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고양이 ‘나루’를 키우는 어단경(44)씨는 요즘 고양이어 번역기 ‘미야오톡’으로 나루와 소통한다. ‘미야오톡’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려주면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휴대전화 앱으로 최근 애묘인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나루가 주로 하는 말은 “먹을 것을 주세요“ ”배고파요“ ”우리는 무엇을 먹나요?” 등등. 어씨는 “처음엔 공손하게 존댓말로 요청하다가 계속 먹을 걸 주지 않으면 “야!” ”날 화나게 했어!” 하며 반말로 화를 내더라”고 했다.
아마존 출신 개발자가 만든 ‘미야오톡’은 지난해 말 출시돼 우리나라에서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고양이 소리를 스펙트럼으로 시각화해 화남·배고픔·행복·경고·싸움 등 크게 9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뜻을 해석한다. 번역 결과가 맞지 않으면 사용자가 직접 번역을 수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점점 번역의 정확도를 높인다.
하비에르 산체스 미야오톡 대표는 앱 출시 후 웨비나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고양이와 소통하는 데 번역기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로 통역해주는 ‘스마트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사용 후기를 살펴보면, 평가가 극명히 갈린다. 아기 고양이 사월이(3)를 기르는 유인영(34)씨는 “새벽에 울 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랐는데, ‘배고프다’는 번역이 나와 사료를 주니까 만족스러워하더라”면서 “상태가 안 좋아 보일 때 쓰면 70~80%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번역 결과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다는 혹평도 있다. 또 다른 사용자인 이모(29)씨는 “계속 함께 있었는데 뜬금없이 ‘안녕’이란 말이 뜨기도 하고, ‘널 좋아해' ’반가워'처럼 갖다 붙이기 나름인 말들이 자주 나왔다”면서 “고양이의 마음이 궁금한 애묘인을 현혹하는 마케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 번역기를 써본 수의사들은 “50~60% 정확도를 보인다”고 답했다. 유튜브 ‘동물의사 장문홍’ 채널을 운영하는 장원정 수의사는 “고양이는 얼굴 표정이나 자세와 같은 시각 신호, 소리 신호, 후각 신호, 촉각 신호 등 네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소리 신호만으로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이혜원 잘키움동물복지행동연구소장도 “공격성을 발현하거나 경계할 때 내는 소리처럼 높낮이 변화가 뚜렷한 소리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소리가 여러 상황에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번역 오류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2017년 미국 조지아 공대의 과학자들은 닭 소리 번역기를 개발했다. 과학 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따르면 이들은 양계 농장과 협력해 수년간 다양한 상황에서 닭들의 울음소리를 수집했다. 이를 AI에 학습시킨 결과, 건강한 닭과 고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닭, 바이러스 감염으로 괴로워하는 닭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의 언어를 동물 언어로 변환해 소통할 수도 있을까. 코끼리 언어 번역 사이트 ‘헬로인엘리펀트’에서는 사람이 쓰는 간단한 표현을 코끼리 울음소리로 바꿔 들려준다. 코끼리 멸종 위기를 알리고자 만들어진 사이트로 코끼리 소리로 변환한 메시지를 친구와 공유할 수도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선 코끼리 소리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는 ‘엘리펀트 리스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불법 밀렵으로 위기에 처한 코끼리가 내는 소리를 식별하거나 코끼리의 서식지를 추적할 때 활용한다.
‘24시간 고양이 육아 대백과’를 쓴 김효진 수의사는 “사람과 달리 동물의 언어는 행동이나 자세를 함께 봐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동물이 처한 상황과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영상을 음성과 함께 활용한다면 번역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