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출연도 좋지만, 이런 인터뷰도 하면서 배워야 해. 아빠 때는 말이야, 우승하면 광화문에 있는 신문사들 다 돌며 인사했어. 기자들하고 술 먹고 퍼져서 하루 인사할 거 이틀 사흘씩 했지만. 허허!”
아버지의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됐다. 지루할 법도 한데 두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진짜? 아빠는 그때도 그놈의 술!” “야, 인마! 으허허허!”
‘농구 대통령’ 허재(56) 전 감독과 아들인 농구 선수 허웅(28·원주 DB), 허훈(26·부산 KT) 형제가 속공하며 패스하듯 빠른 속도로 말을 주고받았다. 좀처럼 기자가 대화 주도권을 ‘인터셉트(가로채기)’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눈 감고 들으면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비음 섞인 중저음이 비슷했다.
요즘 농구장 아닌 예능 방송을 장악한 ‘허 삼부자’.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 스타’로 꼽히는 왕년의 레전드는 “탈모 유전자를 물려 줬다”며 원망하는 두 아들에게 “난 원래 머리숱이 없지 탈모가 아니다”고 박박 우긴다. 형제는 ‘허당’ 아버지와 장난치면서도 “절대 넘을 수 없는 큰 산”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명성에 주눅 들 법도 한데, 구김살 없이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식들을 보며 이 가족의 매력에 빠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비결이 궁금해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에서 삼부자를 만났다. 허웅·허훈 두 선수가 비시즌 두 달간 휴식을 마치고 소속팀으로 복귀하기 직전이었다.
허씨 집안 ‘실세 감독’이라는 허재의 아내 이미수(55)씨도 섭외했지만 현장에 오진 않았다. “제가 나가면 팩트를 자꾸 말하거든요. 애 아빠가 민망해지잖아요. 방송하면서 옛날 사고 치던 이미지 싹 갈아엎고 ‘리노베이션’ 잘하고 있는데 방해되니까. 호호호호!” 전화로 만난 ‘농구 영부인’은 통화만으로도 인터뷰를 지배했다.
◇허재 아들? 웅이·훈이 아빠!
“와, 김창열 화백 물방울 그림이다!” 인터뷰 장소인 코리아나 호텔 입구에 걸린 그림을 보고 허웅이 말했다. 한국 추상화의 거장 김창열을 알아봤다. 그림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돈을 많이 벌면 언젠가 줄리언 오피(영국 유명 현대미술 작가) 그림을 꼭 사고 싶다”고 했다. 원주 숙소엔 화구도 갖다 놨다고 한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엄마 영향이 크다.
동생이 끼어들었다. “줄리언 뭐? 형은 참 신기해. 시집 읽고, 그림 그리고. 우린 되는 대로 사는 기분파인데, 그치 아빠?” ‘아빠’란 호칭이 아직 입에 붙어 있는 훈이다.
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하지만, 형제는 현재 KBL 최고 스타. 동생 허훈은 2020-21시즌 정규 리그 국내 선수 득점 1위, 어시스트 전체 1위, 5라운드 최우수 선수(MVP), 베스트5 상을 휩쓸었다. 허웅은 2년 연속 KBL 인기상을 받았다.
–’농구 대통령'이 요즘 ‘국민 시아버지’가 됐더군요.
허재(이하 재): “그러게요. ‘허재 아들’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니면 어쩌나 했는데 요즘은 내가 ‘웅이 아빠’ ‘훈이 아빠’로 불리잖아요. 애들이 제 위치에서 열심히 한 덕에 제가 묻어간다니까요. 아이돌 외모라고 방송에서도 데리고 나오라고 자꾸 그러질 않나. 재벌도 안 부럽습니다. 지금까진 ‘더 나은 인생’을 꿈꿨는데 앞으론 ‘지키는 인생’이 목표입니다.”
허웅(이하 웅): “저희가 아버지 덕을 보는 거죠. 아버지가 방송하고 있으니 우리도 출연할 수 있는 거고.”
허훈(이하 훈): “훈훈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화목한 가정의 모습인가? 헤헤.” 막내아들 애교에 아버지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삼부자가 아니라 삼형제같이 거리가 없네요. 586과 밀레니얼 세대 부자지간인데, 소통 비결이라도?
재: “애들이 나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이해 폭이 넓죠. 나는 얘네 나이에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애들은 아버지가 자기 나이에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게 되니까. 웅이는 곧 서른에 접어드니 기술 농구를 해야 할 때고, 훈이는 힘으로 하는 농구를 할 때고.” 딱 지금 큰아들 나이인 스물여덟에 허재는 아빠가 됐고, 실업팀 기아자동차 소속으로 한국 농구의 전설을 쓰고 있었다.
웅: “저희 아빠, 얼핏 보면 꼰대 같죠? 전혀 안 그래요. 국가대표팀 동료 중에 아빠가 감독일 때가 제일 좋았다면서, 너희 아버지 어디 감독 가면 미리 알려달라는 친구도 있다니까요.”
훈: “아빠가 체육관 안에서만 호랑이지, 밖에선 터치를 안 하세요.”
재: “내가 농구장에서만 감독이지, 선수들 인생을 다 감독할 순 없잖아요. 성인인데 알아서 해야지. 연애도 할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고. 단, 운동하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게 내 신조예요.”
–허재 하면 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술도 농구 연습. 술잔 꺾는 게 농구 스냅과 비슷하다”고 했더라고요.
재: “뭐, 폭탄주는 3점슛, 소주는 작으니까 골밑슛 이런 거였겠죠(웃음). 예능도 술김에 오케이 했는데 일이 커졌다니까요.”
어느 비 오는 날, ‘뭉쳐야 찬다’ 제작진이 그를 설득하러 왔다.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농구 대통령이 웬 축구냐, 농구면 몰라도”라고 하자, 제작진이 “축구 다음에 꼭 농구도 하겠다”고 했다. “술김에 내가 뱉은 말에 내 발목 잡힌 거지.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나 봤지 예능은 쳐다도 안 보던 내가.” 술 ‘덕’에 제2의 인생 탄탄대로가 개통됐다. 방송 2년 만에 예능 프로 10여개를 꿰찼다.
“능청스럽게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고 아내가 칭찬인지 핀잔인지 애매한 평가를 했다. “뭔 소리. 원래 성격 그대로라니까.” ‘연기의 달인’이 항변했다.
◇삐삐도 없던 우리와 요즘 세대는 달라
–자식들의 예능 출연이 걱정되진 않습니까.
재: “요즘은 선수들도 자기 PR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농구 홍보에도 도움이 되고요. 유튜브도 긍정적으로 봐요. 삐삐도 없던 때, 술밖에 놀 게 없던 우리 때하곤 다르죠. 예전엔 카메라 들이대고 ‘오늘 승리의 기분이 어떻습니까’ 물으면 ‘모든 멤버가 합심해 뛴 덕에 승리할 수 있어 기쁩니다’라고 기계적으로 말했잖아요. 질문도, 대답도 틀에 박혀 있었어요. 요새 선수들은 진짜 달라요. 얘네 봐요. 서로 자기가 잘생겼다고 우기질 않나. 자기 표현 시대잖아요.”
세상이 달라졌다는 데는 아내도 공감했다. “시어머니가 늘 남편더러 ‘쟤는 말이 너무 많아 문제’라고 했어요. 저도 애 아빠한테 말수 좀 줄이라고 잔소리했는데, 웬걸, 이제 거침없이 말하는 게 먹히는 세상이 온 거야.”
형제는 작년에 유튜브도 개설했다. 채널명은 ‘코삼부자’. 세 부자가 모두 코가 커서 지은 이름이다.
훈: “시즌 아닐 때 주로 하는데, 농구에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억울한 건 고생은 내가 다 하는데, 형이 얼굴 담당이라는 사실. 아빠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 자꾸 피하시네요. 정 협조를 안 하시면 우리 집 막내 코코(반려견)라도 끼워넣어야지. 헤헤.”
–농구장에서 허재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안 돌아올 건가요?
재: “돌아갈지 안 돌아갈지는 내 선택이 아니에요. 구단에서 필요로 해야죠. 그런데 어느새 팀에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어요. 내가 고분고분 말 듣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원조 ‘바짓바람’ , 아버지 사랑 이제 이해
세 부자를 보고 있으니, 허재 아버지 허준(2010년 작고)씨가 생각났다. 그는 1980~90년대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씨 같은 존재였다. 아들 체력 관리를 위해 뱀탕을 먹여, 허재가 선수 시절 20여년간 먹은 뱀이 1만 마리가 넘는다는 얘기가 스포츠계의 전설처럼 내려온다.
–아버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유명하지요.
재: “아버지가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실향민이셨어요. 방첩부대에서 오래 일하시다 퇴역하신 뒤로 2남 2녀 중 막둥이인 저한테 모든 걸 바치셨죠. 중학교 때 하루는 집에 가보니 마당 한가운데 농구대를 세워두셨더라고요. 나무도 많고 잔디도 있어 연습을 못 하겠다니까 다음 날 거짓말처럼 잔디를 밀어버리고 나무도 몽땅 베 놓으셨어요. 공 받아줄 사람 없다고 하니 어머니까지 전 가족을 동원해 공을 받게 하고…. 제 인생 50%는 아버지께서 만든 겁니다.” 어머니(92)는 현재 요양병원에 계신다. “치매를 앓고 계신데 식구 중 나만 알아보세요. 얼마 전 갔더니 우리 막둥이 왔구나 하시더라고. 휴….”
웅: “역시, 할아버지의 빅 픽처가 있었군요. 박세리 선수도, 손흥민 선수도 그렇고 레전드 뒤엔 레전드 부모가 있네요.”
재: “할아버지가 ‘바짓바람’ 원조셨다(웃음). 아버지가 손자들 농구 한다고 무척 좋아하셨어요. 이놈들 잘 뛴 날엔 기분 좋아서 장충동 족발집 가서 소주 드시곤 하셨죠.”
–자식 길러보니 그때 아버지 마음을 알겠던가요?
재: “내가 길러본 적이 없어서. 허허! 웅이 엄마가 다 했죠. 아내 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난 내 인생 살기 바빠 가족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저한테 삶을 몽땅 바친 것처럼 애 엄마가 자기 삶을 애들하고 바꾼 거지.” 그 얘기를 전화로 전해주자 이미수씨가 직격탄을 날렸다. “자식은 내가 다 키워놨는데 방송 나가서 생색은 왜 자기가 다 내는지 몰라. 푸하하하!”
–아버지처럼 돼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까.
재: “하고 싶어도 아버지 근처에도 못 갑니다. 그저 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을 애들한테 돌려줘야겠단 마음은 있어요.”
◇아버지 그늘? 나는 나!
–원래 농구 시킬 마음이 없었다고요?
재: “애들이 어릴 때부터 공부를 워낙 잘하고 반장도 도맡아가며 해서 공부를 할 줄 알았어요. 2004년에 내가 은퇴하고 큰애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 LA로 연수를 갔어요. 애들이 학교에서 농구를 했는데 실력이 발군인 거야. 주말에 내가 좀 가르쳤더니 동네를 휩쓸어 버리네.” 아내가 말을 보탰다. “애 아빠 목소리가 좀 커요? 왕왕 소리지르니 사람들이 아동 학대인 줄 알고 다 쳐다보는 거예요.” 웅이 영어 이름은 마이클, 훈이는 제임스였다. 짓고 보니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큰아들이 대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가 극성 엄마예요. 2년치 선행까지 다 시켜서 미국에 갔는데 갑자기 농구를 하겠다니. 애 아빠 반대도 심했어요. 공부엔 2등, 3등도 있지만 승부의 세계엔 1등만 있다면서. 그런데 첫째 고집이 말도 못 해요.”
‘허모삼천지교’가 시작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큰아이를 허재의 모교 용산중으로 진학시켜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켰다. 미국 베벌리 힐스에서 살다가 용산중 교문에서 15m 떨어진 20평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개미 득실거리는 컨테이너 박스 숙소를 가니 기가 막히더군요. 그제야 열악한 환경에서 거칠게 운동한 남편과 뒷바라지한 시부모님을 이해하게 됐어요.”
운동 신경이 남달랐던 두 살 터울 동생도 함께 농구를 시작했다. 형제가 나란히 용산중·고·연세대를 거쳤다. “애 아빠 보니 운동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해서 다른 쪽으론 젬병인 거예요. 운동선수는 머리가 텅 비어 있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우리 아들들은 그렇게 안 키우겠다고 작정했죠. 농구 하면서도 영어, 수학 과외를 시켰죠. 어느 날 큰애가 그러더군요. 엄마, 운동이든 공부든 시키려면 하나만 시키라고(웃음).”
미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 큰아들에게 다혈질 아버지는 외쳤다. “인마, 이따위로 하려면 당장 관둬!” 정신이 번쩍 든 첫째는 그날 이후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운동했다. 이미수씨는 때로 우산 장수, 짚신 장수 어머니 심정이 된다. “작년에 훈이가 MVP를 탔는데, 하필이면 웅이가 그 무렵 부상을 당했어요. 하루는 변기에 벌건 물감 자국이 있는 거야. 속상한 웅이가 재활하면서 빨간 물감으로 그림 그리면서 스트레스 푼 거지. 둘이 은근 경쟁 관계라 자존심 안 다치게 신경 써야 해요. 잔소리도 웬만하면 맨투맨으로! 앞에서 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허웅+허훈=허재?
–자식들이 아버지 명성에 중압감 느낄 만도 한데 참 밝습니다.
재: “솔직히 농구 실력으로만 봐선 나만큼은 못 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나를 넘어서는 게 아니에요. 얘네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꾸준히 해서 자기만의 실력을 기르는 게 더 값진 길입니다. 통합적으로 허재보다 낫다가 아니라, 슛은 허웅이 허재보다 낫고 드리블은 허훈이 더 낫다는 식으로요.”
엄마 팔은 남편 아닌 자식에게로 굽었다. “시아버님께서 양문의(허재 용산중·고 시절 은사) 감독님하고 훈이 중학교 때 시합하는 걸 보고 ‘허재보다 낫다’고 하셨대요. 양 감독님은 ‘웅이 훈이 합치면 딱 허재’라고 하셨고요. 슛은 웅이가, 돌파는 훈이가 아빠랑 비슷하다고. 그런데 남편은 키가 188cm잖아요. 훈이가 키(180cm)가 190cm였으면 NBA 갔을 거예요. 하도 조잘조잘대서 키가 안 컸지 뭐야. 말만 안 해도 10cm는 컸을 텐데. 하하! 그래도 키만 멀대처럼 커서 농구 못하는 애도 얼마나 많냐며 자신감 팍팍 줬죠. 아빠 때문에 힘들까 봐 ‘농구 대통령 허재는 잊어라. 너희는 너희’라고 주입했어요.”
허웅이 2014년 KBL드래프트 1라운드에 참여했을 때였다. 애초 3순위 지명이 예상됐지만, 순위가 밀렸다. 운명처럼 KCC 감독이던 아버지 허재가 4순위 지명권을 갖게 됐다. 마침 큰아들 포지션인 슈팅 가드가 필요한 상황. 아버지는 고민 끝에 아들 대신 다른 선수를 지명했고, 아들은 5순위로 원주 DB로 갔다.
성난 표정의 아내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허 감독은 “농구 인생 최대 위기였다. 이혼 직전까지 갔다”며 웃었다. 아내는 “당시엔 남편이 왜 저러나 싶어 표정 관리를 못 했는데, 뒤돌아서니 드래프트에서 탈락해 흐느끼는 엄마들이 보이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운 좋은 사람이라며 아이를 다독였다”고 했다.
–허웅 선수가 지명된 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 허웅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제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라고 했죠?
웅: “전날 드래프트 참여하는 대학 동기들하고 머리 맞대고 소감문을 썼어요. 맴도는 단어가 ‘아버지 그늘’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들었으니. 아버지는 그 시대의 최고였고, 나는 우리 시대의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아버지 이후 농구인 중 허재의 그늘을 벗어난 사람이 누가 있나요? 저희 형제만 허재를 못 뛰어넘은 게 아니잖아요. 하하!”
재: “애들 성적이 잘 나오니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할 때 아들 둘을 다 뽑았다고 욕 진탕 얻어먹었지 않습니까? 그때 나를 욕했던 사람들이 이제 허재 선택이 맞았구나 인정할 겁니다.”
훈: “그래도 셋이 같이하는 건 그게 마지막인 걸로. 하하!”
–아버지에게 고마운 점이 있다면?
훈: “음, 좋은 DNA?”
–아버지에게 배우고 싶은 건 뭔가요.
웅: “무한 긍정주의. 어떤 상황에서도 아버진 낙천적이세요.”
훈: “당당함. 예전에 중국 기자들이 어이없는 질문을 했을 때 박차고 나가셨잖아요. 다시 봐도, 으아, 정말 멋지지 않나요?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때 대표팀 감독이던 허재는 중국 취재진이 “중국 국가가 울릴 때 한국 선수들이 왜 움직였냐”는 둥 무례한 질문을 하자,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최근 방송에서 그는 당시 중국 공안에 끌려갔다고 고백했다).”
–아버지, 감독, 선수로서 허재는 어떤 사람인가요?
웅: “아버지로선 친구 같고, 감독으로선 카리스마 짱, 선수로선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레전드!”
이미수씨는 “결국 웅이 아빠가 열심히 벌어준 덕에 제가 자식들한테 물심양면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전 애들이 서장훈 선수처럼 야무졌으면 좋겠어요. 재테크도 잘하고, 자기 관리 잘하는. 애 아빤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노(No)’를 못 한다니까.” 아빠의 기질을 고스란히 받은 막둥이가 말했다. “서장훈 선배님, 훌륭하시죠. 그래도 내 롤모델은 허! 재!”
달콤했던 예능 외출은 끝. 형제는 며칠 뒤 소속팀으로 복귀한다고 했다. “군대 가는 심정일 거야. 이번엔 후유증이 더 클지 몰라.” 아버지 말에 매사 차분한 장남 웅이 말했다. “예능은 저희한텐 부수적인 거예요. 저나 훈이나 삶의 중심은 언제나 농구예요.” 그 말을 듣던 아버지가 맞장구쳤다. “그럼 그럼. 운동 잘하면 방송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구나 하지만, 운동 못하면 방송 나가서 주접떨더니 실력 떨어졌단 소리 듣게 되는 거야. 정신 바짝 차려야지.”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밑바닥 드러낸 접시가 쌓였고, 퍼런 소주병이 테이블을 채워갔다. “잠깐!” 허재가 두 아들에게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너희만 입이냐. 엄마도 뭐 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뭐라도 좀 싸갈까?” 그래도 아내 챙기는 건 남편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