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GS25 가맹점주인 내가 요새 CU 때문에 울고 웃는다. CU 편의점 브랜드를 운영하는 BGF리테일 주식을 갖고 있어 그렇다. 평생 ‘재테크’라는 용어는 어디 탱크 회사 이름 정도로 알고 있던 내가 주식에 손을 대다니, 이게 다 전화 한 통에서 시작했다.
“어이, 봉 서방. 요새 금값이 겁나 오른다고 하던디, 돈 부쳐 줄텡게 금빵에 가서 얼른 금 좀 사다 놀랑가.”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연세 드신 분들은 ‘금값이 오른다’고 하면 실물로 금반지 같은 걸 사놔야 하는 줄 안다. 지식인의 목소리로 차분히 말씀드렸다. “장모님, 금을 직접 사면 세공비도 있고, 부가세 문제도 있습니다. 실물 금이 아니라 KRX나 ETF에 투자하시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시중 은행에 금 통장을 개설해 두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따 똑똑한 사위를 둬서 든든하구만’ 하는 목소리로 장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튼 돈 1000만원 줄텡게, 금 이틴지 뭔지 좀 사놓으소 잉.” 그리하여 팔자에 없던 증권회사 앱이 내 휴대폰에 깔리게 되었고, 그때부터 좌충우돌 ‘주린이(주식+어린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뭘 알아서 장모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이 아니라, 전화 통화를 하는 동시에 책상 앞 컴퓨터로 검색해 아는 체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똑똑하고 든든한 사위’ 반열에 올랐다.
여기저기 주식 광풍이다. 친구네 편의점에 놀러 갔더니 거기는 계산대 안쪽에 ‘근무 중 주식 금지’라는 메모를 써 붙여 놨더라. 한 손에 핸드 스캐너 들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 만지작거리며 근무 시간 내내 주식 차트만 들여다보고 있는 알바생들 때문에 그렇단다. 요샌 고등학생들도 주식을 한다며, 수업 시간에 “쌤은 무슨 종목 샀어요?” 하고 묻는다고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는 말했다. 그렇게 긴 한숨을 내쉬는 친구도 나랑 밥 먹는 시간 내내 식당 테이블 위에 휴대폰 올려놓고 바쁘게 매수-매도 버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 오늘 10만3000원은 찍어야 하는데, 하면서.
그때서야 상황 파악을 해보니 우리 편의점도 모든 직원이 크든 작든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다. 점장 정욱이는 상장 폐지가 예상되는 기업에 자그마치 2000만원을 집어넣어 속앓이를 하고 있었고, 알바 연정씨는 ‘십만 전자’가 6만원 할 때 이미 사놨다며 내게 지금껏 뭘 하고 살았던 거냐고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를 발견한 눈빛으로 나무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나만 바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 뒤로 나도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것이라곤 편의점뿐이라 일단 편의점 주식부터 샀다. 장모님이 금 사라고 보내주신 그 1000만원으로 그렇게. 쉿, 장모님께는 비밀이다.
이제 겨우 한 달이 되어가는데, 이거 주식 중독증이 심각하다. 일단 빨간색이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파란색이 싫어졌다. 그래서 우리 편의점 파란색 간판까지 이상하게 기분 나빠진 것이다. 오전 9시에 개장하면 온종일 주식 앱만 들락거리다가 오후 3시 30분에 마감하면 앞으론 뭘 해야 할지 허전하다. 내일은 뭘 살까, 저녁 내내 그것만 궁리한다. 단타 매매로 15만 원 정도 벌었던 날에는 ‘오늘은 맛있는 점심을 먹어도 되겠다’ 뿌듯해하고, 사놓은 주식마다 파란색 숫자가 번뜩였던 날에는 또 애꿎은 편의점 간판을 쏘아보며 화풀이를 해댔다. 우리 간판, 빨강으로 바꾸면 안 될까?
어떤 날은 워런 버핏도 별것 아니었구나, 알고 보니 나는 주식 천재였어 하면서 어깨가 으쓱하고, 50만 원 정도 평가 손실을 기록한 어떤 날에는 장모님이 주신 돈 다 날려 먹고 처갓집 대문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도박이란 걸 평생 해본 적 없는데, 경마나 경륜에 미친 사람들의 심리가 과연 이런 것이로구나 싶다. 눈앞에 주식 전광판이 어른거린다. 손님이 계산을 위해 내민 소시지는 봉(棒)차트로 보이고, 쓰러진 삼각김밥은 불길하다며 ‘상승’의 삼각형으로 바로 세워놓는다. 어떤 담배 이름을 ‘예수금’으로 잘못 알아듣는다.
이쯤 해서 오해가 있을까 싶어 이야기하는데, 그렇다고 우리 장모님이 강남 청담동 사모님이거나 그런 분 결코 아니다. 남도 섬마을에서 나고 자라, 아직도 다리가 놓이지 않은 그 섬에서 평생 미역을 따며 살고 계신 분이다. 건네주신 천만 원은 장인 몰래 감춰놓은 장모님의 전 재산이리라. 그런 시골 촌부도 금값 오른다는 뉴스 보고 사둬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요새 갈 곳 모를 돈이 춤춘다. 이번 생에 아파트 사는 일은 벌써 글렀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나만 도태되는 것 같고, 서점가를 휩쓰는 책들은 온통 돈, 돈, 돈 이야기뿐. TV를 켜면 재테크 프로그램이 떠들썩하다. 이런 세상이 과연 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다들 뭔가 불안하고 초조해 장롱 속 푼돈이라도 ‘굴려보자’는 것이다. 돈이 돈 같지 않게 되어버렸다.
아침 9시. 편의점 상품 발주 마치고 오늘도 나는 주식 시장에 들어가 개미가 된다. BGF리테일 주식은 일단 빨간색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 편의점 길 건너편에 있는, 예전에는 그토록 얄밉게 보이던 경쟁점 간판이 갈수록 이뻐 보인다. 힘내라 CU! 번창해야 돼! 혹시나 오늘 상한가 찍으면 저녁 퇴근길엔 건너편 편의점에 들러 껌이라도 한 통 사줘야겠다. 아흑, 박쥐 같은 이 신세.
작가·'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