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NFT 광풍이다. 해외 유명 경매에서 비플(Beeple·39) 등 기존 미술계와는 거리가 먼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NFT 등록 작품들이 천문학적 금액으로 낙찰되며 세계 미술 시장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란 뜻의 NFT(Non-Fungible Token)는 누구라도 ‘데이터'의 열람과 활용은 가능하지만 그 진본성은 해당 데이터 창작자에게 있음을 인증하고자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법으로 만든 일종의 디지털 보증서다. 그리고 이 NFT 인증은 경제적 가치 문제, 더 정확히는 가상 화폐 시장과 직결돼 있다.
가상 화폐가 거래되는 디지털 세계는 애초에 모든 것이 데이터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렇다면 데이터란 뭘까. 데이터는 정보의 단위들로, 사물의 현상·사건 등에 관한 모든 것이며 컴퓨터에 저장되는 방식은 숫자·문자·기호를 넘어 사운드·그림·동영상 등으로 확장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경계와 중심은 해체되고 끝없는 연결로 이루어져, 데이터의 무단 도용과 진본성 관련 논쟁은 한동안 희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나카모토 사토시는 글로벌 금융 위기 사태로 중앙집권화한 금융 시스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고안한 이후 2009년 암호 화폐인 비트코인을 개발, 데이터의 블록화로 진본성을 증명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했다. 그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 비탈릭 부테린이 스마트 계약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NFT의 역할이 가상 화폐와 연계, 대세를 형성한 것이다.
NFT 아트 시장에 불을 지른 건 가상 화폐 시장의 큰손들이다. 시장 책정가 기준조차 없던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원본 파일을 천문학적 액수의 가상 화폐로 구입함으로써 가상 화폐와 실물 화폐의 경제적 가치가 서로 맞교환되는 현장을 센세이셔널하게 연출한 것이다. 부(富)의 축적과 이에 직결된 미술품 소장의 경제적 가치라는 두 요소가 현실계에서 가상공간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셈이다.
기존 미술계는 이 급작스러운 현상을 어떻게 주시하고 있을까? 예술적 배경과 근거가 빈약한 디지털 작품들의 고가 낙찰을 비판하면서도 새롭게 팽창하는 거대한 NFT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 성급한 시도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유명 경매 회사 크리스티는 최근 앤디 워홀 재단과 협업해 1980년대 워홀이 자기 작품을 촬영해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두었던 것들 중 5점을 NFT화해 온라인 경매에서 총합계액 43억원으로 낙찰에 성공했다. 나아가 앤디 워홀을 NFT 디지털 아트의 선각자처럼 홍보해 전문가들의 빈축을 샀다.
백남준의 1973년 작 38분짜리 비디오-오디오 파일도 NFT화해 온라인 경매에 올려졌다. 국내 대가 김환기, 박수근의 작품 이미지들도 NFT로 만들어 경매에 부쳐진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유족들이 반발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가들의 작품을 촬영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이를 NFT로 등록하면 디지털 예술 작품이 되는 걸까?
NFT가 애초 데이터의 결합으로 이뤄진 디지털 창작물들(이미지·음원·영상 등)의 무단 복제 및 위·변조를 제어해 원본성을 입증하고 원창작자에게 지식재산권을 보증하는 장치라면, 앤디 워홀·백남준·김환기·박수근 등의 이미지 파일을 NFT화해 판매하는 것은 원작에 대한 심각한 진본성 훼손이라 할 수 있다. NFT가 진본성 확증이 아니라 위작의 가짜 보증에 활용될 여지가 농후한 탓이다. 이 복제 이미지들은 그저 NFT로 등록됐을 뿐인데, 대중들로 하여금 마치 대가의 진품을 소장한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하기 때문에 시장을 어지럽히는 상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아트란 뭘까? 디지털 아트란, 디지털 파일에 ‘담긴’ 작품이 아니라 가상공간인 디지털 생태계에서 ‘탄생한’ 작품을 뜻한다. 21세기의 디지털 가상계는 현실계의 그림자가 아니라 또 다른 우주다. 따라서 NFT 디지털 아트의 의미는 현실계와 가상계의 공존에 대한 통찰 없이는 이해되기 어렵다.
아트, 즉 예술이란 창작의 행위 또는 그 결과물을 의미하는데,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 창작의 본질은 우리 머릿속 상상계가 아닌 컴퓨터 가상계에서 이뤄지는 데이터의 축적과 확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데이터에 의한 창작의 진본성을 확인하는 도구가 NFT다.
미국 유명 작가 제니 홀저는 올해 제작한 신작 NFT 비디오를 출품하며 작품 제작 기법에 ‘디지털에서 탄생했음(digital born)’이라고 표기했다.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 작동 원리를 파악해 20여년 전 이미 ‘데이터베이스 회화'를 탄생시킨 코디 최는 최근 메이저 아트페어인 홍콩 바젤에 한국 작가 최초로 이를 NFT화해 출품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의 본질이 데이터 처리를 통한 새로운 가치 생성에 있음을 깨닫고 데이터의 축적과 확장으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의 회화는 이미지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법으로 연결해 완성한 정통 디지털 회화로, 디지털 세계에서의 원본성을 증명하는 NFT 본래 취지에 최적화된 사례다.
우리는 이미 가상과 현실 세계가 공존하는 21세기 사회에 진입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 삶 곳곳에 디지털 문화가 스며들고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뛰어들 필요는 없다. NFT 디지털 아트가 대세로 나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거래량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몇몇 천문학적 액수의 경매 결과가 NFT 아트의 거래 규모에 대해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아트 시장의 수요를 노리는 집단과 구매자 집단 모두 디지털 아트의 창의성과 NFT, 그리고 가상 화폐 가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과 진통을 겪은 뒤 옥석이 가려지고 계보가 생기면서 NFT 아트 시장은 비로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