 접종률을 기록 중인 유럽 국가들과도 비교 불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방역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본의 접종률이 7.2%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지만, 방역 모범국을 자처하는 우리가 열등생을 보면서 안도할 수는 없다.

정부는 말한다. 원래 6월 말까지 1200만명이 목표인데, 지금 추세로 본다면 그 목표는 너끈히 달성할 수 있으며, 11월까지 하겠다고 했던 집단면역 달성도 충분하다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정부가 했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이왕이면 마스크를 벗는 그날을 앞당겨 달라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예컨대 지난 5월 27일 하루 동안 백신 접종자는 70만을 넘겨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우리나라의 의료 인프라를 봤을 때 하루 100만명 접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이 충분하다면 두 달 안에 전 국민 접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을 얻어내지 못한 게 아쉬운 첫째 이유다.

둘째 이유는 미국에 기대한 백신이 화이자였다는 점이다. 물론 아스트라제네카(이하 아제)도 훌륭한 백신이고, 나 역시 1차 접종을 아제로 했지만, 우리 국민 사이에서는 화이자가 가장 좋은 백신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아제 백신의 예방 효과가 70%가 못 되는 반면 화이자는 94%나 되며, 아데노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쓰는 특성상 아제는 드물긴 하지만 혈전이 생기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 그래서 유럽 여러 나라, 심지어 방역 열등국인 일본마저 아제를 안 쓰기로 한 상황, 그러니 화이자에 대한 국민의 선호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60세 이상에서 백신 예약률이 80%를 겨우 달성한 것도 우리나라의 주력 백신이 아제이기 때문 아닌가? 스가 총리가 한 것처럼 대통령이 단 얼마라도 화이자를 얻어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당연하다. 이런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 수의 2배인 1억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는데, 추가로 백신을 얻어온다면 남는 양은 어떻게 할 거냐고. 백신은 모자라는 게 문제지, 남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개도국들이 백신을 못 구해 안달 난 상황이니 그들에게 줘도 되고, 현 정권이 각별하게 챙기는 북한에 주는 것도 괜찮다. 우리가 다 맞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라면, 여기에 반대할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100만명분의 백신, 우리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얻은 성과다. 그나마도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한국이 코로나를 핑계로 한미 연합훈련을 안 하려고 해서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최소한 방역 면에서는 실패다. 정의용 장관은 원래 백신을 받을 계획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정상회담 이전에 언론이 백신 스와프에 관해 보도할 때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어야 맞는다. 게다가 정 장관은 4월 20일 국회에 나와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지 않았던가? 이래 놓고선 막상 백신을 못 구하자 방역 모범국 타령을 하고 있으니, 너무 속이 보인다.

정상회담 마지막 날 열린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같이 간 우리나라 기업 대표들을 일으켜 세운 뒤 이렇게 말했다. “오늘 오전에 거의 250억달러 정도의 투자를 삼성, SK, 현대, LG 등에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미국에 정말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바이든의 모습을 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양자 간의 회담에서는 더 많이 웃는 자가 승자! 반도체를 주고 백신을 얻는다는 백신 스와프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우리가 이긴 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신기한 점은 문 대통령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가 총리 때 나오지 않았던 메뉴인 크랩 케이크를 대접받아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매우 관대한 건 확실해 보인다. 확실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지도자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런 지도자를 둔 나라의 국민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