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지핀 여성 할당제 논란이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공천 과정에서의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등을 “(여성 장관 비율을 맞추기 위해 뽑힌) 할당제의 수혜자들”이라 일컬으며 문재인 정부의 ‘여성 장관 30% 공약’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대남(20대 남성)’들은 한발 더 나갔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 할당제를 폐지하고 실력으로 경쟁할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취업준비생 유모(남성·26)씨는 “지금 여성들이 어머니 세대처럼 ‘유리 천장’을 느끼는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남성들이 군 복무 때문에 사회 진출을 늦게 하는 상황에서 왜 여성 할당제가 유지돼야 하나”라고 했다. 아예 여성 과학 기술인 우대 정책을 폐지하라거나 여성만 진학 가능한 여대 약대를 폐지하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남성이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기업 사원 허모(여성·25)씨는 “여성 할당제는 여성들의 비율이 극히 낮은 일부 고위직에 한정돼 있는데, 할당제 대상도 아닌 20대 남성들이 왜 화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대남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걸까,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는 걸까.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대표가 내놓은 '여성 할당제 폐지론'이 20대 남성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한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일부 고위직에만 ‘한시적’ 운영

민간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여성 할당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권이나 국공립대·공기업 등 일부 분야에서는 여성 할당제가 유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이다. 17대 총선부터 국회의원·지방의회 의원 비례대표 후보 중 50%를 여성에게 배정하는 안이 도입됐다. 국립대의 여성 교수 확대 정책도 또 다른 ‘여성 할당제’로 꼽힌다. 교육부는 국립대의 여성 교수 비율을 2030년까지 25%로 확대하라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기업에 여성 임원을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하는 ‘여성임원할당제’도 오는 10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성별 할당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도입된 제도라는 것이다. 역대 국회 중 여성 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21대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은 57명, 19%에 불과하다. 국립대의 여성 교수 비율(17.1%·2019년 기준) 역시 같은 기간 사립대 여성 교수 비율(26.4%)보다 10%가량 낮았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성 할당제는 영구적인 제도가 아니다”라면서 “여성 의원의 비율이 30~40%까지 올라간다면 할당제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성별 선호 없이 ‘능력’만으로 선발할 경우 오히려 남성이 여성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9급 국가 공무원 합격자는 여성 57.4%, 남성 42.6%였다. 30대 기업 직원의 고용 비율 역시 여성이 빠른 속도로 남성을 추격하고 있다. 남성 직원은 1999년에서 2019년까지 20년간 38.6% 증가한 데 반해, 여성 직원은 같은 기간 95.8%나 늘었다. 전체 직원 수는 아직 남성이 더 많지만, 고용 증가 속도는 여성이 훨씬 빠르다.

여성 자원을 늘리기 위해 처음 도입된 ‘여성채용목표제(현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역시 오히려 남성을 구제하는 데 쓰이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 채용에서 한쪽 성별이 30% 이하로 떨어질 때 해당 성별 지원자를 추가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구제된 지방직 공무원은 남성 1818명, 여성 776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할당제 대신 공정 경쟁? 능력주의의 함정”

이준석 대표는 공천 할당제를 폐지하는 대신 토론이나 정책 공모전 등 ‘공정 경쟁’의 기준을 마련하자고 주장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이 대표의 공약을 “절차만으로 공정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 ‘능력주의의 함정’”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성별, 재산 등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미 지역 균형 인재 선발, 사회적 배려 대상 할당제 등이 시행되고 있는데 유독 여성 대상 정책에만 반대 여론이 심하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가 내세우는 정책이 2030 남성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도 있다. 권수현 대표는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여성 할당제나 기업의 여성 임원 할당제는 사실상 20대 청년의 삶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제도”라면서 “남성들이 고용, 주거 등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보다 여성 할당제 폐지론에만 관심을 갖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대남'들의 삶이 팍팍해진 원인은 여성이 아니라 청년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 있다는 점을 짚어주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